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휘자는 없다, 불협이 화음이

2026부산비엔날레 <불협하는 합창>
2026 / 09 / 10
줄리앙 크뤼제 <Zumbi Zumbi Eterno> HD 비디오, 10분 27초 2023 Photo: Copyright The Artist Courtesy of the artist and Mendes Wood DM, São Paulo, Brussels, Paris, New York

“이것은 지휘자가 없는 합창이다.” 에블린 사이먼스와 아말 칼라프 공동 전시감독의 선언으로 부산비엔날레 <불협하는 합창>이 닻을 올렸다. 언어가 힘을 잃고, 약자를 향한 혐오와 폭력을 공모하는 오늘날. 소리와 몸 그리고 연대가 어떻게 우리를 연결하고, 저항의 힘으로 확장되는지 묻는다. 다르고 다듬어지지 않은, 제각기 엇갈리는 소리가 뒤섞일 때야 더 역동적인 화음이 태어난다는 것. 이 역설이 65일간의 합창을 이끈다.

전시는 부산현대미술관, 스페이스원지, (구)부산남고등학교를 무대로 펼쳐진다. 철새가 깃드는 하구의 생태계, 해양 도시의 산업 기반, 배움의 기억을 품은 옛 교정 등 각 장소가 지닌 구체적 물성과 역사성이 전시의 맥락과 맞물린다.

타이샤니 <M.I.A.S.M.A>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6 Photo by 조재연

수만 마리 철새가 겨울을 나는 을숙도에 자리한 부산현대미술관은, 바다와 육지, 인간과 그 너머의 존재가 오가는 경계로 꾸려진다. 타이 샤니의 조각·사운드 설치 <미아즈마>는 고대 그리스 비극 「안티고네」를 지금 여기로 불러낸다. 왕의 명령을 어기고 오빠의 주검을 묻으려는 안티고네의 저항은, 권력이 누구를 살리고 누구의 죽음을 방치하며 누구의 애도를 허락할지 결정하는 오늘의 현실과 겹친다. 거대한 벽에서 울려 퍼지는 열두 목소리의 합창은 상실과 혈연, 단식 투쟁과 대량 절멸의 기억을 하나의 노래로 엮으며, 미술관을 의례이자 저항의 장소로 바꾼다. 기후 위기와 집단학살, 불평등이 교차하는 시대에 안티고네의 물음은 잊힌 죽음을 기억하고 함께 애도하는 절박한 부름으로 되살아난다. 듀킴의 <제1막: 피의 무대>는 십자가 모양의 마이크 스탠드를 중심으로 퀴어, 샤머니즘과 연관된 신체 조각을 라텍스 부조로 새겼다. 파이프 오르간과 라텍스를 연결해 악기에서 소리가 날 때마다 압축된 표면에 실루엣이 떠오른다. 수직으로 솟구치는 오르간의 음계와 짓눌린 몸을 대비했다.

줄리앙 크뤼제 <Zumbi Zumbi Eterno> HD 비디오 혼합재료 10분 27초 2023 Photo by 조재연

영도 봉래동 물양장에 자리한 스페이스원지는 100년이 넘은 보세 창고이자 옛 선박 수리 공장이다. 이곳에는 조선업의 흥망과 항구 노동의 기억이 곳곳에 배어있다. 실제 선원으로 일했던 필리핀 작가 조아르 송쿠야의 <선원직 프로젝트>가 걸리기에 이보다 어울리는 곳은 없다. 작가가 경험한 갑판 위의 노동과 사람들의 풍경을 회화 110점에 담았다. 브라힘 탈의 사운드설치 <불협화음의 합창: 바다의 창조>에는 ‘바다가 되고 싶다’는 열망을 노래한 곡을 친구와 가족, 동료가 저마다 다르게 해석해 불렀다. 열아홉 대의 스피커에서 영어, 프랑스어, 포르투갈어로 낭송되는 가사는 조금씩 겹치다 하나의 공명으로 모이고, 관람객이 들어설 때마다 그 울림은 새롭게 달라진다.

얀찬호롤 에르데네바야르 <토착성의 공명> 혼합재료 가변크기 2026 Photo by 조재연

70년의 역사를 뒤로하고 이전 폐교된 (구)부산남고등학교는 이번 비엔날레에서 제의와 심해의 무대로 탈바꿈했다. 백현주의 영상설치 <바다로 산으로 풀이 자라는 시체>는 일제강점기 아이들이 학교에서 부르던 군국가요 <우미 유카바>를 출발점으로 부산을 거쳐 강제 동원된 조선여자근로정신대를 소환한다. 부산 작가 박현성은 옛 급식실에 낡은 배관을 따라 이어지는 호스와 조명, 바닷속 생명체를 닮은 조각으로 공간을 푸른빛으로 물들이며 낯선 바다의 풍경을 연출했다. 버려진 교실 한 칸에는 몽골 작가 얀찬호롤 에르데네바야르의 조각이 놓였다. 울란바토르 시장에서 구한 나무와 금속, 인조 모피로 만든 열네 개의 의자가 새로운 학생을 기다린다.

소리는 상품 논리 바깥에서 태어난다. 소리는 붙잡거나 소유할 수 없다. 오직 울리는 동안에만 존재하며, 듣는 이의 ‘몸’ 안에서 비로소 완성된다. 이 점에서 프랑스 사상가 자크 아탈리는 저서 『소음』(1977)에서 음악을 사회 변화를 앞질러 알리는 예언으로 읽었다. “낡은 질서에 소음이던 것이 새로운 질서에는 화음이 된다.” 한 시대가 질서를 어지럽히는 소음으로 들리던 소리가 다음 시대에는 조화로 받아들여진다는 것. <불협하는 합창>에 뒤섞인 어긋난 목소리들도 그렇게 들린다. 지금은 불협일지라도, 이들은 아직 도착하지 않은 세계의 화음이다. 함께 귀 기울이는 순간, 새로운 세계는 이미 시작된다.

지휘자는 없다, 불협이 화음이 될 때 • ART IN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