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트페어는 지역 축제
코로나19 유행이 이어진 2년 동안 국내 미술시장은 유례없는 호황을 누렸다. 그사이 아트페어 수도 크게 늘었다. 예술경영지원센터에 따르면 2022년 한국에서 개최된 아트페어는 80여 개. 팬데믹 전인 2019년 49개와 비교했을 때 39%가 증가했다. 눈에 띄는 변화는 숫자만이 아니다. 아트페어의 형식도 달라지기 시작했다. 부속 행사였던 특별전이 흥행 포인트로 떠올랐고, 컨버세이션과 같은 프로그램에 관심이 커졌다. 인천아시아아트쇼(2022. 11. 16~20), 탐라국제아트페어(2022. 12. 22~25),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3. 2~5)는 시장 기능과 공적 가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노린 미술장터다.
공공성 예술성 지역성, 아트페어의 새 기류
인천아시아아트쇼(이하 IAAS)는 2021년 론칭한 신생 아트페어다. 첫 회에 방문객 4만 9천 명, 판매액 70억 원, 2022년에는 5개국에서 갤러리 172곳이 참여해 방문객 5만 명과 판매액 100억 원을 달성하며 시장에 성공적으로 안착했다. 방방곡곡 늘어난 아트페어 사이에 IAAS가 내세운 차별점은 ‘공공성’이다. 정부 지원과 인천 시민의 참여가 기반이 된 만큼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다양한 볼거리와 담론 생산을 모토로 삼았다.
먼저 부스 엔트리에는 갤러리 외에도 단체, 기관 등을 포함했다. 기존 아트페어가 상업 화랑을 중심으로 부스전을 꾸렸다면, IAAS에는 인천여성미술비엔날레, 한국예술문화연구소 등 비영리로 활동하는 예술그룹이 참여했다. 또 광주 영은미술창작스튜디오, 인천 숭의평화창작공간과 같은 레지던시부터 인천 참살이미술관, 하마다미술관, 베이징 수미술관 등 그간 아트페어에서 볼 수 없었던 뮤지엄을 유치해 상업성은 물론 예술성을 갖춘 작품을 선보였다.
특별전은 ‘아시아 예술의 정체성’을 주제로 기획했다. 근대화 과정에서 동양으로 수용된 서구 미술을 되짚고, 이를 발판 삼아 고유한 체계를 형성한 아시아 동시대예술을 살폈다. 여기에 한중일을 대표하는 작가 9인이 참여했다. 한국에서는 김수자, 조덕현, 육근병, 중국에서는 조지강, 마슈칭, 첸루오빙, 일본에서는 도시히로 구노, 세이노 쇼이치가 대표작을 공개했다. 각 국가의 전통과 역사를 모티프 삼은 작품으로 아시아 예술의 담론장을 펼쳤다.
다양한 주체로 구성한 부스전, 담론 중심의 대규모 특별전은 IAAS를 아트페어 이상의 행사로 자리매김한 요소다. 한미애 총감독은 이를 넘어 IAAS의 장기 목표로 ‘아트바젤 유치’를 제시했다. 이미 아트바젤 운영 조직에 의사를 전달하고, 올해 아트바젤 홍콩, 마이애미 등에 참여하는 갤러리와 접촉 중이라고.

