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이내믹 서머 아트페어
지난 6월 국내외에서 크고 작은 아트페어가 열렸다. 각 페어는 지정학적 위기와 금융 시장 불안 등 불확실성의 시대를 돌파하는 별별 해법을 제시하며 굳건히 자리를 지켰다.
먼저 아트바젤 바젤이 6월 17~18일 VIP 프리뷰를 시작으로 22일까지 메세바젤에서 열렸다. 42개국 289개 갤러리가 참가했고, 6일간 8만 8천여 명의 관객이 방문했다. 한국에서는 갤러리현대와 국제갤러리가 출전했다. 이번 페어는 경기 침체의 그늘에서도 고른 판매 성과를 거뒀다. 특히 세실리아 비쿠냐, 로이 할로웰, 알리나 샤포츠니코프 등 여성 작가의 작품이 미술기관 컬렉션으로 소장됐다. 시장 부진이 오히려 여성 아티스트가 주목받는 계기로 작용했다. 한편, 갤러리현대가 선보인 이승택 단독 부스는 미술시장 전문 온라인 저널 『아트시』 선정 ‘2025 베스트 부스 톱 10’에 이름을 올려 한국 현대미술의 존재감을 분명히 했다. 에디터 아룬 카카르는 “결박의 조형으로 통제와 숭배를 동시에 사유하는 이승택의 작품 세계를 깊이 조명했다”라고 선정 이유를 밝혔다.
1996년 시작된 리스테아트페어바젤(이하 리스테)은 아트바젤의 대표적인 위성 페어다. 올해는 6월 16일부터 22일까지 메세바젤 1.1홀에서 열렸다. 아트바젤이 정통성 짙은 마켓으로 미술사 거장이 집결하는 글로벌 엑스포라면, 리스테는 신진 작가와 신생 갤러리를 조명하는 대안적 플랫폼이다. 이번 에디션에는 31개국 99개 갤러리가 참가했다. 한국에서는 샤워 실린더 에이라운지 지갤러리 휘슬 N/A P21 등 차세대 갤러리가 총출동해 눈길을 끌었다. 특히 N/A, 샤워와 휘슬의 협업 부스가 ‘프렌즈 오브 리스테’에 선정돼 화제를 모았다. 프렌즈 오브 리스테는 실험적 전시 기획을 선보인 갤러리에 부스 비용 2,000스위스프랑을 지원하는 제도이다. 정지윤과 선우의 작업을 선보인 N/A는 전시장 바닥에 메모리 폼을 깔고, 관객의 발자국을 남겨 고착화된 박람회의 형태를 뒤흔들었다. 샤워와 휘슬은 각각 이연석과 김경태의 작품으로 사적 공간이자 외부인을 맞는 공적 장소인 ‘거실’을 긴장감 있게 연출해 높이 평가됐다.
미술을 공연처럼 즐기자
다음으로 국내 아트페어 소식 3개를 전한다. 5회를 맞은 더프리뷰서울 with 신한카드(5. 29~6. 1, 이하 더프리뷰)는 ‘아이덴티티 강화’를 생존 전략으로 내세웠다. 더프리뷰는 신생 갤러리와 신진 작가에게 시장 데뷔 무대를 제공해 왔다. 지난 4회 동안 50여 개 갤러리, 5회 차에는 FFF, 포에버갤러리, 히피한남, APO프로젝트 등 7개 갤러리가 마켓 데뷔전을 치렀다. 다소 경직되고 차분한 전시장에 퍼포먼스 이벤트를 도입해 ‘힙한’ 축제로 만들어 왔던 개성을 십분 살려, 올해는 과감하게 장소를 옛국립극단백성희장민호극장으로 옮겼다. 건물을 통째로 전시장으로 사용해 컬렉터의 방에 들어가는 것처럼 부스를 연출하는가 하면, 실제 연극 무대를 ‘퍼포먼스&필름 라운지’로 되살려 서커스와 영상작업을 선보였다. ‘미술을 공연처럼 즐기자’라는 더프리뷰의 콘셉트가 어떻게 더욱 확장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어서 국내 최장수 아트페어 화랑미술제가 지난해에 이어 두 번째로 수원을 찾았다. 국내 미술시장의 서울 쏠림 현상을 완화하고, 첨단 산업 단지와 젊은 인구가 밀집한 경기 남부권에 새로운 시장을 개척하려는 시도다. 올해 화랑미술제 in 수원(6. 26~29 수원컨벤션센터)에는 104개 갤러리, 600여 명의 작가가 참여했다. 특히 국내 아트씬을 30년 이상 이끌어 온 베테랑 갤러리의 참가가 돋보였다. 가나아트, 금산갤러리, 갤러리신라, 표갤러리, 학고재 등 국내 주요 갤러리의 참여가 전시와 작품의 퀄리티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보장해 볼거리를 제공했다. 한편, 페어 기간 중 전시장 3층에서는 수원 작가 21인의 작품을 한자리에 모은 특별전 <수문장>을 열어 로컬씬과의 협업도 놓치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드로잉 특화 아트페어 드로잉그로잉(6. 6~29)이 아트스페이스보안1에서 한 달간 열렸다. 4회째인 올해는 작가 50인의 드로잉과 에스키스 300여 점이 출품됐다. 비교적 가격이 저렴한 장르와 젊은 작가군으로 아트마켓의 틈새시장을 노렸다. 이슬비 미학관 디렉터는 드로잉그로잉의 모토로 작가와 컬렉터의 ‘공생’을 내세웠다. “컬렉터로 성장하려는 미술애호가에게 본격적인 작품 구매 경험 이전에 작품의 ‘시작 단계’를 소장하는 기회를 제공해, 작가와 컬렉터가 함께 성장하는 경험을 선사하고 싶다.” 페어가 끝난 7월에도 한 달간 드로잉그로잉 웹 사이트에서 작품을 구매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