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날, 우리를 기다리며…
“타인의 슬픔에 대해 ‘이제는 지겹다’라고 말하는 것은 참혹한 짓이다. 그러니 평생 해야 할 일이 있다면 그것은 슬픔에 대한 공부일 것이다.” 문학평론가 신형철이 세월호참사를 두고 썼던 문장이다. ‘슬픔에 대한 공부’라는 말은 얼핏 모순처럼 들린다. 슬픔은 배우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라고 우리는 믿어왔으니까. 그러나 그는 정확히 그 반대를 말한다. 타인의 고통은 저절로 이해되지 않으며, 오래 들여다보고 되새기는 노력 없이는 결코 가닿을 수 없다는 것. 그 공부를 가장 끈질기게 해온 영역이 있다면 그것은 미술일 것이다. 세상은 비극을 빠르게 요약하고 지나가지만, 그 요약 바깥에 남겨진 것의 곁을 지키며 머무는 미술. 슬픔마저 빠르게 소비하는 시대에, 슬픔을 천천히 공부하는 사람들. 이번 특집은 바로 그들의 이야기다.
6월호는 역사적 사건을 정면으로 응시해 온 한국 현대미술을 다룬다. 이번 기획을 진행하면서 가장 자주 마주쳤던 단어를 꼽으라면 단연 ‘비극’이었다. 돌이켜보면 역사란 비극의 다른 이름일지도 모른다. 시대의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보였던 것은 어김없이 참혹한 죽음과 부서진 삶이었다. 작품을 들여다볼수록, 고민은 사건 자체보다 그것을 대하는 우리의 태도로 향했다. 슬픔을 공부하는 일에 함정이 하나 있다면 우리가 비극 앞에서 너무 쉽게 가슴 아파하고, 그 아픔에 잠시 머무는 것만으로 도리를 다 했다고 여기는 데 있을 것이다. 한 사건이 채 매듭지어지기도 전에 다음 비극이 도착하고, 우리의 애도는 그사이를 분주히 옮겨 다닌다. 슬픔은 흘러넘치는데 정작 그 슬픔이 어디서 왔는지, 무엇이 그것을 되풀이하게 하는지 묻는 일은 자꾸 뒤로 밀린다. 어떤 일이 왜 벌어졌는지 우리는 ‘조금’ 안다. 부실한 선박이나 다리, 건물, 무능한 지도자, 무너진 시스템…. 그러나 그 이유를 다 합쳐도 끝내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남는다. 슬픔에 머무는 일과 그 슬픔의 원인을 똑바로 마주하는 일은 다르다. 진짜 어려운 것은 후자다.
원인과 대면하는 일이 어려운 까닭은, 그것이 우리를 불편한 자리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슬픔에 머무는 동안 우리는 선량한 애도자로 남을 수 있다. 그러나 원인을 묻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그 죽음들이 어떤 구조에서, 누구의 이익을 위해, 무엇이 묵인되었기에 일어났는가를 따지는 순간, 비극은 그저 가슴 아픈 사건이 아니라 우리가 발 딛고 선 세계 자체에 대한 질문이 된다. 이 세상은 어떤 곳이기에 이런 비극이 일어날 수밖에 없었는가. 그것을 되풀이하지 않으려면 세상은 어떻게 달라져야 하는가. 누군가는 비극 앞에 좌우가 없다고 말하지만, 물음을 끝까지 밀고 나간다면 정치적인 질문과 만날 수밖에 없다. 세월호참사 앞에서 우리가 ‘국가란 무엇인가’라고 물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다. 이번 특집의 역사미술이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가장 사회 참여적인 작품으로 읽히는 까닭 또한 여기에 있다. 애도가 내면을 향한다면, 원인을 향한 물음은 바깥의 세계를 향한다. 전자는 위로가 되지만, 후자는 좀처럼 위로가 되지 않는다. 그래서 비극을 다룬 미술은 종종 우리를 편안하게 놓아두지 않는다. 그것은 눈물을 닦아주는 대신, 닦이지 않는 것이 있음을 보여준다. 그 상처가 아직 아물지 않았으며 그 원인이 여전히 우리 곁에 있음을 일깨운다. 슬픔을 소비하게 하는 미술과, 슬픔의 까닭을 묻게 하는 미술 사이에는 좁힐 수 없는 간극이 있다. 특집은 후자에 주목한다.
이번 기획에 초대된 작가들이 보내온 작품과 글은 과거에 대한 기록인 동시에 앞으로 바라는 세상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들의 화면에는 작가 한 사람의 소망만이 아니라 ‘그날’ 스러져간 이들이 끝내 보지 못한 세상, 살아남은 이들이 그토록 바라온 세상, 그리고 여전히 같은 것을 꿈꾸는 우리의 미래가 함께 포개져 있다. 지나간 비극과 다가올 소망을 동시에 읽는 일. 나는 이것을 역사미술을 보는 하나의 방식으로 제안하고 싶다. 떠난 이들의 이름을 기억하는 일만큼이나, 그들이 꾸었던 꿈을 지키는 일 또한 소중하니까. 슬픔에 대한 공부는 슬픔에 잠기기 위해서가 아니라, 결국 희망을 길어 올리고, 끝내 그것을 현실로 만드는 일일 테니까. 최민화가 보내온 글의 원제는 「그날이 오면」이었다. 6월항쟁 당시 그가 노래한 그날은 이미 우리 곁에 왔지만, 그는 여전히 ‘그날’을 기다린다. 그리고 나는 그날의 ‘우리’를 기다려 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