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그재그 색채의 미로
프랑스의 대표 추상화가 베르나르 프리츠(Bernard Frize). 그는 1970년대 후반부터 질서와 우연이 뒤엉킨 추상회화를 그려왔다. 일정한 규칙 아래 붓질을 수차례 교차해 예측 불가능한 색의 혼성을 실험한다. 그가 부산 조현화랑 달맞이에서 개인전 <The Return>(11. 6~2026. 1. 4)을 열고 신작 회화 24점을 공개했다. Art는 작가를 만나 이번 전시의 기획 의도와 그가 천착해 온 예술관을 물었다.
— 2022년 페로탕 서울 개인전 이후 3년 만의 내한이다. 그동안 어떻게 지냈나?
Frize 한국에서 다시 작업을 선보이게 되어 기쁘다. 나는 그간 베를린과 프랑스에 있는 작업실을 오가며 작품 활동에 매진해 왔다. 한국의 열정적인 관객을 만나는 일은 언제나 즐겁다. 이 마음을 담아 전시의 제목도 <The Return>으로 지었다. 2014년 조현화랑에서 개인전을 연 후 11년 만에 다시 돌아왔다는 의미도 있다.
— 이번 전시의 출품작은 재료에 따라 크게 두 종류로 나뉜다. 신작을 소개해 달라. 어떤 고민을 담았나?
Frize <Loca>, <Shelt>, <Traga> 등 캔버스에 레진과 아크릴을 칠한 작업은 격자(grid)를 기반으로 한다. 이 연작은 제한된 조건에서 하나의 사각형을 채워 넣는 정신적 실험이자, 새로운 연작의 발전 가능성을 탐색하는 과정이었다. 반면 <10 : 04 : 2025>, <19 : 04 : 2025>와 같이 유리에 템페라와 래커를 칠한 작업은 더 강박적이다. 색과 선이 하나의 공간에서 어떻게 섞이고 겹치는지 보여주려 했다.
회화, 우연과 통제가 교차하는
— 당신은 그림을 그릴 때 특정한 규칙과 절차를 정하고 시작한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작품에는 어떤 규칙을 적용했는가? 강박적으로 규칙을 세우는 이유도 궁금하다.
Frize 유리 작업에선 ‘같은 색은 세 번까지만 그을 수 있다’는 규칙을 뒀다. 캔버스 작업에선 붓마다 고유한 색을 배정해, 각 붓이 만들어내는 흔적을 드러냈다. 색마다 역할이 있고, 붓마다 나름의 획이 있는 셈이다. 중요한 건 색의 의미가 아니라, 색이 무엇을 하느냐다. 즉 이 색이 옆에 놓인 색과 어떻게 다르냐는 점이다. 색은 화면에서 서로 충돌하고, 섞이고, 겹치면서 서로를 구분 짓던 차이를 지워버리기도 한다.
규칙이 없으면 선택지가 너무 많아져서 손댈 수조차 없는 혼란에 빠진다. 가령 같은 크기의 정사각형으로 작업하겠다고 처음에 정하면, 그때부터는 작업의 방향이 생긴다. 일차적으로 규칙을 따르긴 하지만, 결과는 예측할 수 없다. 물감이 흐르거나 서로 섞이면서 항상 우연이 개입하기 때문이다. 규칙 자체는 단순하지만, 그 안에서 무수한 변주가 발생한다. 나는 그 변화를 억지로 통제하지 않는다. 내가 회화를 생산하는 과정은 ‘아무렇게나 하는 것’으로 빠지지 않으려는 하나의 안전장치다. 그렇기에 나의 회화는 규칙과 우연, 통제와 무작위가 교차하는 ‘무위의 노동(inoperative labor)’이다.
— 이번 출품작의 제목은 <Arsin>, <Bakeit>, <Goita> 등 의미를 알기 힘든 한 어절의 단어가 대부분이다. 제목을 정하는 기준이 있다면?
Frize 제목에는 어떤 특별한 의미도 두지 않는다. 그저 파일을 기억하고 분류하려고 붙였다. 이름은 데이터베이스에서 구분하고 찾기 위한 기능적 역할만 할 뿐이다. 이번 전시에 출품한 유리 회화는 작업을 제작한 날짜 그대로를 제목에 사용했다.
— 당신에게 ‘연작’은 중요한 방법론이다. 이번 전시에 나온 출품작 모두 20년 전에 이미 시도했던 작업이다.
Frize 내게 연작이란 실험을 계속 이어가는 방식이자, 회화의 표현 가능성을 끝까지 밀어붙여 결국 소진하기에 이르는 방법이다. 이번 전시에서처럼 10년, 20년 전 과거에 진행한 연작으로 회귀하기도 한다. 대체로 처음 버전을 가능하게 했던 규칙을 더 단순화할 여지를 발견했을 때다. 이는 회화가 결코 완전히 끝나지 않는다는 증거다. 나는 시간을 선형적으로 보지 않는다. 과거의 방법은 사라지지 않고, 다른 형태로 언제든 다시 나타날 수 있다. 그래서 내게 연작은 반복이라기보다 순환이다.
— 이제 세상 밖으로 눈을 돌려보자. 당신은 지난 50년간 아트씬의 변화를 몸소 경험해 왔다. 오늘날에는 인공 지능이 이미지를 생성하고, 인간의 손을 대체하고 있다. 이런 기술 발달의 흐름 속에서 그리는 행위의 본질은 어떻게 달라지고 있다고 생각하는가?
Frize 기술이 이미지를 만들어내는 속도는 놀라울 정도로 빠르다. 하지만 그것이 회화의 본질을 바꾼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기술이 회화를 대체할 수는 없다. 회화와 이미지 생산은 엄연히 다르기 때문이다. 그림은 하나의 사유다. 회화는 인간이 세계와 연결되는 가장 단순하고 오래된 방식으로 남아있을 것이다.
— 솔직한 답변에 감사드린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에게 예술이란 무엇인가?
Frize 예술, 특히 회화는 감정만큼이나 지성에게도 말을 건넨다. 내 작업에서 과정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위한 절차일 뿐, 결코 목표가 아니다. 과정은 회화가 만들어지는 바로 그 순간으로 관람자를 불러들이는 방식일 뿐이다. 그렇게 관객은 일종의 목격자가 되어, 작품을 바라보는 투명한 순간에서 그 의미를 반복적으로 발생시킨다. 나는 늘 ‘제시(presentation)’와 ‘재현(representation)’ 사이의 차이를 강조해 왔다. 예술작품은 혼돈에 형식을 부여할 뿐, 세계의 숨은 의미를 드러내지는 않는다. 나는 회화를 아이디어를 탐구하고, 그것에 몸을 부여해 살아 움직이며 공유될 수 있도록 만드는 방식으로 이해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