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는 제1회 <더 스크랩>
2017 / 12 / 12
‘신개념 사진 전시/판매 플랫폼’, <더 스크랩>(http://the-scrap.com/). 제2회를 맞은 <더 스크랩>이 12월 13일부터 17일까지 5일간 동대문구 왕산로9길 24번지 건물에서 열립니다. Art는 2016년 제1회 <더 스크랩> 기획팀을 만나 행사의 기획 단계부터 결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를 나눴고, 이를 2017년 2월호 지면에 소개했습니다. 당시 행사의 지속 가능성을 묻는 Art의 질문에 “예산만 확보된다면!”이라고 당찬 포부를 밝힌 <더 스크랩>. 새로운 참여작가 100명(팀)은 과연 어떤 사진 이미지로 관객을 맞게 될까요? 제1회 <더 스크랩>의 인터뷰 기사 전문을 온라인에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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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크랩> 기획팀. 왼쪽부터 홍진훤 이승훈 안초롱 김혜원 김주원 김익현 이민지 이기원 이의록 물질과 비물질(김종소리) 이정민. 촬영을 위해 행사 장소에 다시 모였다.
<더 스크랩>, 사진 시장을 습격하다
3천 원의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 쇼룸엔 103명 작가(팀)의 사진 이미지 1천 여 점이 A4 사이즈로 일괄 전시되어있다. 감상을 충분히 즐긴 관람객은 구매권을 구입한 뒤 원하는 사진의 고유번호를 체크한다. 캡션 정보는 일체 없다. 구매권 뒷면의 체크리스트를 스토리지룸(작품 저장소)에 제출하면, 해당 사진과 정보가 담긴 스크랩 팩을 받는다. 가격은 3만 원에 5장, 5만 원에 10장이다. 그렇게 작품을 ‘소장’, 아니 ‘스크랩’해가는 기회. 바로 지난 12월 27일~29일 동대문의 어느 빈 건물에서 열린 <더스크랩>의 현장 모습이다. 예경 ‘우리동네 아트페어’ 개설 지원사업으로 선정, 진행된 이 행사는 단 3일간 총 1,546명이 방문해 사진 5,315장이 판매되는 놀라운 반응을 이끌었다. 행사 종료 후에도 웹과 SNS에 다양한 리뷰가 이어지는 등 그 조용한 파장이 지속됐다. <더 스크랩> 기획팀을 만나 기획단계부터 실제 행사 결과에 대한 다양한 의견을 들었다. /
Art 총 13명의 많은 인원이 기획에 참여했다. 기획 및 준비과정이 궁금하다.
— 지난 여름, 사진 이미지를 다루는 작업자 기획자 기고자 편집자들이 모여 <더 스크랩> 기획팀을 꾸렸다. 우리는 이번 행사를 통해 하나의 큰 의미를 생산하기보다는 각자의 의미를 담을 수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어야 한다는 의견을 공유했다. <더 스크랩>은 100개의 이미지가 담긴 드라이브를 관객에게 제시한 셈이다. 일종의 섬네일을 판 것이다. 이는 상품도 아니고 작품도 아닌 중간 어느 지점에 위치한다. 이를 위해 모듈화를 통한 시스템을 구축했다. 지금의 시대, 세대와 맞는 방식이라고 생각한 것이다. 우리가 가질 수 있는 소비의 규모, 방의 크기, 방에 넣을 수 있는 물건의 크기 등 이런 문제들에 대해 고민했다. 그 과정에서 다양한 의미망의 레이어가 쌓였다고 본다. 에디션의 문제, ‘사진’ 자체의 문제, 사진을 관람하는 태도, 컬렉션의 문제, 실제로 관객들이 사진을 보고 사고 집으로 돌아가 이야기를 하는 모습을 상상하면서 행사를 준비했다. 기획자가 아닌 작가의 입장에서 <더 스크랩>을 하나의 전시라고 생각하고 접근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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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크랩>은 행사의 콘셉트와 시스템 전반을 모듈화한 방식으로 구성해 시선을 끌었다.
