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에서 즐기는 ‘아트호캉스’

국내 유일 미디어아트페어 루프플러스 성료
2026 / 05 / 29

국제 미디어아트 페스티벌 루프랩부산(Loop Lab Busan)이 4월 16일부터 6월 28일까지 부산 일원에서 열리고 있다. 부산시립미술관을 중심으로 전시, 포럼, 아트페어, 스크리닝 프로그램 등이 도시 전역에서 진행된다. 부산시립미술관은 <디지털 서브컬처>(4. 16~6.28)전을 선보인다. 동시대 시각문화의 핵심인 숏폼과 릴스 등 모바일 기반의 디지털 매체를 재해석하여 미술관 야외조각공원과 부산시청 미디어월 등 도시 외벽과 공공장소로 확장했다. 이처럼 루프랩부산은 해운대와 원도심, 미술관과 로컬 갤러리, 호텔을 연결하여 드넓은 해안 도시 부산의 지리적 특수성과 함께, 도시 전체를 살아 움직이는 동시대미디어아트의 실험장으로 탈바꿈시켰다.

<디지털 서브컬처>전 전경 2026 부산시립미술관 야외조각공원 제공:부산시립미술관
데이비드 사우더 <핼러윈드> 2025(앞) 루시아 <누가 살인자인가?> 2024(뒤) 제공:부산시립미술관

그중 루프플러스(Loop Plus, 4. 23~26)가 그랜드조선 부산에서 개최되었다. 지난해 ‘루프랩부산페어’로 처음 열린 이 행사는 올해부터 루프플러스라는 이름으로 운영된다. 루프바르셀로나와의 협력을 바탕으로 호텔 객실을 전시장으로 활용한 미디어아트페어라는 점에서 이목을 끌었다. 루프플러스는 상업적 아트페어라기보다 오히려 영상작업을 특정한 체류 환경 속에서 경험하도록 구성한 플랫폼에 가깝다. 호텔 객실이라는 공간에서 관객은 공간 안에 잠시 머무르는 임시적 거주자의 위치에 놓인다.

우리는 대개 미디어아트를 전시장에서 만난다고 생각한다. 어두운 공간과 스크린, 그리고 그 앞을 지나가는 관객들. 이때 미디어는 ‘보여지는 것’으로 이해된다. 그러나 여기서는 이 전제가 다르게 작동한다. 미디어는 공간 안에 놓이지 않는다. 공간 자체의 ‘설계자’다. 호텔 객실은 이 전환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는 장소다. 관객은 복도를 따라 이동하다가 하나의 문 안으로 들어서서 영상작업과 마주한다. 복도에는 호텔 특유의 편안한 조명이 이어지고, 문이 열리는 순간 객실 안의 사운드와 화면의 빛이 몸을 감싼다. 작은 규모, 제한된 시야, 가까운 거리. 이 조건들은 경험을 공공 전시의 리듬에서 분리해, 머무름의 시간으로 전환한다. 작품은 스쳐 지나가는 이미지가 아니라, 일정 시간 함께 존재해야 하는 환경이 된다.

머무르는 전시, 흔들리는 감각

이러한 환경에서 친밀함은 자연스럽게 주어지지 않는다. 그것은 공간의 구조와 장치의 배치를 통해 구성된다. 객실은 본래 개인의 체류를 위한 장소이지만, 이 전시에서는 감각을 조직하는 조건으로 전환된다. 화면의 위치, 사운드의 방향, 조명의 감도까지 모든 요소는 특정한 경험을 유도하도록 설정된다. 침대와 소파가 그대로 있는 객실 구조는 관객의 시청 자세를 다양하게 바꾼다. 우리는 작품 앞에 서있기보다, 공간 안에 머무는 방식으로 감각하게 된다.
이때 하나의 균열이 드러난다. 객실은 ‘나만의 공간’이라는 안전한 고립을 제공하지 않는다. 큐레이터가 상주하고, 다른 관객이 같은 공간에 머물기도 한다. 우리는 타인의 존재를 의식한 채 그 공간에 머문다. 복도에는 발소리가 들리고, 문은 반복해서 열리고 닫혀 객실의 사운드와 뒤섞인다. 이 어긋남은 감각을 끊임없이 조율 중인 상태로 남게 한다. 바로 이 지점에서 루프플러스는 우리가 익숙하게 생각해 온 미디어아트의 몰입 방식을 교란한다.