김근중 <꽃, 이전 18-13(Before-Flower)> 캔버스에 유채 259×194cm 2015 인천아시아트쇼 특별전 출품작

이미선 <제주아일랜드> 비단에 채색 96×137cm 2022 탐라국제아트페어 특별전 출품작
한편, 탐라국제아트페어(이하 TIAF)는 작년 12월 처음 막을 올린 글로벌 미술장터다. 프랑스 미국 독일 일본 중국 인도네시아 등 8개국에서 갤러리 총 32곳이 참여했다. 국내에서는 갤러리2, 대구 우손갤러리, 가나아트 부산, 부산 카린, 해외에서는 도쿄 키노쇼키카쿠, 베를린 갤러리가치, 파리 BDMC 등이 나섰다. 엔트리 규모는 작지만 그만큼 내실에 신경을 기울였다. 사회적 가치와 시장성 모두를 리드하는 아트페어를 시도했다.
TIAF가 내세운 테마는 ‘치유’. 지역 컬렉터층이 얕지만 제주를 휴양지로 찾는 방문객이 많다는 점을 반영해 예술의 힐링적 측면을 강조했다. 그리고 이 주제를 특별전과 컨버세이션은 물론 부스전 전반에 적용했다. 갤러리와 협력해 시장 트렌드에 맞추기보다 감상자에게 편안함과 즐거움을 주는 작품을 엄선했다. 제주 천혜의 자연 경관을 그린 변시지, 섬 주민의 일상을 표현한 장리석, 파리의 포근한 풍경을 담은 미셸 들라크루아 등의 작품 총 600여 점이 코로나19로 지친 방문객에게 위로를 전했다.
메인 특별전 <HOT·COLD·HEAVY·LIGHT>는 강주현, 김산, 문창배, 이미선 등 제주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청장년 아티스트 9인이 참여했다. 제주 미술의 흐름을 읽는 동시에 인간의 다양한 감정을 살폈다. 컨버세이션에서는 미술치료 전문가 김선현의 ‘나를 치유하는 그림의 힘’과 권은용 교수의 ‘아트컬렉션의 의미와 컬렉션의 조건’이 각각 진행됐다. 투자 관점의 컬렉팅이 아닌, 삶의 질에 포커스를 둔 예술감상과 작품 소장을 다뤘다. 이 외에도 TIAF는 에너지 절약과 재활용품 사용으로 아트페어의 지속 가능성을 고민하고, 라운지 수익의 전액 기부를 밝히면서 예술의 사회적 가치에 대한 메시지를 던졌다.
올해로 12회를 맞은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이하 BAMA)는 남도를 대표하는 대형 미술장터다. 부산 소재 화랑을 중심으로 국내외 유수 갤러리 총 159곳이 출사표를 던진다. BAMA가 앞세운 이번 아트페어의 핵심 가치는 ‘지역성’. 대규모 미술행사가 대부분 수도권에 집중된 상황에서 BAMA는 부산 미술의 재발견과 지역 상생을 기치로 내걸었다.
먼저 BAMA는 사전 행사로 <디그리쇼>(2022. 12. 5~11 부산 F1963)전을 진행했다. 경성대, 동아대, 동의대, 신라대 등 부산 미술대학 4곳 졸업생의 작품으로 부산 미술의 미래를 진단했다. 해마다 줄어드는 부산 미술대를 지원하고, 지역 미술을 이끌어갈 새 얼굴 발견을 목표 삼았다. BAMA는 이 중 6명의 작가를 선정해 아트페어에서 동명의 기획전을 개최할 예정.
메인 특별전으로는 <윤석남 마스터>전을 준비했다. 한국 여성주의 미술의 대모 윤석남의 작품 세계를 통해 남성 중심 미술계에 경종을 울린다. 일반적으로 아트페어가 잘 다루지 않는 사회적 주제를 내세워 뮤지엄급 미술장터에 도전한다. 이 외에도 NFT아트 특별전 <2030 NEXT ART>, 지역의 다양한 관광지와 예술공간을 방문하는 ‘아트버스 투어’ 등을 선보인다.
또한 BAMA는 후속 행사로 부산의 문화 취약 계층을 찾아가는 전시를 계획하고 있다. 부산 갤러리 40곳이 자신있게 내놓은 작품을 4월부터 부산 곳곳의 공공 기관에서 공개한다. BAMA가 컬렉터와 미술애호가는 물론, 부산 지역민 모두와 함께하는 축제이길 바란다고.

조디 핀토 <Our World> 캔버스에 아크릴릭 150×150cm 2022 부산국제화랑아트페어 대구 갤러리전 출품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