별처럼 남은 이름
한국 현대조각의 거목 석주 윤영자(石洲 尹英子, 1924~2016) 서거 10주기를 기념하는 대규모 행사가 열렸다. <별처럼 남은 이름, 석주 윤영자 서거 10주기 기념전 - 그리고 석주 미술상 수상 작가전>(7. 16~8. 16 가나아트센터). 윤영자 회고전에는 조각작품 20여 점과 함께 석고 원형, 일기, 영상 등 미공개 자료를 공개해 고인의 삶과 예술을 입체적으로 조명했다. 석주미술상은 1989년 석주문화재단 설립과 함께 제정된 국내 최초의 여성미술상이다. 이번 전시에는 역대 수상자들의 작품을 전시했다. 조각가이자 교육자로 또 후원자로 92년 생애를 걸었던 윤영자의 예술세계를 확인하고, 그 정신이 후대 작가들에게 어떻게 계승되고 확장되었는지 조망하는 자리이다.
윤영자는 ‘해방 제1세대’ 조각가다. 한국 조각계는 해방 이후의 좌우익 대립, 6.25전쟁을 거치면서 작가들의 월북, 작고 등으로 수적 열세에 놓였다. 그는 1947년부터 근대 조각의 선구자 윤효중, 윤경렬을 사사하며 조각의 기초를 다졌다. 1949년 홍익대 미술학부가 창설되자 조각과 제1회 입학생으로 입학했다. 여성 조각가의 탄생을 예고하는 신호탄이었다. 윤영자의 작가적 위상은 언제나 한국 조각계의 심장에 있었다. 그는 대한민국미술전람회 제1회전부터 제30회전까지 단 한 번도 거르지 않고 출품하는 경이의 기록을 세웠다. 문교부장관상과 특선 4회를 수상했으며, 이후 추천 작가, 초대 작가로 활약하며 여성 조각가의 위상을 굳건히 세웠다. 이번 회고전에는 윤영자의 ‘생명주의(biomorphism) 조각’ 20여 점을 전시한다. 그는 남성 중심의 강인하고 거친 표현이 주류를 이뤘던 조각계에서 따뜻한 모성, 자연의 생명력을 부드러운 ‘곡선 미학’으로 구현했다. 이번 전시는 그의 조각 양식의 전개를 한자리에 모았다. 윤난지는 다음과 같이 평했다. “윤영자의 작품은 크게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단순화된 윤곽선의 여체 또는 모자상, 알 같은 형상을 품고 있는 익명의 생명체, 율동적 움직임의 일루전을 내포한 추상 형상 등인데, 이들은 결국 ‘모성’이라는 주제로 수렴한다. 그의 작업에는 여성으로서의 주체 의식이 내재해 있는 것이다. 생명 현상이라는 보이지 않는 힘을 시각화하기 위해 윤영자가 기용한 형식은 ‘정(靜)과 동(動)의 변증법’이라는 말로 요약할 수 있다. 세포가 분열하여 두 개의 개체로 정착되고, 그것들이 또다시 분열하여 또 다른 힘의 균형점에 이르는 것과 같은 탄생과 성장의 과정은 끊임없이 유동하는 힘과 그 힘을 구체화하는 정적인 물질 간의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진다. (…) 꽉 찬 덩어리와 텅 빈 공간, 수직적 견고함과 수평적 유동성, 매끄러운 윤곽선과 거친 표면, 전체 구성을 제어하는 탄탄한 구조와 그것을 뚫고 불거져 나오는 곡선형의 매스 등이 팽팽한 긴장의 절정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것이다. 그것은 바로 앙리 베르그송이 말한 ‘생명의 약동’의 시각적 구현에 다름 아니다.”
