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은주

삶은 빙글빙글 순환 열차

아트인컬처 평론 프로젝트 ‘피칭’ 제33회 선정자 김은주
2026 / 10 / 07

2008년부터 2026년까지, 20년의 시간을 한 전시 안에서 마주하는 일은 흔치 않다. 대부분의 회고전이 시간에 따른 변화를 보여준다면, 신정원 개인전 <C Cycle>(6. 13~7. 11 오!재미동갤러리)는 변화보다 ‘지속’을 이야기한다. 작업은 확장되어 왔지만, 이를 관통하는 질문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몸은 어떻게 세계를 만나고, 관계는 어떻게 공동체가 되며, 기억은 어떻게 하나로 축적되는가.’ 전시는 이 질문이 그린 궤적을 보여준다.

전시 제목인 ‘Cycle’은 반복을 의미하는 듯하지만, 전시를 따라가다 보면 그것이 제자리를 맴도는 원이 아니라 조금씩 바깥으로 넓어지는 나선에 가깝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이 순환은 언제나 타인을 향해 열려있으며, 관계를 통해 확장되는 움직임이다. 그렇기에 이번 전시는 단순한 과거 시간의 회고라기보다, 하나의 존재가 어떻게 세계를 획득해 나가는지를 보여주는 단단한 성장 서사로 읽힌다. 그 출발점에는 작가의 첫 퍼포먼스 영상이자 작업 세계의 원형인 <외출>(2008)이 있다. 밝은색의 거대한 몸을 한 존재가 도시를 걸으며 타인의 시선을 통과하는 이 행위는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작가는 어린 시절부터 거대한 몸의 인물에 자신을 투사해 왔다고 말한다. 무겁지만 에너지가 넘치고, 버거운 조건 속에서도 계속 움직이려는 존재. 이후 작업에 반복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기원이 바로 이 거대한 몸이다. <외출>은 작가가 해외 체류 중 겪은 이방인으로서의 낯설고 무력한 시간을 배경으로 한다. 언어가 통하지 않고 익숙했던 관계가 단절된 채 자부심마저 무너진 환경 속에서, 공중화장실을 찾고 혼자 식사를 해결하는 사소한 일상조차 커다란 과제가 되었다. 그러나 작가는 이를 상처의 서사로 남기는 대신 무겁고 거대한 몸을 입고 다시 거리로 나섰다. 대중교통을 타고 남대문 시장을 거닐며 사람들의 시선을 마주했고, “뭐 하는 거예요?”라는 질문에는 “그냥 나들이 나왔어요”라고 답했다. 설명을 거부한 이 짧은 대답은 작품을 열린 상태로 둔다. 타인의 시선을 통과하며 존재를 확인하는 이 과정은 이후 이어질 20여 년간 작업의 첫 장면이 되었다.

이후의 작업들은 하나의 존재가 이동하고 변신하며 관계를 맺는 과정으로 이어진다. 최근작에 등장하는 아이의 움직임 역시 같은 맥락이다. 특정한 몸짓의 차용보다 중요한 것은, 그것이 작가의 기억과 감각을 통과해 새로운 언어로 번역된다는 점이다. 작가에게 움직임은 재현이 아닌 흡수이며, 타인의 몸짓은 그의 세계에서 또 다른 감각으로 다시 태어난다. 이러한 과정은 전시의 마지막 작품 <C의 소사이어티>(2026)에서 하나의 거대한 공동체로 확장된다. 홀로 세상에 나섰던 존재는 이제 자신만의 생태계를 얻는다. 거대한 배추, 사우나를 즐기는 기린, 우주 대학살자 해파리까지 현실에 없는 존재들이 한 공간에 공존한다. 이들은 모두 작가가 기획한 교육 프로그램 <드로잉히어로 프로젝트> 참여자들이 “당신이 슈퍼히어로라면 어떤 모습일까요?”라는 질문에 답하며 상상해 낸 또 다른 자화상이다.

그러나 작가의 관심은 단지 캐릭터 수집에 있지 않다. 그는 각각의 존재가 누구와 친구가 되고 갈등하며 동맹을 맺는지를 상상하며 관계망을 구축한다. 가장 위협적으로 보이는 존재조차 배제되지 않는다. 왜 그런 존재가 되었고 누구와 관계 맺는지를 상상하는 순간, 그는 공동체 안에서 온전히 자신의 자리를 얻게 된다. 미술이론가 니콜라 부리오는 『관계의 미학』(1998)에서 예술을 관계를 생성하는 장으로 설명했다. 신정원의 작업 역시 참여와 만남을 출발점으로 삼지만,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 맺어진 관계는 시간이 흐르며 이야기로 축적되고, 다시 거대한 공동체를 형성한다. 그에게 참여는 일회적 이벤트가 아니라 세계를 구축하는 방식이다. 이 점에서 ‘C’는 단순한 순환을 넘어 캐릭터, 창조물, 공동체, 그리고 연결을 의미한다. 서로 다른 사연을 관계 안으로 초대하려는 태도는 그의 작업 전반을 관통하는 윤리다. 이는 도나 해러웨이의 ‘친족 만들기’와 겹쳐진다. 혈연관계나 단일 종을 넘어, 다름을 유지한 채 끝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연대의 생태계를 상상하는 것이다. 관객의 참여가 활발히 이루어지는 <순환열차>(2026) 역시 마찬가지다. 관객은 열차를 바라보는 데 그치지 않고 자신의 삶을 겹쳐 놓는다. 누군가의 삶에 잠시 탑승했다가 내리고 새로운 노선을 만들어가는 이 작업은, 익숙한 은유에 따뜻함을 더해 관객을 작품 속으로 초대한다. 전시는 회고전이면서 새로운 출발점이다. 세상 밖으로 첫발을 내디뎠던 존재는 20년이 지난 지금 혼자가 아니다. 닫힌 공동체가 아니라 다가올 새로운 존재를 계속 맞이할 준비가 된 열린 구조 속에서, 작가에게 순환은 타인을 만나며 조금씩 넓어지는 원이 된다. 결국 <C Cycle>은 20년을 돌아보는 전시를 넘어, 하나의 존재가 어떻게 세계를 얻어가는지를 보여주는 동시대적 우화다.

배경 · 신정원 <외출> 싱글채널 비디오 2008

삶은 빙글빙글 순환 열차 • ART IN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