Art ‘모듈화’ 형식을 위한 디스플레이의 콘셉트는 어떻게 설정했는가?
— 행사 공간은 김동희 작가가 디자인, 시공했다. 미팅 초기단계부터 벽에 사진을 일렬로 거는 장면은 만들지 않을 것, 한번 사용하고 폐기하는 설치는 피하는 것으로 의견을 모았다. 재활용이 가능하거나 버리는 데도 돈이 안 드는 그런 물건들로 전시장 내부를 구성하고 싶었다. 자연스레 우리 세대가 살고 있는 큐브를 떠올리고 이케아 물건들로 그 속을 채우는 것으로 논의가 이어졌다. <더 스크랩> 행사 공간을 쇼룸과 스토리지로 구분하고 이케아에서 구매한 선반, 서류함으로 가득 채웠다. 쇼룸은 일종의 망한 도시의 도서관, 스토리지는 명품 숍, 혹은 유니클로 매장을 콘셉트로 정했고, 마지막으로 박다함의 음악이 공간과 관객을 이어줬다.
Art 103명(팀)이라는 많은 수의 작가를 섭외한 의도나 기준이 있다면? 새로운 행사 방식에 대한 참여작가들의 공감대는 어땠나?
— 기획팀 인원만 13명이다. 초기에 기획 단계에서 100여 명이 함께 참여하는 모습을 그려봤다가 준비 과정에서 예산을 고려해 인원을 줄이는 방안도 생각했다. 하지만 결국엔 다시 초기에 설정한 100여 명의 작가들이 참여하는 방향으로 최종 결정했다. <더 스크랩>을 통해 오늘날 사진의 스펙트럼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했기 때문이다. 기획팀에서 각기 10명씩 사진, 이미지를 다루는 사람들을 추천했다. 사진에 대한 기획팀 내부의 고민을 참여자들이 어떻게 받아들이고 반응할지 궁금했다. 다시 말하면 사진 전반에 대한 궁금증이랄까. 이게 팔릴까? 이건 사진일까? 물질적인 작업을 하지 않는 작가의 경우 사진이라는 물성에 기대어 판매를 시도해보는 등, 여러 가지 궁금증을 실험해볼 수 있는 라인업을 만들려고 노력했다. 성비 또한 고려했는데 대략 50:50에 가깝다. 또한 예경의 지원금 자체의 연령대 제한이 있었다. 1983년생 이후 작가를 70%로 구성해야 했다. 참여작가 모두 섭외 과정에서 동의를 했고 계약서를 작성했으니 행사의 새로운 방식에 공감했다고 본다. 물론 갤러리 전속 등의 문제로 거절한 작가들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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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스크랩> 전경. 디스플레이 또한 이케아 상품으로 연출해서 지금 시대 및 세대의 삶의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줬다. 단 3일간 약 1,500의 관객이 찾아서 이슈가 됐다.
Art 많은 이들이 <더 스크랩>을 성공적인 행사로 보고 있다. 그 요인을 꼽는다면?
— 우선 수치적으로 보면 성공이다. <더 스크랩>을 통해 실험하고 상상해보고 싶었던 부분들은 성취했다고 생각한다. 그 이상이다. 다녀간 이들의 호응이 과연 어디서 오는 것일지 내부적으로도 고민하고 있다. 생각해보면 무엇보다 시스템의 성공이 아닌가 싶다. 행사의 기본 콘셉트에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시스템을 반영했다. 방해받지 않고 쇼핑을 즐기고 계산해서 나가는 구조를 반영하되, 단지 품목 자체만 사진으로 바뀐 것이다. 상품과 작품 사이의 중간 지점을 관객들이 마주할 수 있는 경험을 제공했다고 본다. 모듈화된 시스템 때문에 실제로 사진을 보는 것과 구입해서 가져가는 과정의 경험이 동일하게 이뤄졌고, 행사 분위기 자체가 캐주얼했다. 음악도 좋았고. 그렇다고 단순 쇼핑도 아니고, 그렇다고 구매 결과를 개인의 취향으로 단정짓기 어려운 만큼, 섞이지 않을 것 같은 요소들이 섞인 행사가 됐다. 무엇보다 복제가능한 사진의 매체적 특성을 행사 형식에 살린 점이 효과적이었던 것 같다. 사람들이 생각하는 사진예술에 대한 선입견 같은 것이 조금이라도 사라졌기를 바란다. 하지만 수익에서는 실패라고 생각한다.