윤영자는 공공조각 분야에서도 뚜렷한 족적을 남겼다. 그는 대형 기념비와 위인 동상을 제작해 역사의 공공성과 시대정신을 조각으로 구현했다. 대표작으로는 행주산성 권율 장군 행주대첩비, 다산 정약용 선생 동상, 김유신 장군상, 춘천 소양강댐 기념조형물, 녹색혁명 성취의 탑, 한국 기독교 100주년 기념탑 등이 있으며, 한국은행 상단 원형 부조도 손꼽히는 문화적 성과물이다. 윤영자는 조각교육에도 큰 발자취를 남겼다. 숙명여고와 경기고를 거쳐 수도사범대, 경희대, 서라벌예대, 중앙대 등에서 수많은 조각 인재를 길러냈다. 특히 1973년부터 목원대 미술학부 교수와 학부장으로 재직하며 1989년 정년 퇴임까지 미술 교육의 기틀을 다졌다. 특히 목원대학은 윤영자 교수의 예술 정신과 업적을 기리기 위해 2011년 대학 내에 석주조형관을 신축했다. 한편 그는 각종 미술단체의 회장을 맡는 등 미술행정에도 밝았다. 여성 조각가로는 처음으로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으로 추대되었다.
석주미술상 35년, 수상작가전도 개최
윤영자는 대학 퇴직이라는 삶의 전환기를 맞았던 1989년, 사재를 틀어 석주미술상을 제정했다. 그는 남성 중심의 미술사를 헤쳐 나온 인물이다. 김홍희가 지적했듯이, “여성 작가들이 겪어야 했던 현실적 어려움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터라, 후배들에게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고, 여성 간의 연대와 공동체 의식이 뿌리내리기를 바랐을 것이다. 석주미술상은 이러한 신념과 실천이 맺은 소중한 결실이었다.” 역대 수상작가는 다음과 같다. 1회 정경연(섬유공예), 2회 박상숙(조각), 3회 정보원(조각), 4회 석난희(서양화), 5회 이숙자(한국화), 6회 김승희(금속공예), 7회 홍정희(서양화), 8회 원문자(한국화), 9회 김혜원(조각), 10회 조문자(서양화), 11회 윤난지(평론), 12회 차우희(서양화), 13회 이불(조각 설치), 14회 김홍희(평론), 15회 송수련(한국화), 16회 유리지(금속공예) 장진(도예), 17회 권이나(서양화), 18회 심영철(조각 설치), 19회 홍순주(한국화), 20회 이자경(서양화), 21회 김정희(조각), 22회 송인헌(서양화), 23회 이소진(건축), 24회 이경미(조각 회화), 25회 안재홍(조각) 등이다. 순수미술과 응용미술의 위계를 깨고, 창작과 비평을 아우른다. 장르를 망라할 뿐만 아니라 학연 또한 열려 있다. 무엇보다 국내 유일의 여성 미술상 권위에 걸맞은 수상 작가의 면면이다. 그 자체가 한국 여성 미술의 약사(略史)라 해도 좋을 것이다. 35년을 면면히 이어온 석주미술상의 값진 열매가 아닐 수 없다.
석주문화재단은 한국 현대미술의 발전과 유망 작가 육성을 위해 지난 2005년부터 석주미술 특별상과 선정작가전을 운영하고 있다. 특별상은 국내외 예술계 발전에 지대한 공로를 세운 인물에게 수여한다. 이경성 김흥수 박서보 서도호 이종덕 김영석 이호재 등이 수상했다. 선정작가전은 40세 미만의 유망 작가들을 발굴하고 창작 활동을 지원하기 위해 마련되었다. 윤영자의 예술정신은 오늘도 살아있다.
아래 왼쪽부터 정보원 김홍희 조문자 김혜원 차우희 원문자 김승희 송수련 정경연,
윗줄 왼쪽부터 석난희(딸 양영회) 윤난지 송인헌 박상숙 윤혜정 (석주문화재단 이사. 윤영자의 딸) 홍순주 김정희 이경미 안재홍. 사진: 윤재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