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유와 암호화폐의 추상
배헤윰은 대중교통, 타인의 스마트폰 화면 등 일상 풍경에서 동시대의 구조적 변화를 읽고, 이를 추상화로 시각화해 왔다. 그의 개인전 <Awakened>(8. 29~9. 5)가 서촌의 한옥 공간 ‘막집’에서 열렸다. 암호 화폐, 바다, 모성을 결합한 주제로 신작 8점을 선보였다.
𝗖 전시와 연작을 아우르는 제목 ‘Awakened(깨어난)’에서 출발해 보자. 전시명은 무엇이 어떻게 ‘깨어난’ 상태를 가리키나?
𝗕 세 가지 깨어남이 겹쳐있다. 첫째는 수정란의 몸이다. 정자와 난자가 결합하는 순간 반짝하고 사라지는 빛이 있다는 것을 공부하며 알게 됐다. 임신을 산모 중심으로 생각하면, 산모의 의지에 따라 결과가 정해지는 것처럼 여기기 쉽다. 나는 수정란을 스스로 발달을 거듭해 배아와 태아, 아기가 되는 자율적 존재로 다시 인식했고, 그것이 ‘모성 추상’의 실마리였다. 둘째는 타인, 즉 개개인에 대한 인식이다. 아이가 자라면 작업실 바깥에서 마주치는 개인이 된다. 비록 나와 다른 삶의 배경을 가진 타인이지만, 결국 그들이 모여 사회를 이룬다. 셋째는 밤새 깨어있는 사람들이다. 암호 화폐 시장은 24시간 가동되기에 투자자들은 잠들지 못한다. 가상 자산에 삶의 가치를 연동한 채 급등락을 좇는 모습은 내게 매우 추상적인 치열함이었다.
𝗖 암호 화폐는 <A Bitcoiner’s Hope>(2024) 이래 반복된 모티프다. 퇴근길 승객들이 비트코인 차트를 보던 장면을 이번에는 모성과 결합했다.
𝗕 2024년 어느 퇴근길, 지하철에서 나만 빼고 거의 모든 직장인이 암호 화폐 차트를 보고 있는 것을 목격했다. 어쩌면 저들의 현실이 내가 몰입하고 있는 조형보다 훨씬 더 추상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를 기점으로 사람들이 일상에서 가지는 추상성에 관심을 두게 되었다. 그러다 내가 임신 중이었을 때, 대치역을 지나던 열차에서 학부모들의 대화가 학원에서 코인으로 옮겨가는 것을 목격했다. 나는 그것을 자식에게 더 많은 자본을 넘겨주려는 욕망으로 보았고, 모성이 표출되는 방식이 굉장히 동시대적이라고 느꼈다. 지금의 사회를 배경으로 모성이라는 독특한 심리·육체적인 상태를 다시 생각해 봐야 하는 문제라고 여겼다.
𝗖 작품에서 모성을 이상화된 정서가 아니라 신체·감각적인 조건으로 풀었다. <모성추상>이 뜻하는 ‘모성을 식별하려는 노력’이 이번 작업 전체에서 어떤 근간이 되었나.
𝗕 모성은 누구나 쓰는 단어이지만, 아무도 정확히는 모르는 개념이다. 나 역시 임신 상태에 있으면서도 모성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 없었다. 내게 추상은 늘 추리에 가까웠기에, 모성 역시 끊임없이 추론해야 할 대상이었다. 나는 모성을 진단할 수 있는 지표로 ‘보호’를 꼽는다. 여기엔 더 이상 보호해 주고 싶지 않은 마음도 들어간다. 보호하려는 마음이 늘 솟아나는 것은 아니며, 인간인 이상 몸도 지치기 마련이다. 모든 엄마가 윤리적으로 완벽하거나, 모성이 항상 성스러운 것만은 아니다. 모성은 옳고 그름을 가르는 가치 판단의 영역이 아니며, 여러 모습이 공존하는 통합적인 상태로 보아야 한다.
