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엔 없는 고향
누구에게나 지도에 없는 고향이 하나쯤 있다. 단 한 번 닿지 못했지만 그리운 곳. 독일 화가 프리드리히쿠나스 (1974년생)는 그 상상의 노스텔지어 를 그려왔다. 작가의 개인전 <가장 가깝고도 먼 곳(The Nearest Faraway Place)>이 페이스갤러리 에서 열리고 있다. 신작 회화와 수채 드로잉 30여 점을 공개했다. 가공의 풍경에 개인의 기억과 대중문화 이미지를 중첩해 익숙함과 낯섦, 현실과 허구 사이를 오가는 그림을 선보인다.
쿠나스의 삶은 이주의 연속이었다. 동독 켐니츠(당시 카를마르크스슈타트)에서 태어난 그는 유년기에 서독으로 옮겨 왔고, 2007년 대서양을 건너 로스앤젤레스에 정착했다. 지금까지 이사 횟수만 70여 차례가 넘는다. 이 끝없는 이동이 그의 작업을 밀어 올린다. 작가는 자신의 작업이 “존재하지 않는 곳을 향한 그리움”에서 비롯된다고 말한다. 연속된 이주에서 그에게 고향이란 개념은 불분명하다. 돌아갈 고향이 실재하지 않기에 그의 향수는 단일한 장소가 아니라 중첩된 풍경에서 발생한다.
독일 낭만주의 풍경화, 19세기 미국의 자연 예찬(허드슨강 화파), 만화와 팝송이 한 화면에 포개진다. 석양을 등지고 선 인물은 200여 년 전 카스파르 다비트 프리드리히가 형상화한 숭고미 를 떠올리게 만든다. 그러나 이는 곧 유머와 뒤섞이며 아이러니로 전이된다. 대자연과 어울리지 않는 맥주, 만화적으로 변용한 동물, 만화 캐릭터, 손으로 갈겨 쓴 대중가요 구절까지. 낭만주의의 숭고와 대중문화의 키치가 한데 만난다. 낯섦과 익숙함이 뒤엉킨 풍경이 감상자에게서 저마다의 그리움을 불러낸다.
이번 전시는 갤러리 2층에서 수채 드로잉을, 3층에서는 회화작품을 만날 수 있다. 전시작은 지난달 로스엔젤레스 작업실에서 미완성 상태로 서울에 도착했다. 쿠나스는 갤러리에서 작품을 완성했다. 작가가 보고 머문 곳이 화면에 포개진다면 서울도 그중 하나로 남을까. 지도에 없는 그 고향 어딘가엔 오늘 이 도시의 정취가 스며들었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