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록달록 생명의 탑
애니 모리스 / 1978년 런던 출생. 파리 에콜데보자르, 런던 슬레이드미술학교 졸업. 상하이 포선파운데이션(2024), 티모시테일러갤러리(뉴욕 2023, 2019, 런던 2021, 2020), 프로방스 샤토라코스트(2022) 등에서 개인전 개최. 런던에서 거주 및 활동 중.
애니 모리스(Annie Morris)는 상실의 아픔을 리드미컬한 색채로 승화한다. 사산이라는 개인적 트라우마를 찰나에 피고 지는 꽃, 임산부의 배를 상징하는 동글동글한 구체에 빗대어 치유해 왔다. 그가 더페이지갤러리에서 국내 최초 개인전(9. 30~11. 2)을 열고 조각과 태피스트리 13점을 공개했다. Art는 이번 전시의 구성과 작가의 주요 예술관을 물었다. / 최수연 기자
— 10년 전 유산의 아픔을 겪은 후 임신, 생명, 희망이라는 주제에 천착해 왔다. 당신의 대표 <Stack> 연작은 구체를 쌓아 올린 조각으로 임산부를 형상화했다. 크고 작은 구체의 탑은 생명의 생동감과 유약함을 동시에 떠올린다. 2014년부터 시작한 이 연작은 10년간 어떤 변화를 겪었나?
Morris 나는 개인적인 삶의 경험에서 영감을 얻는다. 10년 전 첫 아이를 유산하고 이 작업을 시작했을 때 공 하나의 크기는 아주 작았다. 내가 겪은 아픔을 털어놓으려 시작했기에 작업의 부피나 질량보다는 고통과 불안을 가지각색의 즐거운 감정으로 바꾸는 데 주안점을 뒀다. 반면 지금은 형식적 측면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이전에는 비슷한 크기의 구체를 고르게 쌓아 올렸다면, 지금은 구체의 크기, 쌓인 형태와 균형의 미를 실험적으로 탐구한다. 크게는 높이 6m를 자랑하는 <Stack>도 있다.
어린아이의 순수한 마음으로
— 이번 전시에는 6점의 <Stack> 연작을 선보였다. 제작 과정을 설명해 달라.
Morris 먼저 폼보드를 각기 다른 크기의 공으로 깎고, 물감을 칠한다. 하나의 구체에는 한 가지 색만 칠한다. 그리고 공 하나하나를 쌓아가며 색 조합을 구상한다. 색을 선택하는 과정도 직관적이다. 그저 계속 쌓고, 바꾸고, 독특한 질감을 내려 모래와 석고를 표면에 바르면서 수정해 나간다. 극적인 효과를 위해 큰 구체와 작은 구체를 함께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그렇기에 <Stack>에서는 강렬한 원색의 조합이 아주 중요하다. 나는 하루 종일 일상에서 색을 인식한다. 작업에 주로 사용하는 색은 울트라마린, 바이올렛, 비리디언 등이지만, 매년 새로운 색상을 도입하기도 한다. 특히 이번 전시에서는 굉장히 어두운 비리디언을 만들고 싶어 기존에 사용하던 색상에 청록을 섞었다.
— 강철로 임산부의 옆모습을 조형한 <Flower Woman> 연작 또한 임신이 모티프이다. <Stack>이 생명의 아름다움과 연약함을 드러낸다면, <Flower Woman>에는 어떤 메시지를 담았나?
Morris ‘꽃 여인’은 인생의 일시성과 순간의 덧없음을 의미한다. 만개한 꽃으로 여성의 얼굴을 그렸다. 그러나 꽃은 피는 순간 져버린다. 마찬가지로 임신으로 부푼 배는 생명을 품은 ‘일시성’을 나타낸다. 종종 임산부가 아닌 여성으로 <Flower Woman>을 제작하기도 하지만, 이번 전시에 출품한 2점은 모두 임산부이다. 이들의 몸으로 노화, 모성, 죽음을 이야기하고 싶었다. 동시에 즉흥적인 느낌과 자유로운 에너지를 표현하고 싶어 단단하고 힘 있는 재료인 강철을 사용했다.
애니 모리스 <Flower Woman, Cadmium Red> 강철, 페인트 86×2×300cm 2024
— <If You Could Be Anyone>(2022), <Landscape in Cobalt Blue Pale>(2021) 등 태피스트리 작품에는 임산부, 동물, 자연, 신사 등 동화에서 보일 법한 인물과 풍경이 따뜻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Morris 내게 태피스트리 작업은 일기와 같다. 어릴 적 동심의 세계를 실로 표현하면서 순수한 순간으로 돌아가려는 노력을 기울였다. 색실의 스펙트럼은 놀라울 정도로 방대하다. 가령 실로 파란색을 표현할 때 수채화나 유화의 효과를 내기 위해 열 가지 종류의 실을 사용한다. 자글자글하게 운 천과 태피스트리로 만들어진 회화적 질감은 그림에 생동감을 불어넣는다. 나는 이를 ‘실 페인팅(thread painting)’이라 부른다. 이 작업은 조각과 회화 사이, 그 어딘가에 있다. 실 페인팅은 작품을 더욱 역동적으로 보이게 하고, 드로잉에 조각적인 면을 더한다.
애니 모리스 <If You Could Be Anyone> 리넨에 실 107.5×305cm 2022
— 섬세한 답변에 감사드린다. 이제 마지막 질문이다. 당신의 예술에서 최종 꿈은 무엇인가?
Morris 어린 시절 만든 작품과 지금 작품 사이에서 균형을 찾고 있다. 나는 항상 어린 시절의 순수함을 간직하려고 애쓰지만, 내 작업의 주요 테마가 상실인 만큼, 그러한 노력이 좌절될 때가 많아 아쉽다. 나아가 여성의 형상, 색의 순수함, 선의 율동감에서 일상의 소중함을 다시 발견하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