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색의 언어로 엮어낸 치유의 연대기. 박엘(1973년생)의 추상회화는 다양성과 질서라는 상반된 가치 사이에서 지성적인 시각적 균형을 조율해 나가는 예술적 여정이다. 중앙대 대학원(MFA)을 졸업한 후 프랑스 마르세유에서 체류하며 마주한 지중해의 에메랄드빛 자연은 작가의 화면 속에서 깊고 투명한 색채 감정으로 정제되었다. “색은 나의 언어이고 감정은 나의 대상”이라는 작가의 고백처럼, 그녀의 작업은 순수 형식을 넘어 삶의 내밀한 궤적과 존재의 의미를 매개하는 독창적인 추상 세계를 구축한다. 화면은 칠하고, 뿌리고, 긁어내는 치열한 수행적 반복을 거쳐 삼중의 레이어로 중첩된다. 자유분방한 물감의 흔적과 스크래치가 살아가며 마주하는 ‘우연한 상처’를 대변한다면, 그 위를 입체적으로 뒤덮은 정교한 ‘망(Net) 구조’는 이를 지탱하는 필연적인 ‘삶의 의지’를 표상한다. 특히 화면 전체를 채운 십자 형태의 비정형 모듈 망은 모든 존재가 유기적으로 엮여 서로를 비추는 회복의 관계망을 연상시키며 현대인의 소외된 내면에 따뜻한 위로를 건넨다. 서로 손을 맞잡은 인간의 형상을 닮은 이 격자 구조는 인간적 고뇌를 포용하는 이타적이고 숭고한 연대의 메시지다. 이처럼 박엘의 회화는 한국 미술 전통의 고요한 조화미를 계승하는 동시에 현대적 소통의 가치를 세련되게 통합하며, 관람객을 일상의 번잡함을 정화하는 깊고 평온한 사유의 공간으로 인도한다.
* 이 기사는 2026년 8월호 특집 「키아프 & 프리즈 하이라이트」 리서울갤러리(Kiaf A58)에 게재되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