루프플러스(2026) 저스피스재단 염인화 작가 솔로 부스 제공: 루프플러스

우리는 보통 미디어아트를 고요하고 어두운 전시장 안에서 스크린을 바라보는 방식으로 경험하거나, 사방을 둘러싼 화면과 사운드 속에서 이미지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몰입형 전시로 만나왔다. 그러나 루프플러스는 어디에도 완전히 속하지 않는다. 작은 공간 안에 침대와 소파가 그대로 남아있고, 사운드는 내부를 완전히 채우지 않으며, 조명 또한 어둡지 않다. 발소리와 다른 관객의 움직임은 공간을 끊임없이 외부와 연결된 상태로 남겨둔다. 관객은 작품 앞을 지나가지도, 작품 안에 완전히 놓이지도 않는다. 작품과 함께 머문다. 그러나 감각은 계속해서 분산되고 주변을 의식하는 상태로 남는다. 바로 그 미완의 몰입이 이 전시를 특징짓는 감각적 조건이다.

이러한 조건이 실제로 어떻게 작동하는지는 개별 작품과 공간의 관계를 통해 보다 구체적으로 드러난다. 정 말러의 <스키조필룸 코뮤네의 2만 3천 개의 성과 그 외의 이야기들>(2026)은 객실 내부를 단순한 영상 상영 공간이 아니라 버섯 생태의 감각이 스며드는 공간으로 바꾸어놓는다. 버섯의 성장과 부패, 뒤틀림과 증식의 리듬은 침대와 창, 커튼과 바다 풍경 위에 중첩되며, 공간 전체의 공기와 시간성을 서서히 전환한다.

준지에 <패션> 싱글채널 비디오, 사운드, 컬러 2017 치웬갤러리 출품작 제공:치웬갤러리

반면 한스 옵 드 베크의 <배니싱 포인트>(2024)는 객실을 보다 구조적이고 사유적인 공간으로 변형한다. 애플, 메타, 아마존 등의 인프라를 따라가는 영상은 플랫폼 권력이 어떻게 우리의 위치와 움직임을 조직하는지를 드러낸다. 침대 앞에 떠있는 스크린은 보이지 않지만 분명 작동하고 있는 네트워크 구조를 응시하게 만드는 창으로 기능한다.

소회우의 <더 화이트 워터스>(2019)는 객실 내부를 보다 불안정하고 색으로 가득한 감각적인 공간으로 물들인다. 세 개의 스크린에 분산된 신체 이미지와 녹색, 붉은색 등 원색적 조명은 침대와 벽, 어두운 객실 전체에 스며들어 낯선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영상은 젠더와 욕망, 폭력과 정체성의 문제를 서사보다 분위기와 감각의 형태로 확장한다.

세 작품은 서로 다른 방식으로 객실을 조직한다. 느리고 침잠하는 감각을 만들기도 하고, 분산된 시선과 불안정한 긴장감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하나의 감각만을 전제하지 않는다. 관객은 깊이 빠져들기보다, 계속해서 주변을 의식한 채 작품과 함께 머문다. 사적인 공간의 침대와 커튼, 창밖의 풍경은 스크린과 뒤섞여 공간 전체를 새롭게 구성한다. 이 지점에서 미디어는 공간 안에 놓인 대상이라기보다 공간 자체를 변화시키는 조건으로 작동한다. 객실은 더 이상 머무름의 장소가 아니라, 다양한 감각을 유도하는 하나의 임시적 미디어 환경으로 변모한다.

루프플러스가 제시하는 것은 미디어의 확장이 아니다. 전시는 공간 자체가 미디어로 작동하기 시작하는 조건을 가시화한다. 우리는 이 공간 안에서 때로 혼자 있는 것처럼 느끼지만, 그 감각은 완전히 자율적인 것이 아니라 구성된 결과일 수 있다. 객실 안에서 발생하는 친밀함은 자연스럽게 주어지는 상태가 아니라, 설계되었으면서도 완전히 고정되지 않는 조건으로 남는다. 곧바로 다른 관객이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올 테니까. 우리는 자율적으로 감각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어쩌면 배치되어 있는지도 모른다. 루프플러스가 남긴 것은 화려한 스크린의 향연이 아니라, 우리의 감각이 어떻게 구성되고 배치되는지를 되돌아보게 만드는 경험일 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