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기록, 유토피아의 각성제

아트인컬처평론프로젝트 ‘피칭’ 제28회 선정자 곽준호
2026 / 04 / 23

예술은 과연 무엇을 해야 할까? 실상 예술의 효용성을 묻는 이런 질문은 예술의 존재 자체에 대한 물음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예술의 존재 가치가 규정적이고 당위적인 어떤 역할에 근거해 판단되어야 하는가, 라는 물음을 불러일으키기도 한다. 사실 예술이 무엇을 해야만 하는 것은 없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사고하고 말해야 할 것이다. '예술이 무엇을 해야만 한다'라는 사유와 임무 부여는 예술을 억압하는 통제의 한 계기가 될 수 있다. 이는 예술이 실제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에 대한 탐색과는 결을 달리한다. 우리는 예술에 특정한 역할을 부여하여 가용 범위를 설정하기보다 예술이 자유 속에서 발휘하는 다채로운 기능적 가능성을 환대해야 하지 않을까. 이 글은 그 가능성의 한 페이지를 살피고자 한다. <2025 ARKO Leap>(2025. 12. 12~1. 10 일민미술관)전에 전시된 송성진의 <(무)관심영역>과 곽윤주 개인전 <보우스트 막사 연대기>(2. 27~3. 31 대안공간루프)를 경유함으로써 유토피아를 소환하는 동시대미술의 방식을 가늠해 본다.

송성진의 <(무)관심영역>은 1955년에 발발하여 20년간 지속되었던 베트남전쟁이 남긴 물리적, 심리적 잔해가 삶의 일부로 자리 잡은 라오스에서 작가가 전개한 현장 체류 기록과 예술적 성찰을 보여준다. 전쟁 종결 이후에도 남아있는 포탄의 흔적 및 잔해가 생활 도구로 변한 일상을 찍은 사진과 영상, 이를 알루미늄 식기 및 생활 도구로 제작한 오브제와 디지털 편집으로 만든 영상 등의 전시 구성은 전쟁 이후의 삶에 대한 비선형적 파노라마를 조직한다. 특히 전시장 한 구역에 놓인 8개의 의자와 긴 식탁 및 세팅된 식기를 보여주는 <폭탄을 옮기는 방법>은 전시 제목을 시각적으로 상징한다. 식탁과 의자는 전쟁에 가담한 이들의 ‘관심 영역’을, 불발탄으로 만든 알루미늄 식기는 그곳에 중첩된 ‘무관심 영역’을 의미한다. 작가는 소수의 지배 권력에 의해 전쟁에 무관심한 다수의 일상이 무기력하게 지배·통제받는 작동 구조를 ‘식기’로 표상한다.

전시장 입구에 설치되어 출구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풍경(風磬) 작업 <밤벨>은 <폭탄을 옮기는 방법>에서 볼 수 있는 식기 외에도 포탄, 별, 꽃, 나뭇잎 등을 천장에 매달았다. 선풍기 바람에 의해 문명 및 자연과 일상이 서로 부딪히며 전시장을 메우는 청아한 소리는 이들의 필연적인 관계성을 서정적으로 은유한다. 하지만 <밤벨>이 전시장을 나서는 출구가 될 때, 공명하는 청아함은 전시가 증언한 전쟁의 참상을 회고적으로 대조케 하며, 어떤 동경 어린 유토피아를 소환하는 기능을 수행한다. 전시를 매듭짓는 비형상적 유토피아의 소환은 “예술에서의 미는 현실적으로 평화로운 상태에 대한 가상”이라는 테오도어 아도르노의 성찰을 연상시킨다. 가상으로나마 소환되는 유토피아는 평화로운 내일을 꿈꾸게 하는 비판적인 정치적 각성제가 된다.

한편 곽윤주 개인전 <보우스트 막사 연대기>는 1930년대 후반 네덜란드 전역에 설치됐던 군용 막사인 16개의 보우스트 막사에 대한 기록을 기반으로, 건물이 지닌 유동적 서사에 관심을 둔다. 제2차 세계대전을 대비한 군용 막사는 지속적으로 다목적·다국적 파병을 위한 훈련 및 전초 기지로 사용되었고, 1980년대 이후로는 난민 보호소로 기능한다. <제네럴 드 본스 막사 E동>과 같은 막사는 이데올로기에 의해 중첩된 다성적 역사와 기억이 교차하는 증언의 장소다. 보우스트 막사에 내재한 역사적 관계망은 작가가 네덜란드와 인도네시아에서 진행했던 현장 리서치를 바탕으로 제국주의와 식민 지배, 탈식민 투쟁 등을 다룬 사진 및 영상, 구술 기록과 자료로 풀어진다. 이처럼 전시는
<(무)관심영역>과 마찬가지로 현장 체류 리서치 및 아카이브 형식이다. 하지만 곽윤주는 식민화와 식민 주체의 지속성, 기념 및 기억 행위로서의 탈식민 투쟁 의식(ritual)이 강화하는 이데올로기 등을 조명하며 비판적 의식을 보다 고취한다. 그럼에도 전쟁의 부정성은 불투명한 기류로 전시 구성의 제반 조건을 이룬다. 재앙의 트리거(trigger)로서 발발하는 전쟁은 전망과 동경을 품고 소환되는 대항적 성격의 유토피아적 감성이 도래할 때 부정되는 원초적 대상이다.

상술한 두 전시는 모두 아카이브 기반의 예술실천으로, 이상적인 세계상을 직접적 재현이 아닌 비형상적이고 비언어적인 방식으로 소환한다. 그렇게 호출된 유토피아는 미셸 푸코가 ‘헤테로토피아’로 설명했듯 현실에 이의를 제기한다. 물론 유토피아는 본질상 비실재적이기 때문에 ‘기만’을 자신의 존재론적 운명으로 갖는다. 하지만 동시에 오늘을 반성케 하고 내일을 동경케 하는 정치적 동력을 품고 있다. 따라서 유토피아는 현실에 대한 ‘항의’다. 이는 동시대미술이 자신의 존재 가치를 역설할 수 있는 수많은 기능적 가능성 중 하나이다.

배경 · 곽윤주 개인전 <보우스트 막사 연대기> 전경 2026 사진: 대안공간루프 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