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 단장, 비전

갤러리부터 미술관, 프로젝트형 전시까지. 새롭게 문을 연 미술공간을 따라 가을 소풍을 떠나보자. 먼저 경기상상캠퍼스에 경기사진센터(서둔로 166)가 들어섰다. 옛 서울농대 조경학관을 개조해 지하 1층부터 지상 4층에 달하는 사진 플랫폼으로 탈바꿈했다. 전시실, 포토북라운지, 오픈스튜디오 등을 마련했다. 개관전으로 고원태 구본창 김용호 목정욱 신선혜 오형근 조세현이 참여한 <빛나는 얼굴들: 아이콘에서 우리로>(3. 28~8. 9)를 선보였다. 대중적으로 알려진 스타와 경기도민 31명의 초상을 나란히 놓으며 ‘유명한 얼굴’과 ‘평범한 얼굴’ 사이에 놓인 위계를 지운다. <파밀리아: 가족과 가족사진>(3. 28~12. 6)전은 가족사진이라는 익숙한 장르에 시대의 풍경을 겹쳐 놓는다. 민주 배진희 신정식 양승욱 이선민 정연두 최은주가 참여했다. 향후 지역 작가 포트폴리오 리뷰와 사진 아카이브 구축 등의 프로그램도 이어갈 예정.

· 김해시립김영원미술관 아래 · 박서보미술관

조각가 김영원의 이름을 내건 김해시립김영원미술관(가야로 243)이 4월 4일 출범했다. 전시실 세 곳과 수장고, 아카이브, 교육 공간 등을 갖췄다. 김영원은 광화문 세종대왕 동상과 동대문디자인프라자의 <그림자의 그림자> 연작으로 알려진 한국 구상조각의 거장이다. 작가가 평생 제작한 작품 258점을 고향에 기증한 것이 미술관 설립의 주요 기반이 됐다. 개관특별전 <확장하는 인간>은 인간과 기술, 도시의 관계를 세 개의 전시로 풀어냈다. <김영원: 형상을 넘어 울림으로>(4. 4~10. 11)전에서는 인체에 천착해 온 김영원의 작업 세계 전반을 조망했다. <경계는 울리고 생은 넘친다>(4. 4~8. 16)전에는 백남준, 이응노 등 15인(팀)의 회화, 키네틱, 설치, 뉴미디어 작품을 선보였다. 마지막으로 <글(자)감(각)>(4. 4~11. 1)전은 국립한글박물관과 공동 개최한 ‘제5회 한글실험프로젝트’이다. 문자와 쓰기, 도구의 관계를 인공지능 시대의 관점에서 짚는다. 세종대왕 동상 원형을 포함해 김영글 김초엽 마음스튜디오 박윤형 석재원 임태희 등 23인(팀)이 참여했다.

다음으로 박서보미술관(연희로24길 9-54)이다. 박서보의 예술과 정신을 이어가고자 그의 생전 작업실이었던 연희동에 자리를 잡았다. 지하 2층부터 지상 3층의 건물은 전시실과 함께 워크숍, 커뮤니티 공간, 야외 정원 등을 마련했다. 첫 전시는 <박서보와 흐엉 도딘: 비움 그 충만>(8. 21~2027. 1. 3)이다. 단색화 거장 박서보와 베트남 출생으로 파리에서 활동하는 흐엉 도딘(Huong Dodinh)의 회화 42점을 내놓았다. 박서보가 한지 위에 반복적으로 선을 긋고 밀어내는 행위로 시간의 축적을 시각화했다면, 도딘은 천연 안료와 유기성 재료를 여러 겹 쌓아 빛과 색의 깊이를 만든다. 도딘이 2023년 박서보와의 만남을 기억하며 제작한 <X.K.N.31>(2025~26)도 함께 볼 수 있다.

부산에서 아부다비까지, 글로컬리티 플랫폼

성수동에는 젊은 작가를 겨냥한 실험적 갤러리 프로젝트 유령이 등장했다. 개관전 <첫째 몸>(4. 10~30)은 상업 갤러리에서 개인전을 연 적 없는 1985~2004년생 작가 16명을 불러 회화, 조각, 설치 120여 점을 선보였다. 매물로 나온 빈 건물을 전시장으로 삼은 것도 특징. 작가의 경력이나 갤러리의 특수한 공간보다 ‘어떤 작업이 어떤 경로로 미술계에 진입하는가’를 실험한다. 매 전시마다 장소를 바꾸는 프로젝트형 운영을 예고했다는 점에서, 갤러리와 대안공간 사이의 경계를 넘나든다. 김나무, 김수민, 박효범, 성채성, 손지혜, 연화성, 이정혁, 이현기, 임규환, 조홍신, 최봉석, 최은성, 최은영, 최정우, 최현희, 테일러 서 참여.

