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드의 반격!

평론 프로젝트 ‘피칭’ 제24회 선정자
2026 / 01 / 01

런던 영국국립초상화미술관에서 열린 제니 사빌 개인전 <The Anatomy of Painting>(2025. 6. 20~9. 7)은 사빌의 이름을 알린 1990년대 여성 누드 초상을 다시 호출했다. 미술사에서 좀처럼 볼 수 없었던, 거대한 캔버스를 가득 채우는 여성의 육중한 몸은 30년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강렬한 충격을 준다. 여성의 몸이 성적 매력으로 평가되고 소비되는 동시대 시각 문화에서 사빌 회화의 뚱뚱하고 일그러진 신체는 에로틱함이나 연약함, 사랑스러움으로 환원되지 않는다. <Propped>(1992)와 <Plan>(1993)에 그려진 여성들은 위압적으로 관객을 내려다보며 보는 자와 보이는 자의 위계를 전복했다. <Trace>(1993~94)에선 속옷 자국과 울퉁불퉁한 살결, 얼룩덜룩한 피부가 화면을 압도하며 이상화된 여성 누드화 전통과 대치한다.

제니 사빌 <Propped> 캔버스에 유채 213.4×182.9cm 1992 © Jenny Saville, Courtesy Gagosian.

규범적 아름다움과는 거리가 먼 신체들은 즉각적인 거부감과 불편함을 유발하지만, 바로 그 ‘추’의 감각이 미의 본질을 사유하게 한다. 움베르토 에코가 『추의 역사』(2007)에서 지적했듯 미는 언제나 추와의 관계에서 정의되며, 그 기준은 고정된 본질이 아닌 시대의 산물이다. 우리가 ‘추하다’라고 느끼는 순간은 낯선 몸, 즉 배제된 몸과 마주하는 순간이다. 결국 신체의 재현에 있어 ‘추의 역사’는 우리가 어떤 몸을 타자화하고 배제해 왔는지를 드러내는 ‘차별의 역사’와 맞닿아 있다.

미국 작가 클래리티 헤인스는 1997년부터 <가슴 초상> 연작으로 다양한 나체의 토르소를 기록해 왔다. 그는 행위예술가이자 비만 혐오 반대 운동가(fat activist)인 제이니 마르티네스의 비대한 몸을 비롯해 노년의 몸, 장애가 있는 몸, 유색 인종과 성소수자의 몸 등 소위 ‘정상성’에서 벗어난 신체를 가감 없이 화폭에 옮겼다. 극사실적 필치로 점 상처 주름 핏줄 튼살 타투 흉터까지 모든 흔적을 생생히 재현하며 신체가 한 인간의 정체성과 인생을 품는 기호임을 보여준다. 헤인스는 나이테와도 같은 표식을 꼼꼼히 기록하고, 포토샵이 지워버리는 얼룩도 집요하게 되살린다. 이 기록은 불완전함에 대한 기념이며, 배제되었던 몸을 존엄의 자리로 불러오는 행위다.

모니카 가르자 <Reading on the Floor with Dog> 종이에 아크릴릭 26×36cm 2023 작가 제공

한편, 젊은 작가 최혜경과 모니카 킴 가르자는 이전 세대와는 다른 미감을 제시한다. 최혜경(1986년생)의 그림에는 ‘튜브 뱃살’의 여성 캐릭터가 등장한다. 캐릭터는 국수를 한 움큼 입에 집어넣거나, 생크림 케이크를 앞에 두고도 맞은편에 놓인 빙수를 뺏어 먹는 등 탐욕을 숨기지 않는다. 강렬한 형광 색채, 흘러내리는 물감, 과도한 생동감으로 팽창한 인물은 쾌락과 광란의 환상적 풍경을 만들어낸다. 사적 경험에서 출발한 그의 작업은 한국의 높은 미적 기준과 규범화된 여성성에 반기를 든다. 팻 셰이밍(fat shaming), 외모 규범으로부터 해방된 세계는 어쩌면 이토록 판타지적이다.

멕시코-한국계 미국 작가 모니카 킴 가르자(1988년생)는 여성의 몸을 타인의 시선에서 해방된 일상의 주체로 그린다. 둥근 얼굴과 단순한 이목구비의 인물은 무심한 표정으로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며, 스포츠를 즐기고 선탠을 하고 독서를 한다. 인물의 피부 톤과 열대 풍경은 고갱이 그린 타히티 여성을 연상시키지만, 가르자는 식민주의적 시선을 거부하고 여성을 욕망의 대상이 아닌 쾌락의 주체로 제시한다. 명시적인 여성주의적 선언 대신, 여성 캐릭터가 자유롭게 존재하도록 한다는 점에서 버지니아 울프가 『자기만의 방』(1929)에서 강조한, 성적 자의식에 방해받지 않는 창작의 태도와 닮아있다.

이 작업들은 여성 신체의 전형적인 아름다움에 대한 문제 제기를 넘어 누드화의 문법을 다시 쓴다. 존 버거가 지적했듯, 서구 누드 전통에서 여성은 자기 경험의 주체가 아닌, 타인의 시선을 내면화한 존재로 재현되어 왔다. 이에 반해 최혜경과 가르자 그림의 주인공은 타인의 평가를 전제하지 않고 자기 욕망에 충실하며, 현재의 행위에 몰입하고 일상을 자유롭게 살아간다. 한편 사빌과 헤인스의 비규범적 여성상은 ‘아름답지 않을 권리’를 되찾고, 추를 다양성과 개별성의 징표이자 저항의 도구로 전환했다. 동시대 누드는 여러 형태의 몸을 긍정하고 다양한 정체성이 축적되는 정치적 플랫폼으로 작동한다. 틀에 갇힌 몸을 해방하기 위해 앞으로도 우리에게는 더 많고, 더 다양한 누드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