게르하르트 리히터는 오랜 전통을 지닌 회화를 당대적 의미로 재해석하고 그 영역을 확장한다. 광고 디자인과 무대 배경 작업을 하던 그는 1961년 베를린장벽이 세워지기 직전 서독으로 이주한다. 뒤셀도르프예술학교에서 회화 공부를 계속하며 콘나드 피셔-루엑, 시그마 폴케 등과 ‘자본주의 사실주의(Capitalist Realism)’ 운동을 전개했다. 동독의 ‘사회주의 사실주의’에 관한 대항이자, 당시 유행한 미국 팝아트를 독일식으로 수용하고 변형한 결과이다. 1960년대 초반, 그는 신문이나 잡지에서 가져온 사진을 흐릿하고 형태가 분명히 드러나지 않는 이미지로 제작한 ‘사진회화’를 발표한다. 사진회화는 사진의 리얼리즘적 요소와 회화 붓질의 추상성이 결합한 새로운 회화 양식이었다. 1960년대 말의 극사실주의적인 풍경화, 기하학적인 컬러차트화, 1970년대 초반의 유명 인물사진화, 1970년대 중반 이후의 다채로운 색채의 추상회화까지, 회화의 전 장르를 아우르며 상반된 성격의 회화를 결합한 연작을 제작한다. 특히 독일 적군파의 죽음을 다룬 연작 <1977년 10월 18일>은 역사화를 현대적으로 계승한 주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2002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열린 회고전이 미국 전역을 순회했으며, 2012년 파리 퐁피두센터에서 대규모 회고전 <파노라마>가 열려 화제를 모았다. 베니스비엔날레(1972, 1980, 1984, 1997, 2007), 카셀도쿠멘타(1972, 1982, 1987, 1992, 1997) 등에 여러 번 참여했으며, 1996년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수상했다.
* 이 기사는 2013년 1월호 특집 「What is Contemporary Art?」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