압구정에는 갤러리이행(압구정로 168)이 들어섰다. 기획자 양지윤과 중견 화가 서동욱이 한국 회화의 현재와 다음을 묻는다. 개관전 <이행 회화>는 이들이 직접 선별한 젊은 페인터 13명을 두 차례에 걸쳐 소개한다. <vol.1>(5. 16~6. 6)에는 강종길 김민조 문유소 문주혜 박시원 이코즈가 참여했다. 두 번째 전시 <vol.2>(6. 13~7. 11)에서는 금정훈 김명찬 김지명 박정윤 신재민 오병탁 윤경원이 바통을 이어받았다. 디지털 이미지의 범람과 장르 간 혼종이 일상화된 지금, ‘이행’ 중인 회화의 상태에 주목한다.
내달 1일에는 서울과 아부다비를 잇는 누화컨템포러리(회나무로 90)가 이태원에 거점을 마련한다. 바라캇컨템포러리를 이끌었던 이화선 이사가 설립했다. 전시, 연구, 커미션, 공공 프로그램, 기관 협업까지 아울러 아시아와 걸프 지역을 잇는 국제 문화 플랫폼을 표방한다. 개관전은 팔레스타인계 듀오 바셀 압바스(Basel Abbas)와 루안 아부-라흐메(Ruanne Abou-Rahme)의 국내 첫 개인전 <우리가 불이 되고 불이 우리가 될 때까지>(9. 1~11. 29)다. 작가는 기록물과 현장 채집, 사운드, 영상 등을 결합해 국가의 은폐와 폭력, 이주의 흔적을 다뤄왔다. 이번 전시의 중심 소재이자 동명의 영상작품에 등장하는 ‘불’은 파괴의 이미지인 동시에 지워진 기억을 다시 환기하는 장치다. 전시 개막일에는 팔레스타인 예술콜렉티브 빌나에스와 팔레스타인문화연대의 대담이 마련된다.

연화성 <명견주의> 종이에 한국화 물감 60×40cm 2024 유령 제공
한진수 개인전 <뜸> 전경 아트센터나비 제공
에드 엣킨스 <15th of May 2026, 16.09′55′′ (Passive Mech)> C-타입 프린트 30.5×45.3cm 2026 글래드스톤 서울 제공

다음은 재개관 소식이다. 한국 미디어아트 전문 기관 아트센터나비(율곡로1길 37)가 종로구 사간동에 새로운 둥지를 틀었다. 이번에는 단독 건물 전체를 활용해 운영의 자립성과 공간적 확장을 꾀했다. 첫 전시는 키네틱 설치작가 한진수의 개인전 <뜸: A Pregnant Pause>(6. 11~8. 1)이다. 작가는 기계와 자연, 인공과 유기체의 경계에 천착해 왔다. 이번 전시는 속절없이 빠르게 흐르는 시간 속 저마다의 ‘뜸’을 포착했다. 무한한 붓질을 누적하며 완성을 미루는 <그림형성기>, 흔적의 생성과 소멸을 반복하는 <화이트 폰드>, 시작과 끝의 경계를 흐리는 <불확실의 꽃> 등을 공개했다. 부산시립미술관(APEC로 58)은 약 2년의 리노베이션을 마치고 9월 17일 재개관할 예정이다. 1998년 개관 이후 전시장과 수장고 곳곳을 손보고 카페와 편집숍 등 관람객 편의 시설도 확충했다. 재개관의 첫 화두는 미술관의 역할 자체다. 국내외 10여 개 기관과 함께 만드는 <퓨처 뮤지올로지>전은 작품을 수집하고 전시하는 전통적 기능에서 벗어나 미술관이 사회 안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는다. <사회와 미술: 해방에서 한국전쟁까지>전은 1945년 해방과 한국전쟁 사이의 격동기를 미술과 동시대적 해석으로 다시 들여다본다. 기관의 역사를 되짚는 <다시 짓는 미술관>전, 어린이를 위한 <안전기지>(가제)전도 함께 이어질 예정이다.
마지막으로 한남동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한 갤러리 두 곳이다. 글래드스톤의 유일한 아시아 플래그십 글래드스톤 서울(이태원로 55가길 1)이 확장 이전했다. 새로운 공간은 전시 면적을 약 두 배 키웠으며, 건축가 조민석이 이끄는 매스스터디스가 설계를 맡았다. 재개관전으로 영국 작가 에드 앳킨스(Ed Atkins)의 국내 첫 개인전 <1 day in space>(8. 31~10. 31)를 내세웠다. 앳킨스는 사진과 디지털 기술, 글쓰기와 사운드를 엮어 인간의 신체성과 감정, 가상 이미지의 불안정한 관계를 다뤄왔다. 타임랩스 기법의 신작 영상 <Passive Mech>을 포함하여 작가의 작업 세계를 살펴볼 수 있는 사진 연작을 함께 내놓았다. 2011년 출범 이후 한국과 해외 작가를 꾸준히 소개해 온 갤러리바톤(이태원로 223-9)은 소속 작가들을 내세운 그룹전 <Grace>(9. 1~30)로 다시 문을 열었다. 조각 언어의 본질을 탐구해 온 전국광, ‘가시화가’ 송번수를 비롯해 리암 길릭, 조나단 몽크, 리너스 반 데 벨데, 로사 로이 등 글로벌 아트씬의 주목을 받는 작가 24인의 작품을 한자리에서 만나볼 수 있다.

새 공간, 새 단장, 새 비전 • ART IN CULTU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