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과 괴물의 퍼레이드
유진식은 미국에서 활동하는 도자 조각가이다. 판 성형 기법으로 인물 형상의 조각을 제작해 왔다. 그가 한국 첫 개인전 <어떤 정원>(7. 19~8. 14 드로잉룸)을 열었다. 동서양의 신화와 종교, 작가 개인의 경험에서 모티프를 딴 신작을 출품했다. 흥미롭게도 그의 정원에는 풀 한 포기, 꽃 한 송이 없다. 대신 어딘가로 행진하는 군상이 놓여있다. 이들은 ‘어떤 정원’으로 나아가는 걸까?
우선, 그의 도자작업이 나오기까지 과정을 짚어보자. 유진식은 학부에서 디자인을 전공했다.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며 ‘딱 1년만 하고 싶은 거 하자’라는 생각에 다양한 매체를 탐구했다. 그러나 그림이든 조각이든 몸과 작품 사이에 도구가 개입하고, 본인의 제스처와는 다른 방향으로 조형되는 과정이 걸렸다. 예를 들어 바느질할 때 손은 위아래로 움직이지만, 결과물은 평면 위 선으로 보인다는 것이 어색했다. 그러던 중, 미는 만큼 들어가고 당기는 만큼 나오는 점토의 성질에 매료됐다. 그대로 도자공예과 석사 과정에 진학해 흙을 제대로 만지기 시작했고, 작업의 심화를 위해 미국 유학길에 올랐다. 초기에는 인체의 운동감, 감정의 시각화, 형태의 상징성 등을 연구했다.
작가는 <어떤 정원>전에서 앞으로 차차 풀어나갈 주제들을 느슨하게 엮었다고 말했다. 전시에는 시위와 제사라는 상반된 키워드가 교차한다. 먼저 ‘시위’다. 전시장에는 퍼레이드가 펼쳐지고 있다. ‘화이트 카펫’ 같은 좌대에 정체불명의 생명체들이 줄지어 걸어간다. 시위라는 형식은 그의 군 복무 경험에서 유래했다. 성 정체성의 혼란을 겪던 20대 초, 작가는 의무 경찰로서 사회적 소수자의 행렬을 매일 막아섰다. ‘진압대와 시위대 중 내가 있을 곳은 어디인가’라는 질문이 몸과 정신의 괴리를 불러왔다.
이는 인간과 동물, 남성과 여성, 신과 괴물 등 기존 카테고리에 포섭되지 않은 ‘미지의 생명체’ 조각으로 이어졌다. 그의 조각들은 ‘주류’가 설정한 경계를 저벅저벅 넘는다. 부츠를 신고 돌격하는 군인 조각 <Army Men>이 대표적이다. “시위대를 보며 ‘저들은 소음과 폭력을 동원해서라도 무언가 쟁취하고 싶구나’라고 생각했다. 나는 작가로서 어떤 힘을 기를 수 있을지 고민했다. 미술품은 좌대에 올라갔을 때 권위가 부여된다. 나는 작은 기념비를 좌대에 올려두는 행위로 나만의 시위를 벌인다.”
‘우리’ 잘 되게 해주세요
다음은 ‘제사’이다. 작가는 일 년에 대여섯 번은 족히 제사를 지내는 집안에서 성장했다. 문득 제사상에 피어오르는 향이 이승에서 저승으로 들어가는 장막처럼 보였다. 이에 그는 고온에서 달군 도자를 꺼낸 후 가연성 물질과 접촉해, 연기 자국을 표면에 입히는 ‘라쿠 기법’을 사용했다. 이 기법을 활용하면 도자 표면에 검은 그을음과 부스러진 균열이 자연스럽게 남는다. 또한 작가는 반가 사유상, 상여 꼭두부터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 켄타우로스 등 동서양의 종교 도상을 작업에 차용하기도 했다. 이 연작의 제목은 <Messenger>이다. 유진식은 조각을 먼 곳까지 의견을 대신 전해주는 ‘전령(傳令)’으로 삼았다. “지구가 멸망해도 청동과 도자는 남는다고 한다. 물리적 충격으로 파손되지 않는 이상 화석처럼 불멸하는 매체인 거다. 연기를 머금고 있는 내 조각이 나보다 더 오래 살아 이곳과 저곳을 오갔으면 한다.”
시위와 제사는 정반대 개념처럼 보인다. 권리를 쟁취하려는 투쟁이 어떻게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진 밥상에 절 올리는 시대착오적 풍습과 같겠는가? 하지만 유진식 조각에서는 두 개념이 ‘염원’이라는 마음으로 만난다. 시위와 제사에 동참하는 사람들은 ‘우리 잘 살게 해달라’는 간절함에서 전후의 수고로움을 무릅쓰니깐. 유진식은 정원에서 현재의 결핍을 메우고 공동체의 축원을 빌고 있다. “정원은 소유의 대상이 아니다. 정원은 사라지는 곳이자 잠시 머무는 공간이며, 함께 있음을 선언하는 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