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사진의 거짓말, 기록의 진실 게임
우리가 접하고 인지하는 것은 어디까지가 진실일까? 2026년 ‘베를린 갤러리 위크앤드’가 선보인 수많은 아티스트 중 두 작가가 흥미롭다. 레바논 출신의 왈리드 라드와 독일의 토마스 데만트. 이들의 작업에는 예술적 매체를 통해 사실과 허구 사이를 넘나든다는 공통점이 있다. 두 작가는 우리가 접하고 수용하며, 기억하는 정보가 과연 진실인지 되묻는다. 왈리드 라드는 강연 퍼포먼스, 시 낭송, 아카이브 출판 등의 행위로 실재와 허구를 혼동시키고, 토마스 데만트는 마치 실제처럼 구성된 이미지로 진실과 거짓의 경계를 넘나든다.
과거 베를린의 장벽이 있던 체크포인트찰리에서 도보로 이동 가능한 토마스슐테갤러리는 그 전경만으로도 시선을 사로잡는다. 약 9미터 높이의 코너는 전면이 통유리인 데다가 압도적인 수직 스케일 덕분에 그 안의 작품마저도 도시 풍경처럼 다가온다. 갤러리 위크앤드 동안에는 그곳에 산뜻한 노란색의 폭스바겐 비틀 자동차가 뒤집어져 있다. 마치 이름 그대로 딱정벌레가 뒤집어져 허우적거리는 모습이다. 이 작업을 통해 왈리드 라드는 레바논 내전의 기억, 폭력, 기록의 방식을 탐구한다. 여기서 ‘폭스바겐 비틀’은 자주 등장하는 상징이다. 내전 당시 베이루트에서는 자동차 폭탄 테러가 빈번했는데, 라드는 특히 폭스바겐 비틀이 폭탄 차량으로 사용되었다는 기억과 소문을 다룬다. 글로벌 자본주의의 상징이자 대표적인 대량 생산 소비재이기도 한 귀여운 이미지의 자동차 비틀. 이 친근한 오브제가 폭탄으로 사용된 전쟁의 폭력성과 불안을 재현한다.
그의 대표적인 장기 프로젝트 <더 아틀라스 그룹 (The Atlas Group)>은 1975~90년대 레바논 내전을 다룬다. 실제 기록과 허구를 교묘하게 섞은 사진과 문서 등으로 역사 아카이브를 구성하는 프로젝트다. 진짜와 가짜가 뒤섞인 아카이브를 통해 ‘우리는 어떻게 전쟁을 기억하는가?’, ‘사진과 기록은 믿을 수 있는가?’ 그리고 ‘역사는 과연 누가 기록하고 기억하는가?’와 같은 질문을 던진다. 정치인의 얼굴을 꽃과 함께 담아낸 작업 <Better be watching the clouds again and again>(2026) 역시 그가 만든 가상의 인물에서 출발한다. 작가는 가상의 인물 파드와 하순(Fadwa Hassoun)을 레바논 군대 장교이자 식물학자로 설정했다. 그는 전쟁 당시 정치·군사 지도자들에게 꽃과 식물의 이름을 암호명으로 부여하고 이를 기록했다. 연보라색으로 칠한 갤러리 벽면에는 형형색색의 꽃 사진을 붙이고, 꽃의 한가운데에 지난 세기 실존했던 대표적인 정치·군사 지도자의 흑백 초상사진을 붙였다. 생동감 넘치는 꽃은 흑백 인물의 얼굴을 감싸며, 때로는 그 존재를 가리는 듯 보인다.
한편 토마스 데만트의 작업은 실제 공간을 촬영한 사진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완전히 반대 방식이다. 그는 신문이나 뉴스 등 미디어에서 화제가 되는 사건의 장소나 상황의 장면을 선택한 뒤 그 장면을 종이로 정교하게 재구성한다. 이후 재구성된 종이 모델을 카메라로 촬영해 이미지로 남기고, 촬영이 종료된 후에 종이 모델을 폐기하는 것까지가 작업이다. 즉, 우리가 보는 것은 실제와는 전혀 상관없이 만들어진 종이 모델의 이미지인 것이다. 그의 작업은 정보가 쏟아지는 현대 사회에서 진실과 기억, 현실의 본질을 날카롭게 묻는다. 사진은 흔히 어떤 사건을 기록하는 도구로 사용된다. 사람들은 대부분 사진을 그 사건이 실재했다는 증명이 되는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토마스 데만트는 이 일반적인 믿음을 교란한다. 실제 공간을 촬영한 줄 알았으나 알고 보니 종이 모델이었다는 것을 깨닫는 순간, 우리가 흔히 미디어에서 접하는 사진은 과연 얼마만큼의 진실을 말하고 있는지 질문하게 된다. 당연함이 당연해지지 않는 순간 근원적인 불신이 시작되는 것이다.
사진이라는 사실적인 매체로 가장 허구적인 상황을 보여주며 ‘사진의 거짓말’을 폭로한다. 그의 작업 속 종이라는 유연한 재료로 만들어진 익숙한 공간은 동시에 낯설기도 하다. 잘 살펴보면 그의 작업 어디에도 사람, 텍스트, 로고는 없다. 얼룩이나 먼지 같은 생활 흔적도 완벽히 제거된다. 익숙한 장면이지만 왜인지 모르게 거리감이 느껴지는 묘한 감상은 관객에게 이 이미지를 가까이에서 보게 만든다. 이미지로 실재와 허구를 넘나드는 데만트는 이번 베를린 갤러리 위크앤드 2026 동안 진행되는 전시에서 새로운 기법의 작업을 선보였다. 일반 종이가 아닌 구리에 UV 프린팅을 시도했다. 구리는 르네상스 시대에 캔버스 대신 쓰이며 초기 사진술에도 사용된 재료다. 즉, 회화와 사진의 역사에 오늘날 디지털 이미지의 맥락을 연결한 것이다. 구리에 인쇄된 이미지는 종이와는 다르게 보는 각도에 따라 그 질감이 오묘하게 변화한다. 빛에 의해 동적으로 보이는 이미지가 과연 진실을 증명하는 안정적인 증거가 될 수 있는지 의문을 제기한다.
배경 · 왈리드 라드 <Better be watching the clouds again and again> 폴리염화 비닐, 잉크젯 프린트 각 30×20cm 2026 Courtesy of the Artist and Galerie Thomas Schulte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