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근호
<이무기 협곡> 크랙클 미디엄, 캔버스에 유채 91×116.5cm 2025
고근호는 규칙과 우연을 결합해 알록달록한 추상화를 그린다. 선과 면 등 기본적인 조형 요소를 굽이굽이 교차해 회화의 구조와 생성 원리를 탐구한다. 작가는 먼저 특정한 규칙에 따라 도형과 격자를 곳곳에 그리고, 그 사이를 잇거나 가로지르는 선을 무작위로 긋는다. 선으로 만들어진 새로운 영역에도 색을 칠해 기하학 도형과 유기적 형태가 공존하는 색면을 형성한다. 반듯한 삼각형, 구불구불 선, 뭉그러진 그리드 등을 화면에 가득 채워 조형 요소 간 위계를 무너트린다. 고근호가 ‘지도 만들기’라 표현하는 이 작업 과정은 작가의 유년 시절과 맞닿아 있다. 그가 나고 자란 제주 소도시의 길, 자전거 타고 정처 없이 돌아다니던 새벽 도로, 중학생 때 처음 방문해 방향 감각을 잃었던 강남역 등 일상에서 길을 찾거나 헤매던 경험을 그리기 행위로 옮겨왔다. 그의 작품에서 형상을 피하거나 꿰뚫는 ‘선의 궤적’은 곧 작가가 쌓아온 ‘몸의 기억’이다. 최근에는 인도네시아 협곡, 제주 용머리 바위, 비행기에서 내려다본 풍경 등 자연의 고유한 패턴을 담고 있다. 표면에 균열 효과를 내는 크래클 미디엄으로 굴곡지고 울퉁불퉁한 자연환경을 회화적으로 번안한다. 홍익대 회화과 학사 및 서울과학기술대 조형예술과 석사 졸업. 엑스라지갤러리(2025), 뮤지엄헤드(2024), 인터림(2024) 등에서 개인전 개최.
* 이 기사는 2026년 1월호 특집 「Rising Power 36」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