Art 왜 실패로 보는가? 3일간 총 1,546명이 방문해 사진 5,315장이 판매됐다고 밝혔는데, 입장료 및 작품 판매수익 총 금액이 적지 않을 것 같다. 지원 예산은 어떻게 사용했는가?
— 사진판매 순 수익을 1/n로 나눠서 최종적으로 일인당 275,490원씩 나눴다. 총 수입은 참여작가 수인 102(참여잡지 1곳 미포함)를 곱해보면 된다. 우리가 생각한 것보다 적은 금액이다. 일단 기본적으로 판매가격 단가가 낮았던 이유도 있고. 기획팀은 기획료 없이 일했다. 행사 3일간 최저시급으로 아르바이트를 하고 받은 금액이 전부다. 결과적으로 제작지원+최저시급 정도를 작가들에게 제공한 셈인데, 조금 더 나은 성과가 필요하다. 앞으로 이러한 행사를 지속한다면 최소한의 아티스트피, 수익금 정도는 돌아갈 수 있는 구조로 만들고 싶다. 지원금 3천만 원은 사진 프린트 비용, 공간 임대, 공간 조성에 주로 사용하고 공간 디자인, 티저영상 제작, 그래픽 디자인, 음악에 인건비를 지급했다. 굿즈 판매와 입장료 수익도 전부 행사꾸리는데 보탰는데, 정산 결과 판매금액을 제외한 행사 자체 수익은 대외적으론 0원, 실제론 오히려 마이너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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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은 어디에서 어떤 방식으로 판매되고 있을까? 시장에서 유통되는 사진들은 어떤 것일까? 지금까지와는 다른 판매 방식을 시도해보면 어떨까? 젊은작가들 스스로 새로운 전시 / 판매 플랫폼을 상상하면 어떨까? 이러한 질문에서 시작된 <더 스크랩>은 사진 이미지를 전시하고 판매하는 새로운 방식을 시도했다. 이미지를 바라보고 소유하는 새로운 경험, 사진을 사는(파는) 경험을 한다는 것!
Art 개인적으론 <더 스크랩>이 지금 시대의 시각문화를 행사의 형식에 잘 흡수시켰다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은 (사진은 물론 미술 전반의) 이미지에 대해서 출처와 원본성에서 비롯된 진지한 접근도 물론 지속되고 있지만, ‘좋아요’로 감상의 반응을 대변하며 휴대용 모바일 기기를 통해 빠르고 가볍게 스쳐지나가는 방식으로 소비하는 것에 더 익숙한 시대 아닌가. 젊은 세대(는 물론 디지털 기기에 익숙한 누구나)는 작품을 ‘소장’하지 않더라도 언제든 이미지로서 ‘스크랩’하며 소유할 수 있으니까. 그렇다면 기획팀이 느낀 이 행사의 진정한 성과 혹은 남은 과제는 무엇인가?
— <더 스크랩>이라는 실험의 결과로 얻은 관객의 피드백과 체험, 데이터가 우리에게 남았다. 우리가 고민했던 질문들이 행사를 찾은 개개인에게로 돌아가 어디선가 오작동하는 시스템을 역으로 오작동시키는 일이 시작될 것이라 믿는다. 결국 사람들은 해답을 찾을 것이다. 또한 <더 스크랩>에 축적된 데이터를 가공해 웹을 통해 공개할 예정이다.
Art 제2회 <더 스크랩>을 기대해도 될까?
— 예산만 확보된다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