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각가 릴리 찬은 골동품상 집안에서 성장했다. 그는 도시를 거닐며 기물과 유기물을 수집한다. 플라스틱 깔판, 형광등, 아스팔트 파편을 잘라내고, 그 틈을 준보석 청금석 흑요석 대리석 균사체로 채운다. 그의 조각은 고대 광물과 첨단 생산품을 결합해 시간성을 초월한다. 중요 부품이 떨어져 나간 우주선을 연상시키기도 하고, 외계인이 후대 인간을 위해 만든 디오라마를 닮기도 한다. 인류세를 상징하는 기묘한 ‘인공 유물’이다. 홍콩의 급격한 도시화와 글로벌 모빌리티 시스템은 작가가 재료와 사물의 역사를 추적하게 만든 계기다. 2021년에는 작품 <Pallet in Repose>를 제작하기 위해 화강암을 구했다. 화강암은 영국 식민지 시기 채석장 노동자가 채굴해 옛 홍콩중앙경찰서 건립에 사용한 재료였다. 릴리 찬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을 환기하기 위해 플라스틱 상자의 중앙을 원형으로 뚫어 광산 갱도를 연상시키는 화강암을 채웠다. 작가는 소비주의의 과잉과 신자유주의 시대의 생산 방식을 고발한다. 1984년 홍콩 출생. 시카고예술대 회화전공 학사 및 로드아일랜드디자인학교 회화전공 석사 졸업. 캡슐상하이 상하이(2023, 2019), 베를린 갤러리클렘스(2022)에서 개인전 개최.

* 이 기사는 2025년 3월호 특집 「Super Nova★」에 게재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