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Look] 벤 네이선(Ben Nathan)
도시를 기억하는 ‘기념품’
벤 네이선(Ben Natha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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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수탑(Chateau d’Eau)> 2개의 캔버스에 유채 181×166cm 2012 43인버네스스트리트 개인전 전경 2013
영국 작가 벤 네이선은 최근 런던에서 열린 개인전(43인버네스스트리트, 4. 24~5. 28)에서 서울의 도시 경관을 바탕으로 한 작업을 선보였다. 모두 2014년 난지창작스튜디오 입주 작가로 서울에 거주한 경험에서 비롯된 작업. 가장 눈길을 끈 작업은 바로 ‘서울 삼면화’. 이 작업은 종이와 나무로 서울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보도블록용 벽돌 모양을 커다랗게 만들어 서강대교 아래에 설치 및 촬영한 <Brick>, 목욕탕 기호를 변형해 금속 부조로 만든 <Shin>, 응봉동 부근에서 공사 중인 고가도로의 일부분을 포착해 일러스트레이션화 한 <Eungbong>으로 이루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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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색한 하수도(Painted Sewer)〉 C-프린트 40×40cm 2007
특히 <Shin>의 경우, 유대계인 작가가 목욕탕 기호와 히브리어 글자 ‘ש’ 사이에 형태적 유사성을 발견해 기호와 글자 사이의 중간 형태로 만든 것이다. 이 글자는 한국어의 ‘신(神)’과 발음이 같을 뿐더러 히브리어로 신을 이르는 단어의 첫 글자이기도 하다. 서로 다른 문화권의 언어와 기호가 합쳐져, 세속적인 몸(身)을 씻는 공간이 초월적인 신을 만나는 곳이라는 또 다른 의미를 탄생시킨 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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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그는 도시를 구성하는 여러 인공 구조물의 감춰진 부분을 부각시켜 전에 없던 의미를 부여해 왔다. 일례로 <급수탑>은 작가가 프랑스 교외를 여행하며 보았던 급수탑을 캔버스에 그린 것인데, 열쇠 모양 같기도 하다. 급수탑이 도시 거주자들의 생활을 제대로 돌아가게 만드는 열쇠와도 같다는 뜻일까? 또한 그는 급수탑 부분만 잘라내어 캔버스에서 떼었다 붙였다 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커다란 건축 구조물을 이동 가능한 크기의 오브제로 재현한 것. 이는 작가에게 낯선 도시의 ‘조각들’을 그러모아 일종의 표식을 만들어 두는 행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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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점에서 벤 네이선의 작업은 자신이 거주하거나 여행하며 스쳐 지나간 도시를 오래도록 기억하려는 일종의 기념품으로 볼 수 있다. 그가 주목한 소재들에는 공통점이 있다. 도시를 구성하는 데 없어서는 안 될 한 부분이지만 실생활에서는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는 처지라는 점. 그러나 벤 네이선의 작품 속에서 이들은 존재감을 되찾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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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rick> C-프린트 93×118 cm 2014
마치 디자인 상품처럼 정갈하게 다듬어진 모습 때문에, 그동안 무심코 스쳐 지나갔던 도시의 각 구성 요소들이 좀 더 잘 기억될 수 있게 되기 때문이다. 그의 작업을 만나고 나니, 이제는 무심히 지나곤 했던 도시 공간 속 구조물들을 자세히 살펴보게 될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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