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의 결혼, 우리는 부부다

2025인구주택총조사 동성 부부 입력 허용, 미술계의 변화는?
2025 / 12 / 01

과잉 성애화된 게이, 우울하고 가난한 레즈비언, 죽은 트랜스 등 한 축으로만 비대하게 성소수자의 삶을 그려내는 창작물이 적지 않은 요즘, 퀴어 미술가로서 현실 성소수자의 삶을 어떻게 견인할지 고민하게 된다. ‘퀴어’ 딱지가 붙은 창작물이 ‘소수자가 등장하는 콘텐츠’가 아니라 ‘낮에도 퀴어하기를 희망하는 사람의 창작물’이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러니 삶에 주어진 이미지 너머를 자주 상상해야 했다. 퀴어 주체의 능동적 권리 실현은 비단 퀴어 작가만의 과업이 아니기 때문에, 성소수자인권운동 현장에서 머물며 만나게 되는 인연과 상황으로부터 새로운 상을 보기를 기대했다.

<흘리는 연습>전 전경 2025 윈드밀_박민영 기획. © 박민영

지난 10월 22일에는 성소수자의 삶을 온 시간대로 확장하려는 변화가 일었다. 2025인구주택총조사에서 처음으로 성별이 같은 가구원 사이에도 관계를 ‘배우자’나 ‘비혼 동거’로 표시할 수 있게 되었다. 동성 배우자를 선택하면 뜨던 메시지의 ‘오류’가 국가의 실책임을 인정한 셈이다. 국정 감사장에서 국가데이터처장은 이 변화를 두고 “통계는 사회를 비추는 거울과 같다”라고 말하며, 보고 싶지 않다고 해서 그 부분을 빼고 비출 순 없다고 강조했다. 국가데이터처는 이를 기술적 수정에 가깝게 설명했다. 이 변화를 역사적인 결정이라고 부른 건 행정이 아니라 오히려 성소수자인권운동의 현장이었다. 전국 49개 단체가 모인 한국성소수자인권단체연합 ‘무지개행동’은 올해 4월 제21대 대통령 선거를 앞두고 ‘성소수자 국정과제 요구안’을 발표했다. 차별금지법 제정, 혼인 평등, 가족 구성권 보장과 함께 “성소수자 인구 통계 등 실태조사”를 올렸다. 이번 변화는 그에 대한 응답이다. 성소수자 이슈가 소수의 인정 투쟁에서 구체적인 사회, 복지, 노동 정책을 설계해야 할 인구 집단의 문제로 바뀌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2024년 10월 동성 부부 혼인 평등 소송 기자회견 현장. © 모두의결혼

동시에 작년 10월 11쌍의 동성 부부가 ‘모두의 결혼’ 캠페인과 함께 혼인평등소송을 제기했다. 이들은 혼인 신고 불수리 처분을 다투는 소송 서류에 이름을 기재한 손으로, 이제 인구 조사 화면에서 관계 항목을 ‘배우자’라 선택할 수 있게 됐다. 법원은 아직 이들을 부부로 받아들이지 않고 있지만, 최소한 국가 통계는 더 이상 이것을 “없는 관계”라고 말할 수 없게 된 것이다. 2013년으로 거슬러 올라가 보자.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회원 김승환·김조광수 부부는 청계천 앞에서 수많은 하객과 시민이 지켜보는 가운데 ‘당연한 결혼식’을 올렸다. 언론은 이를 “한국 최초의 공개 동성 결혼식”이라 칭했고, 그날의 장면은 이후 한국성소수자인권운동에서 중요한 이미지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행정 기록에서 두 사람은 끝내 서로의 ‘배우자’로 불리지는 못했다. 올해 인구주택총조사 개편은 그런 두터운 시간 위에 올라온 아주 얇은 한 문장이다. “이것은 부부이다.”

나는 무언가가 사회를 그대로 비춰야 한다는 당위를 절반쯤만 믿는다. 통계의 은유는 환영할 만한 맥락이었지만 같은 이유로 참담하게도 들렸다. 국가가 든 거울은 늘 어떤 부분을 틀 안쪽으로 초대하고, 어떤 몸은 잘려 나가길 의도해 왔으니 말이다. 무엇도 저절로 사회를 비추지 않는다는 사실이 야속할 때면, 틀의 방향을 돌리거나 성소수자의 삶을 온 시간대로 확장하는 데 밤낮을 쏟는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린다. 그들을 믿으며 나머지 절반의 마음을 채운다. 그제야 ‘퀴어’와 ‘예술’이 붙어 무엇이 될는지 아른거리면서 모양을 잡아갈 것이다. 나 자신과 성소수자 커뮤니티의 삶을 함께 견인하는 미술을 이어갈 테니, 많은 사람이 동료가 되어주기를 바란다.

박민영 / 1996년생. 한국예술종합학교 조형예술과 예술사 졸업. 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상근 활동가. 홀1(2022)에서 개인전 개최. 서울에서 거주 활동. © 박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