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공론장의 재구성
베를린은 표현의 자유 아래 비판적 담론이 활발하게 오가는 도시로 인식되어 왔다. 그러나 팔레스타인 연대의 발화가 놓인 조건을 구체적으로 들여다보면 무엇이 제도적으로 허용되는 발화이고, 무엇이 구조적으로 배제되는지 분명해진다. 검열은 더 이상 직접적인 금지의 형태로 작동하지 않는다. 이는 전시 취소, 지원 철회, 제도적 거리 두기, 발화 이후의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하기 등의 방식으로 일상화된다. 이런 조건에서 열린 가자비엔날레 베를린 파빌리온(2025. 11. 22~12. 21 플루트그라벤 외 베를린 일원)은 발화를 확장하거나 대변하기보다, 발화가 더는 안정적으로 성립할 수 없는 구조 자체를 전시의 조건으로 드러냈다.
공론장은 흔히 합리적 토론과 의견 교환의 장으로 여겨지지만, 실제로는 번역 가능한 언어와 승인된 주체만이 진입할 수 있는 장소다. 독일의 문화 정책에 따라 팔레스타인 연대는 꾸준히 ‘위험한 발화’로 분류되어 왔다. 형식적으로는 발화가 허용되지만, 제도에서 지속 가능한 위치를 부여받지는 못한 채로 방치된 것이다. 이는 공론장이 실패했다기보다, 개인의 사적 언어를 공적 언어로 변환하는 ‘번역 가능성’ 자체가 공론장에서 작동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문제는 발언의 급진성이나 과격함이 아니라 그 발언이 제도적 언어로 환원될 수 있다는 전제가 붕괴했다는 데 있다.
베를린 파빌리온은 이러한 조건에서 전쟁, 봉쇄, 망명, 생존의 언어를 전시의 중심에 위치시켰다. 이는 공론장의 단순한 확장이 아니다. 전시의 주제는 ‘누가 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을 메시지로 제시하지 않는다. 대신 발화가 완결되지 않고 지연되며, 설명되지 않은 채로 남는 어정쩡한 상태를 전시의 구조로 유지한다. 관객은 이해하거나 판단하는 주체로 호출되지 않으며, 번역 불가능과 오해의 가능성을 기꺼이 감내해야 하는 위치에 놓인다. 즉 이해되지 않음은 결함이 아니라, 전시의 구조를 유지하는 조건이다.
이 형식은 전시의 운영 구조와도 긴밀하게 연결됐다. 베를린 파빌리온은 여타 국제 비엔날레의 파빌리온처럼 단일 미술관이나 제도권 기관의 보호 아래서 열린 게 아니다. 전시는 베를린 전역의 여러 독립 공간으로 분산된 채 구성되었고, 공공 프로그램 역시 느슨한 네트워크를 통해 이뤄졌다. 미학적 선택이 아닌 정치적 기술이다. 특정 공간이 압박을 받거나 폐쇄되더라도 전시 자체가 중단되지 않도록, 발화의 조건과 위험을 하나의 지점에 고정하지 않는 방식이다.
그러나 이 구조를 제도의 ‘후퇴’로 바라보는 건 정확하지 않다. 베를린 파빌리온은 공론장과 문화 제도가 본래부터 내재하고 있었으나, 비가시적으로 관리되어 온 특질을 드러낸다. 제도는 언제나 국가, 이데올로기, 정치 경제적 이해관계에서 작동해 왔고, 제도가 감당할 수 없는 발화는 전략적으로 공백으로 남겨왔다. 전시는 그 공백을 새롭게 만들어내지 않고, 이미 존재해 온 공백을 더는 은폐할 수 없게 된 순간을 포착한다.
따라서 이번 전시를 가능하게 한 것은 공적 보호가 아닌 공동체의 노동이다. 작업과 관련된 파일 전달부터 재제작, 번역, 설치, 공간 조율, 프로그램 운영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노동이 전시를 떠받쳤다. 그러나 이런 비가시적 노동 역시 베를린 파빌리온에 한정된 특수 현상은 아니다. 비가시성은 인프라의 본질이며, 인프라가 정상적으로 작동할 때 그 모습은 수면 위로 드러나지 않는다. 인프라가 가시화되는 순간은 그것이 원활히 작동하지 않을 때다. 바로 이 점에서 베를린 파빌리온은 동시대적 예술실천으로 위치한다. 전시는 새로운 해법을 제시하기보다, 지금 무엇이 작동하지 않는지를 명확히 드러낸다.
가자비엔날레 베를린 파빌리온은 재현 가능한 대안 모델을 제시하지 않았다. 공론장을 회복하지도, 제도를 대체하지도 않는다. 대신 제도가 책임을 유보해 온 경계에서 어떤 발화와 연대가 잠정적으로 출현하는지를 노출했다. 이 노출은 해결책이 아니라 여전히 질문으로 남아있다. 이러한 조건 설계는 반복 가능한 정치적 실천인가, 아니면 제도의 작동 원리를 드러내는 임시적 구성에 그치는가.
그럼에도 이 글은 발화가 불가능해진 조건에서도 예술이 어떤 구조를 통해 출현할 수 있는지를 기록한다. 그리고 그 구조의 가능성과 한계를 분석하는 일은 오늘날 비평과 연구가 회피할 수 없는 직업적 책임이기도 하다.
배경 · 제하드 자르부 <Flying Dreams> 사진 가변크기 2024 Courtesy of the artis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