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빛, 속도, 공간
2026년, 한국 미술계의 시선은 다시 ‘빛’의 근원을 향하고 있다. 비디오아트의 거장 백남준의 서거 20주기와 미니멀리즘의 빛을 구축한 댄 플래빈(Dan Flavin)의 서거 30주기를 맞이한 올해, 이들의 유산은 그 어느 때보다 뜨겁게 소환되고 있다. 댄 플래빈이 지난 1월까지 리움미술관 <현대미술 소장품전>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강렬한 물질적 잔상을 남겼다면, 백남준은 현재 가고시안 서울과 아모레퍼시픽미술관의 대규모 컬렉션 전시로 그 열기를 잇는다. 이는 거장을 향한 경의를 넘어, 플래빈이 제시했던 ‘물질적 빛’과 백남준이 탐구했던 ‘움직이는 이미지’의 역동적인 관계를 오늘날의 시각으로 재발견하려는 시도다. 이러한 배경 속에서 두 거장의 작업은 동시대 관람자에게 새로운 미학적 당위성을 제안한다.
예술을 감상하고 그 가치를 내면화하는 과정은 작가의 의도와 관람자가 길어 올리는 해석 사이의 긴장 속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대다수의 관람자는 창작자가 미처 예견하지 못한 자신만의 경험적 층위를 덧입힌다. 이때 예술은 시각적 대상을 넘어 공유와 토론의 장으로 확장한다. 이러한 맥락에서 정지된 이미지와 움직이는 이미지의 경계를 탐구했던 두 거장의 작업은 흥미로운 비평적 지점을 제공한다. 이들은 언뜻 단순해 보이는 사물과 기술을 통해 관람자의 첫인상을 배반하며, 특별한 존재론적 의미를 생성하기 때문이다.
플래빈과 백남준은 당대에 파격적이었던 산업 재료로 독자적인 시각 언어를 구축했다는 공통점을 지닌다. 플래빈이 규격화된 형광등을 벽면에 배치하여 공간 자체를 색채의 아우라로 채운다면, 백남준은 <전자 초고속도로>에서 네온 튜브를 통해 가상과 현실의 경계선을 구축한다. 플래빈의 빛은 공간 속에 ‘심어진(planted)’ 채 소멸해 가는 사진적 음화(negative)의 일시성을 지닌다. 반면, 백남준의 빛은 정보의 흐름과 문화적 이동성을 가시화하는 동적인 기호로 기능한다. 플래빈이 형광등의 배치를 통해 공간의 패턴과 건축적 질서를 재정의했다면, 백남준은 그 빛을 매개로 하여 기술 문명이 가져온 문화적 이동성을 가시화한 것이다. 이러한 매체의 물질성은 단순히 시각적 즐거움에 그치지 않고, 관람자의 신체적 개입을 유도하며 시간의 다중적 층위를 형성한다.
이들의 작업에서 드러나는 시간의 구조는 질 들뢰즈(Gilles Deleuze)가 정의한 ‘결정-이미지(crystal image)’의 개념과 공명한다. 특히 백남준의 <영화를 위한 선>은 비어있는 스크린을 통해 시간 그 자체를 전시하며 이 이론을 체현한다. 약 20분간 먼지와 스크래치만이 흐르는 작품은 관람자의 시선을 빈 화면에 붙잡아 감상 시간을 강제로 연장해 미케 발(Mieke Bal)이 제안한 ‘끈적한 이미지’의 전형을 보이며, 관람자로 하여금 매체 그 자체의 서사를 읽게 만든다.
반면 플래빈의 빛은 이러한 ‘끈적함’을 거부하고 “들어왔다가 바로 나가라(Get in and get out)”라는 명제에 충실한 순간성을 지향한다. 브라이오니 퍼(Briony Fer)가 지적했듯이, 플래빈의 작업은 형광등이라는 매체가 가진 일시성을 통해 시간의 불연속적인 균열을 드러낸다. 이는 마이클 프리드(Michael Fried)가 미니멀리즘의 ‘연극성’을 비판하며 작품의 ‘현존성 (presence)’을 강조한 것과도 맥을 같이 한다. 플래빈의 빛이 공간적 현존을 통해 시간의 소멸을 증명한다면, 백남준의 비디오는 시간의 흐름을 공간적 물성으로 고착시킨다. 두 작가는 결국 관람자에게 고정된 의미 대신 인식의 자유를 허용한다는 점에서 미학적 궤를 같이한다.
이처럼 두 작가의 작업은 ‘정지된 것’과 ‘움직이는 것’의 대립이 아닌, 시간이 매체와 공간 속에서 어떻게 구조화되는가에 대한 질문으로 귀결된다. <전자 초고속도로>는 정지와 이동의 길항 작용을 하나의 설치 공간 안에 집약했다. 수많은 모니터에서 쏟아지는 분절된 이미지와 이를 감싸는 네온은 현대의 파편화된 경험을 반영하며, 다중적인 시간의 경로를 탐험하게 한다. 이들의 작업은 디지털 스크린의 평면성에 갇힌 우리의 감각을 다시금 물리적이고 현상학적인 시간의 층위로 되돌린다. 이름 붙일 수 없는 그 모호하고도 명징한 빛의 공간 속에서, 우리는 예술이 재현을 넘어 존재의 떨림을 기록하는 시간의 기록물임을 깨닫게 된다.
두 거장의 빛은 2026년 현재에도 여전히 유효한 미학적 좌표를 그린다. 기술을 예술적 온기를 투영하는 소통의 인터페이스로 전환하려 했던 백남준, 그리고 산업 용품에서 숭고한 질서를 끌어낸 플래빈은 매체의 홍수 속에 사는 우리에게 예술의 현존성을 다시금 묻는다. 백남준의 움직이는 이미지와 플래빈의 정지된 빛이 교차하는 시공간 속에서, 예술은 비로소 영속적인 시간의 기록물로 거듭난다.
배경 · 댄 플래빈 <무제 4> 형광등 183cm 1987 © 2018 Estate of Dan Flavin / Artists Rights Society (ARS), New York. Courtesy David Zwirner and PKM Gallery.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