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은 혁명이다
1990년 보이저 1호가 64억km 떨어진 우주에서 지구를 촬영한 한 장의 사진은 인류의 자기 인식에 거대한 파문을 몰고 왔다. 칼 세이건이 ‘창백한 푸른 점’이라 명명한 이 이미지에서 인류의 모든 역사와 갈등, 사랑과 증오는 한낱 티끌에 불과했다. 제주 포도뮤지엄에서 열리고 있는 기획전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8. 9~2026. 8. 8)은 바로 이 우주적 관점에서 촉발한 근본적인 물음에서 출발했다. “광활한 우주 속 미약한 존재인 우리는 왜 서로를 향해 끊임없는 갈등을 벌이며 살아가는가?” 김한영, 로버트 몽고메리, 마르텐 바스, 모나 하툼, 부지현, 사라 제, 시부야 쇼, 카나자와 수미, 송 동, 애나벨 다우, 이완, 제니 홀저, 라이자 루 등 국내외 작가 13인이 참여했다.
이번 전시는 ‘망각의 신전’ ‘시간의 초상’ ‘기억의 거울’ ‘답은 사랑이다’ 등 네 개의 테마로 구성된다. 증오와 분열의 시대를 돌아보고, 우리 자신을 성찰하는 과정을 거쳐 ‘사랑’이라는 해답에 이르는 여정을 선사한다. 먼저 ‘망각의 신전’은 차별과 혐오, 폭력으로 점철된 현실의 민낯을 드러낸다. 팔레스타인 난민 출신 모나 하툼은 <Remains to be Seen>에서 1.6톤에 달하는 철근과 콘크리트를 허공에 매달았다. ‘남아있는 잔해’와 ‘두고 볼 일’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지닌 작품은 ‘무너진 폐허’일 수도 있고, ‘미래에 완성될 건물’일 수도 있다. 희망과 절망이 교차하는 기로에서 폭력이 삶에 드리우는 위협을 암시했다. 홀저의 <Cursed>는 2020~21년 미국 대선과 의회 폭동 당시 SNS에서 수집한 혐오 표현을 납판에 새겼다. 인터넷에서 확산, 소비되던 문장을 고대 로마의 서판 형식으로 재현해 오늘날 증오가 얼마나 빠르게 퍼지고 잊히는지 풍자했다.
라이자 루의 <Security Fence>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줄루족 여성들과 1년에 걸쳐 철조망을 비즈로 덮은 작업이다. 아파르트헤이트 정책하에 흑인을 감금했던 철조망은 반복적 수공 노동을 거쳐 폭력의 도구에서 치유의 기념비로 전환된다. 당시 한 작업자는 말했다. “우리는 철조망을 사랑으로 덮고 있다.” 한편 다우는 『미국 독립선언서』를 시민의 언어로 다시 채웠다. 혁명의 뜨거운 어조로 시작된 원문은 “기다린다” “손을 내밀다” “숨을 쉰다” 같은 일상의 언어로 이어진다. 우리가 살아가는 일상이야말로 정치만큼 중요한 무대라는 사실과 정치적 변화는 일상처럼 반복되고 자연스럽게 일어나야 한다는 인식을 환기했다.
작은 것들을 위한 시
‘시간의 초상’은 가차 없이 흐르는 시간 앞에서 인간이 느끼는 무력감을 성찰한다. 카나자와의 <신문지 위의 드로잉>은 신문지에 반복적으로 선을 그어, 하루하루 흐르는 시간을 연필의 겹으로 시각화했다. 작가의 노동 집약적 행위는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개인의 경험을 전 세계의 사건이 담긴 뉴스에 덧씌워 거대 서사에 가려진 존재를 드러내는 저항이다. 바스의 <리얼 타임 컨베이어 벨트 클락>은 시계를 조립하고 해체하는 노동자의 반복 공정을 영상에 담았다. 시간의 흐름이 인간의 행동을 규정짓는 틀로 작동한다는 사실을 폭로한다. 실제 시간과 똑같이 작동하는 영상 속 시계로 시간에 갇힌 우리의 모습을 돌아보게 한다. 이완은 세계 곳곳 사람들의 노동과 식사 시간을 조사했다. <고유시>는 각자 다르게 흘러가는 삶의 속도를 계산해 낸다. 그렇게 탄생한 시계 560개는 제각기 다른 리듬으로 째깍거리며 시간의 상대성과 사회적 불균형을 환기한다.
폭력의 현실에 무력한 인간. 여기서 우리는 무엇을 믿고 살아갈 것인가. 세 번째 테마 ‘기억의 거울’에 이르러 전시는 만연한 상처에도 여전히 빛나는 일상의 아름다움, 회복의 가능성을 건넨다. 부지현의 <Solid Sea>는 소금과 폐집어등으로 구성된 설치작업이다. 작가에게 소금은 생명을 상징하며, 그 위로 드리워진 조명은 적막한 바다를 비추는 별빛을 은유한다. 쓸모를 다한 사물이 연출하는 고요한 풍경은 파국의 자리에서 다시 살아갈 용기와 희망을 불러일으킨다. 송 동은 거리에서 수집한 오래된 문과 창문을 나란히 세워 하나의 조각으로 엮었다. 크기, 형태가 제각각인 오브제가 서로에게 의지하며 서있는 장면으로 불완전한 존재가 함께할 때 완성되는 연대를 형상화했다. 시부야의 <Headline and Sky>는 전쟁과 재난, 참사의 소식이 실린 신문지에 같은 날 새벽 작가가 목격한 하늘 풍경을 덧입힌 작업이다. 팬데믹 초기부터 매일 아침 지속된 이 작업은 삶을 회복하는 힘이 거창한 사건이 아니라 사소한 일상에 깃들어 있다는 사실을 일깨운다.
결국, “답은 사랑이다”. 야외에 설치된 몽고메리의 <Love is the Revolutionary Energy>는 전시의 마지막 작품이자, 증오의 시대에 내놓은 예술적 대안이다. 작품에 쓰여있듯 “사랑은 어둠을 밀어내고 우리 사이의 거리를 무너뜨리는 혁명적인 에너지”이기 때문이다. <우리 이토록 작은 존재들>전은 인간 존재의 연약함을 직시하지만, 외려 그 나약함으로 희망을 그려낸다. 우리가 이토록 작은 존재들이라면, 서로를 품는 것만이 유일한 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