모성 추상, 모유와 차트의 오르내림
𝗖 차트는 갱신될 때마다 오른쪽 혹은 위로 밀려나고, 모유는 중력을 따라 아래로 흘러내린다. 양자가 지닌 물성과 방향성에 따라 선을 시각화하는 방식이 달라진다.
𝗕 주식에는 실제 회사가 있고 다니는 사람들이 있어, 우리가 눈과 귀로 확인할 수 있다. 반면 암호 화폐는 실체를 확인하기 어렵다. 우리가 그러한 가상에 흔들린다는 점에서 내게는 수직적인 급등락 방향이 중요했다. 하지만 현상을 있는 그대로 재현할 생각이었다면 화면을 캡처해 영상으로 만들었을 것이다. 결과물은 결국 그림이고, 그림은 멈춰진 화면으로 존재한다. 하루 종일 움직이는 차트는 회화에서 선의 넓고 좁음, 색깔의 차이, 화면을 분할하는 움직임으로 고정된다. 그림에서는 하락을 의미하는 수직 방향도, 누군가에게는 상승으로 보일 수 있다. 끊임없이 밀려가는 그래프를 리딩하며 가치를 좇기 바빴던 기존의 보기 방식이 회화 앞에서는 자유롭게 달라지는 것이다. 반면 모유는 중력이 잡아당기는 대로 몸의 굴곡을 타고 흘러내리며 선을 만든다. 그래서 회화에서도 물감에 유동성을 더 부여했다. 두 요소를 인위적으로 비판하는 관계에 두기보다, 그저 화면 안에서 상반된 채로 병존하게 두었다. 많은 것이 교차하고 섞이며 겹쳐있는 것이 바로 우리의 동시대적 삶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𝗖 작가는 작품 속 강렬한 원색을 두고 각각이 화학적인 성질을 지닌다고 짚으며 장식적인 해석을 거부한다. 안료가 광물에서 비롯된다는 물질성이 어떻게 신체, 시장을 잇는 매체가 되는가?
𝗕 색이 광물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은 내 작업에서 색을 다루는 가장 기본적인 인식이다. 사회를 이루는 개개인들이 모두 다르듯, 기원이 다르고 서로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색들이 한 화면 안에서 내가 부여한 질서에 따라 자기 자리를 찾아가는 과정이 곧 내 그림이 완성되는 과정이다. 나에게 색은 곧 ‘가치’다. 유한한 인간은 빛이라는 궁극적이고 근원적인 가치를 직접 다룰 수 없으므로 색을 통해 그 빛을 가늠하고, 그것이 산업화되어 내가 쓰는 물감이 되었다. 나에게 색이란 매개된 가치인 셈이다. 암호 화폐 차트도 빨강과 파랑으로 자본의 가치를 시각화했다는 점에서 색은 매우 중요하다.
𝗖 과거에 작가는 너무 설명하지 않는 ‘모름’의 상태를 중요하게 여겼다. 반면 이번엔 사회적 조건과 신체 경험을 비교적 명시적으로 끌어왔는데.
𝗕 여성 작가가 임신을 이야기하면 자전적인 이야기로 읽히기 쉽다. 그러나 나는 작업이 다른 임산부의 이야기이자, 나아가 임신할 가능성이 없는 사람도 동시대인으로서 함께 바라볼 수 있는 이야기이길 바랐다. 이를 가능하게 해준 것이 바로 추상이 주는 ‘거리감’이다. 구체적인 개념에서 출발했을지라도 눈앞에 보이는 그림은 멀어짐의 결과다. 다만 이는 단절이 아니라 ‘무엇으로부터’ 멀어졌는지를 의미한다. 모름의 상태에 집중하던 시기에는 제목을 불분명하게 지었지만, 지금은 훨씬 구체적으로 짓는다. 어떤 개념을 있는 그대로 재현한 게 아니라 그 개념으로부터 멀어진 것이며, 그 거리를 둔 채로 관객에게 말을 걸고 싶었다. 이번 전시 역시 결국에는 이 사회를 함께 살아가는 타인을 향해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