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 미술, 도약의 날갯짓
가장 지역적인 것이 가장 세계적이다. ‘글로컬’이 컨템퍼러리아트의 핵심 키워드로 부상한 지금, 한국 문화예술계 역시 제도적 차원에서 로컬 미술 활성화에 힘을 쏟고 있다. 지난해 3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이하 아르코)가 ‘지역예술도약지원사업’을 발표했다. 14개 광역문화재단이 2024년 ‘시각예술지원사업’으로 발굴한 작가를 아르코가 후속 지원하는 지역-중앙 연계 사업이다. 지역 미술단체와 작가의 지속적인 성장, 수도권 및 해외 진출을 모색한다.
사업은 크게 개인전 개최를 돕는 ‘전시 지원’, 아티스트 북을 발간해 주는 ‘아카이빙·출판 지원’ 두 갈래로 나뉜다. ‘전시 지원’은 공간 매칭, 기획 자문, 설치 지원 등 창작의 방향성을 구체화하고, 완성도를 점검한다. ‘아카이빙·출판 지원’은 작업 기록 및 정리, 비평 자문 등 작품 세계를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향후 연구에 활용할 기반을 마련한다. 지금, 사업의 결과보고전 <2025 ARKO LEAP>(2025. 12. 12~1. 10)이 열리고 있다. 광역문화재단의 추천과 아르코 심의를 거쳐 뽑힌 작가 17인이 총출동했다. 금호미술관, 일민미술관, 학고재아트센터 등 광화문에서 북촌에 이르는 서울의 최대 아트벨트를 무대로 삼았다.
대전에서 횡성, 전주, 제주까지
이번 결과보고전의 면면을 전시 기관별로 살펴보자. 먼저 금호미술관에선 구지은(1986년생, 울산) 김주환(1974년생, 횡성) 김진희(1971년생, 고성) 김희라(1970년생, 대전)의 개인전이 열리고 있다. 구지은은 미술관 지하 1층에 대형 설치작품 <뉴제비타운 II>(2025)를 선보였다. 미용실 간판 ‘사인 볼’에 전국을 누비며 촬영한 제비 둥지 사진을 입혀, 인간이 훼손한 도시 환경에서도 꿋꿋이 살아가는 제비의 생존력을 표현했다. 김희라는 레이스 천을 바느질한 인체 조각 <전설도 아니고 기적도 아니고>(2025)로 여성에게 강요된 사회적 역할을 풍자했다. 김주환의 <유목과 은둔의 집>(2023)은 ‘피자 세이버’를 사람 키보다 높이 쌓아올렸다. 일회용품의 과잉 생산·소비 구조를 고발했다. 김진희는 ‘빌딩 숲’을 그린 <현재의 욕망> 시리즈를 출품했다. 마천루가 가득한 도시 풍경으로 질서와 혼돈, 불안과 화려함을 교차한다.
다음으로 일민미술관은 송성진(1974년생, 부산) 이현태(1981년생, 제주) 임안나(1970년생, 천안) 홍희령(1972년생, 대구)의 개인전을 오픈했다. 송성진은 베트남전쟁의 폭탄 잔해를 생활 도구로 사용하고 있는 라오스 주민의 삶을 영상작업 <무관심영역>(2025)으로 기록했다. 전쟁 이후에도 회복되지 않은 일상을 포착해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 전쟁의 참상을 고발한다. 임안나는 전쟁, 재난 등 사회적 위기에서 인간이 느끼는 불안을 연출사진 <비극의 시뮬레이션>(2016~18), <절정의 재구성>(2009~20) 등으로 제시했다. 홍희령은 새빨간 커튼으로 구성된 키네틱 설치 <잠 못 드는 밤>(2025)과 침대 모양 조각 <Kick, kick, kick>(2025)을 펼쳤다. 개인의 내밀한 취향과 심리를 형상화했다. 웹아티스트 이현태의 <다른 시간 다른 배열>(2025)은 알록달록 조형 요소가 예측 불가능한 리듬으로 움직이는 라이브 영상이다. 프로그래밍 언어의 규칙성과 버퍼링에서 발생하는 우발성을 동시에 활용했다. 일민미술관 3층에 마련된 ‘아카이브 존’에선 ‘아카이빙·출판 지원’에 선정된 손몽주(1978년생, 부산) 신예선(1973년생, 제주) 유대수(1965년생, 전주) 장상철(1956년생, 원주) 등 4인의 아티스트 북을 열람할 수 있다.
학고재아트센터에선 지난달 27일까지 황해연(1972년생, 경산), 30일까지 우은정(1961년생, 청주)의 개인전이 열렸다. 화가 황해연은 <빙하·빙상 퍼레이돌리아> 연작을 공개했다. 빙하와 빙산을 굵고 단순한 윤곽선, 강렬한 원색 등 팝아트 스타일로 재해석했다. 우은정은 거대한 자연 앞에 선 인간의 덧없음을 표현주의적 필치로 담아왔다. 이번 전시에는 회화 수십 점을 랩으로 칭칭 감싸 ‘누에고치’를 연상시키는 설치를 새롭게 시도했다. 2차원 캔버스를 3차원 입체로 확장하는 실험이었다. 이어서 12월 24일 개막한 유경자(1959년생, 세종) 개인전은 이달 6일까지 진행한다. 유경자는 다양한 종류의 흙을 판에 바르고, 이를 고온의 불에 구워 완성하는 ‘도자 회화’를 구사한다. 클래식 음악의 선율과 리듬에서 영감을 받은 추상화를 선보인다.
아르코 위원장 정병국은 지역예술도약지원사업의 최종 목표를 “지역과 중앙을 잇는 미술생태계의 교두보”이자 “예술가가 안정적인 창작 기반에서 자유롭게 꿈꾸고 성장할 수 있는 산실”로 설명했다. 올해 처음 출범한 지역예술도약지원사업이 단기 성과에 머물지 않고, 로컬 미술인의 성장을 꾸준히 견인하는 제도적 플랫폼으로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