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주기 전에는

2026년 7월호 에디토리얼
2026 / 07 / 01
다나카 고키 <다치기 쉬운 역사들(로드 무비)> 4채널 비디오, 컬러, 사운드 24분 3초, 36분 5초, 39분 1초, 18분 33초 2018 요코하마미술관 제공

7월호 특집은 한일국교정상화 60년, 미술교류 80년을 맞아 양국이 공동 주최한 <항상 옆에 있으니까>(요코하마미술관)전과 <로드 무비>(국립현대미술관 과천)전을 화두로 삼았다. 두 전시 현장을 큐레이터 인터뷰와 전시 리뷰, 그리고 주제별 크리틱을 통해 다각도로 톺았다. 그런데 우리는 왜, 지금 한일 교류사를 읽어야 하는가. 한일 관계가 중요해서라는 답은 안일하다. 한일 미술 80년은 흔히 누가 누구에게 영향을 주었는가, 어느 쪽이 앞섰는가의 문제로 읽힌다. 그러나 이 역사가 더 깊이 감추고 있는 물음은 ‘누가 누구를 부를 수 있는가’라는 호명(呼名)의 권력이다. 한때 한국 현대미술은 외부의 호명을 통해서야 겨우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었다. 1990년대 이전까지, 한국 회화가 국제 무대에 오르는 거의 유일한 문은 도쿄였다. 한국을 부를지, 어떤 작가를 고를지, 그 작품을 어느 자리에 둘지 결정하는 권한은 바다 건너에 있었다. ‘절대 우위’란 작품의 우열이 아니라 호명하는 위치의 독점에서 발생했다. 이는 곧 작품이 특정한 관점으로만 읽힌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한국 미술은 ‘일본이 규정한 한국성’만을 드러낼 수 있었고, 일본 내 한국 작가는 한 명의 예술가이기 이전에 ‘자이니치(在日)’라는 정체성으로 먼저 분류되었다.

오늘날, 풍경은 달라졌다. 한류가 거대한 문화 산업으로 자리 잡은 오늘날, 우리는 이제 호명하는 위치에 섰다고 믿는다. 바로 그 지점에서 한 걸음 멈춰 서야 한다. 한일 교류사를 읽는 일이 우리에게 중요한 까닭은, 한국이 얼마나 높은 자리에 왔는지를 보여주는 성공담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그것은 우리가 한때 ‘불리는 쪽’이었음을 기억하게 함으로써, 지금 우리가 새로 쥔 호명의 권력을 돌아보게 하는 거울이다. 호명하는 자리에는 언제나 폭력이 따른다. 누구를 부르고 누구를 빠뜨릴지, 무엇을 중심에 두고 무엇을 변방으로 밀어낼지를 정하는 힘. 이제 한국의 비엔날레와 미술관, 갤러리가 누구를 불러 세계에 보일지를 가린다. 한국이 아시아 미술의 새 관문이 되어 간다는 말은 자랑스럽지만, 관문은 언제나 문지기를 앞세우는 법이다. 수신자였던 시절 일본의 시선에서 느꼈던 불편한 권력을, 발신자가 된 우리는 이제 다른 누군가에게 똑같이 행사할 수 있다. 외국인 노동자와 이주민, 난민, 조선족과 화교…. 한국 사회가 울타리 바깥에 세워 둔 이들을 부를 때, 한때 일본이 그랬듯 ‘차이’의 표본으로만 호명하고 있지는 않을까. 누군가를 다양성의 증거로 잠깐 불러 세우는 일과, 그를 동등한 한 사람으로 마주하는 일은 전혀 다르다. 우리가 받았던 편향된 시선을 지금 누구에게 되돌려주고 있는가. ‘K-아트’라는 깃발은 누구를 품고 누구를 그 바깥에 세우는지를, 우리는 충분히 묻고 있는가.

가장 경계해야 할 일은 우리가 받았던 호명의 폭력을 대물림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 교류사를 읽는 일은 과거사의 정리가 아니라, ‘이제 부르는 자가 된 우리가 타자를 어떻게 부를 것인가’라는 질문의 연습이다. 좋은 호명은 아직 불리지 못한 자들의 이름을 먼저 헤아리는 데서 시작한다. 누군가를 부른다는 것은 타인을 우리의 서사를 꾸며줄 장식으로 끌어오는 일이 아니라, 그를 있는 그대로 마주하는 일이어야 한다. 부름이 곧 일방적 포섭이 되는 순간, 호명은 다시 폭력으로 미끄러진다. 두 전시에서 그 질문이 가장 또렷해지는 좌표는 한국도 일본도 아닌 그 ‘사이’였다. 식민과 분단이 갈라놓은 틈에 낀 사람들. 어느 국적으로도 깔끔하게 분류되지 않는 이들의 신체와 기억은, 우리가 휘둘러 온 분류의 그물이 얼마나 거친지를 폭로한다. 남도 북도 아니면서, 남이기도 북이기도 한 자리에서 만들어진 ‘재일코리안’의 작업은 한국과 일본 그 어디에도 온전히 담기지 않는다. 경계에 낀 존재를 똑바로 마주하는 일은 단순한 포용이 아니라, 부르는 자가 된 우리 자신의 분류법을 의심할 때 가능하다. 이 특집이 80년의 길을 되짚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한때 불리던 우리가 이제 부르는 자리에 섰다는 사실을, 그 권력의 무게를 잊지 않기 위해서다. 자신이 약자였던 시절을 잊은 강자는 자신이 받은 상처를 가장 충실히 대물림한다. 한때 수신자였던 기억을 잊지 않은 발신자만이, 자신이 쥔 빛을 어디로 비출지 물을 수 있다. 그 물음은 과거를 향하기 이전에, 먼저 지금 여기의 우리 자신을 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