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전의 반전의, 반전의 풍경

아트사이드갤러리, 권소진 개인전 <제비가 낮게 날면>
2026 / 08 / 31

원본은 어디에도 없다. 세계는 처음부터 복제의 복제였다. 권소진은 원본이 사라진 모사, 이른바 ‘시뮬라크르(simulacre)’로 풍경을 채운다. 전사(轉寫), 스탬프, 에어브러시 등으로 빚은 진짜보다 더 진짜 같은 가짜로, ‘존재한다’는 것의 실체를 묻는다. 권소진의 개인전 <제비가 낮게 날면>(7. 3~8. 8 아트사이드갤러리)이 열리고 있다. 콜라주와 트롱푀이유를 주요 기법으로 삼은 신작 회화 26점을 공개했다. 제비가 낮게 날면 비가 온다. 곤충의 날개가 습기로 무거워져 지면을 맴돌고, 그 먹이를 쫓아 새가 낮게 내려앉는다. ‘맑음’과 ‘흐림’이라는 도식에 갇힌 눈은 이런 미세한 신호를 놓친다. 권소진 회화는 바로 이 감각의 사각(死角), 늘 똑같다고 믿었던 일상 풍경에 작은 균열이 일어나는 찰나에서 시작된다.

플라톤은 세계를 원본인 ‘이데아(idea)’와 이데아를 모방한 현실의 ‘사본(eikon)’, 그리고 사본을 다시 흉내 낸 엉터리 가짜인 ‘시뮬라크르’로 나누고, 원본과 멀어질수록 가치가 떨어진다고 보았다. 들뢰즈는 바로 이 위계를 겨눴다. 미술이 재현에 종속되거나, 자연과 사물은 물론 정상성에서 비껴간 숱한 타자가 소외되어 온 인류의 비극은 이러한 원본을 정점에 둔 사유의 결과다. 그러나 시뮬라크르는 열등한 복제가 아니라 원본이라는 기준을 무너뜨리는 힘이다. 오리지널의 위계가 사라지면 모방의 우열도 사라진다. 차이와 다양성을 긍정하는 새로운 사유의 길이 열린다. 권소진의 화면에서 주인공이 있다면 바로 이 원본의 위계를 해체하는 ‘가짜’, 시뮬라크르다.

<구름 벽지와 드로잉 3> 캔버스에 아크릴릭, 전사 162.2×130.3cm 2026 아트사이드갤러리 제공
<구름 벽지와 드로잉 2> 캔버스에 아크릴릭, 전사 162.2×130.3cm 2026 아트사이드갤러리 제공

진짜인 듯 가짜인 듯

<구름 벽지와 드로잉>(2026) 연작은 반전의 반전을 거듭한다. 진짜 나무의 표면을 고스란히 재현해 낸 감쪽같은 나뭇결. 한올 한올 붓으로 옮긴 노고라 짐작하기 쉽지만 사실 스탬프로 찍어냈다. 구름은 붓이 아니라 에어브러시의 분무로 피어오르고, 화면을 가로지르는 테이프는 실제 테이프처럼 보이지만 물감을 쌓아 올린 그림이다. 배경의 하늘은 사실 벽지이고 벽지는 이미 반복되는 패턴, 곧 복제다. 그 패턴조차 실제 벽지가 아니라 그것을 복제한 도배 샘플북에서 따왔다. 화면 한복판, 캔버스의 뒷면을 드러낸 듯한 자리에는 다시 그림이 있다. 무대 뒤를 열면 또 하나의 무대가 나온다. 뒷면은 막다른 벽이기 전에 캔버스 너머 또 다른 세계를 연결하는 창이다. 진짜를 흉내 낸 가짜의 배후에 ‘진짜’가 숨어있는 것이 아니라 또 다른 가짜만이 있다.

인간의 눈은 흩어진 파편을 하나의 온전한 장면 혹은 서사로 연결하려 한다. 이를 게슈탈트(gestalt, 구조) 통합이라고 부른다. 권소진은 이 구조적 완결을 유도하는 동시에 교묘하게 방해한다. <새벽의 온도>(2026)에서 작가는 동트기의 자연 풍경을 담았다. 회색빛 하늘과 나무는 붓으로 그렸지만 가지 사이에 앉은 두 마리 새는 흑백으로 전사된 사진이고, 심지어 노란 테이프로 붙어있다. 잎과 가지, 새를 하나의 자연으로 묶으려는 시선은 전사의 이질적 질감과 테이프의 흔적 앞에서 곧바로 어긋난다. 새는 풍경의 일부인가 혹은 사물(사진)인가. 회화와 사진, 그리고 그림과 오브제가 한 화면에서 자리를 다투는 사이, 화면은 하나의 정답을 내주는 대신 매번 다른 이야기로 쓰이고 갈라진다.

<기울어진 머리> 캔버스에 아크릴릭, 전사 89.4×130.3cm 2026 아트사이드갤러리 제공
<비를 내리는 새> 캔버스에 아크릴릭, 전사 130.3×162.2cm 2026 아트사이드갤러리 제공

우리는 일상에서 ‘그림(가짜)’ 같은 순간을 경험한다. 그리고 그것은 “현실이 완벽하기 때문이라기보다, 오히려 현실이 어딘가 미묘하게 어긋나 있기에 가능”하다. 이미지가 미술이 되는 순간도 마찬가지다. “닮아 있으면서도 어딘가 다른 상태, 그 미세한 불일치”에서 사물은 비로소 작품으로 탄생한다(권소진 작가노트). 시뮬라크르를 딛고 조우하는 현실과 가상. <기울어진 머리>(2026)는 바로 이 교차점을 펼쳐낸다. 화면 가장자리를 두른 액자는 이것이 그림임을 알리는 표지다. 그러나 프레임은 배경에 스며 이내 흐려진다. 경계가 지워지는 것이 아니라, 그림과 그림 아닌 것을 가르던 선이 그림의 내부로 옮겨 앉는다. 바깥을 보증하던 표지가 실은 붓으로 그려진 또 하나의 이미지일 때, 그 틀이 가리키던 바깥, 즉 원본의 세계는 사라진다. 두 송이의 꽃도 같은 방식으로 어긋나 있다. 사진을 오려 붙인 듯 선연한 윤곽선은 사물의 편에 서있지만, 그 안을 채운 먹빛 필선과 번지는 채색은 손의 흔적을 감추지 않는다. 꽃은 실물을 닮았으나 실물이 아니고, 그림임을 고백하면서도 온전히 그림으로 물러서지 않는다. 여기에 허공에 앉은 벌이 착시를 더한다. 손을 내저어 쫓아내고 싶은 생생한 날벌레는 미술사에서 트롱푀이유의 상징으로 쓰여왔다. 손이 허공을 스치기 전까지 벌은 잠시 진짜였다가 사진으로, 이내 다시 그림으로 미끄러진다. 서로를 닮은 채 조금씩 어긋난 이미지들…. 그 불일치가 일으키는 미세한 진동이 풍경을 살아있게 한다.

표제작 <제비가 낮게 날면>(2026)으로 마무리하자. 작품은 이번 전시에서 유일하게 천을 지지체로 삼았고, 콜라주 기법 없이 그린 작품이다. 여기엔 오려 붙인 자국도, 화면을 가로지르는 테이프도 없다. 그러나 장치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화면을 채운 나무는 디지털로 복제되고 합성된 패턴이며, 그 이음매는 잘못 재단된 스카프처럼 미세하게 어긋나 있다. 콜라주는 화면에서 물러나 이미지의 안쪽으로 들어갔을 뿐이다. 반전은 끝나지 않았고, 다만 더 조용해졌을 뿐이다. 제목은 ‘제비’를 가리키지만, 이 고요한 화면에서 시선을 붙드는 것은 그가 아니다. 마른 가지 사이에 흩어진 작은 나방들. 습기를 가장 먼저 감지하고 지면 가까이 내려앉은 그 날벌레야말로 새를 낮게 날게 한 원인이다. 주인공으로 지목된 존재는 실은 결과일 뿐, 감각의 사각에 밀려나 있던 미세한 존재가 근원에 있다. 다시 말하자. 원본이 사라진 세계에서는 중심과 주변, 주역과 배경을 가르던 눈금도 함께 지워진다. 무엇이 더 진짜인지를 가르는 물음이 힘을 잃는 자리에서, 어떤 것이 더 중요하냐는 질문도 나란히 무너진다. 남는 것은 저마다의 고도로 날고 있는 존재뿐이다.

권소진/ 1991년 서울 출생. 이화여대 서양화과 학사 동대학원 석사, 박사 졸업. 아트사이드갤러리(2025), 아트숨비센터(2023), 임수빈갤러리(2023), 인사아트프라자(2019), 레인보우큐브갤러리(2018) 등에서 개인전 개최. 서울에서 거주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