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위스 ‘미술 캐비닛’, 서울 상륙
갤러리에바프레젠후버는 스위스의 ‘국가 대표’ 갤러리다. 오스트리아 출신 에바 프레젠후버가 2003년 취리히에 전격 오픈했다. 우고 론디노네, 우르스 피셔, 피슐리&바이스 등 스위스 작가를 국제 무대에 선보여 왔다. 한국 미술계와는 2022년 프리즈 서울에 참가하며 연을 맺었다. 작년에는 더 밀접한 스킨십을 위해 경리단길에 ‘쇼룸’을 오픈했다. 프레젠후버를 만나 서울 쇼룸의 비전을 묻고, 갤러리 운영 노하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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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롤 던햄 <Qualiascope: Female Taken Alone> 리넨에 우레탄, 크레용, 연필, 아크릴릭 129.5×117×3cm 2021
— 갤러리에바프레젠후버(이하 GEP)는 스위스의 3대 갤러리로 불린다. 그러나 한국 독자들에게 그 위상이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갤러리 설립 배경이 궁금하다.
Eva Presenhuber 원래 나는 순수미술 전공자였다. 빈응용미술학교에 다니던 시절 여러 작가와 친구로 지냈다. 우고와도 그때부터 죽이 잘 맞았다. 졸업하고 나서 작업보다는 전시를 여는 일이 더 잘 맞는다는 걸 알았다. 1989년 취리히의 발케투름갤러리 디렉터로 일하며 갤러리스트의 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후 하우저앤워스와 5년간 파트너십을 거쳐 2003년 GEP를 설립했다.
— GEP는 한 작가와 오래 일하기로 유명하다. 주요 갤러리 프로그램을 알려달라.
EP 우고만 해도 30년 넘게 함께 일하고 있다. 대가로 발돋움한 후에도 신의를 지키고 있다. GEP는 프란츠 웨스트, 카렌 킬림닉, 수 윌리엄스, 샤라 휴즈 등 수많은 작가의 전시를 열어왔다. 갤러리는 우리 공간에서 여는 전시뿐 아니라 세계 각국에서 진행되는 작가의 개인전을 지원해야 한다. 최근 기억에 남는 일은 작년 뮤지엄산에서의 우고 론디노네 전시다.
— GEP 소속 작가는 다양한 국적과 매체를 아우른다. 정체성은 달라도 공통적으로 ‘페티시즘’이 감지된다. 작품의 물성이 특히 매혹적이다. GEP는 어떤 작가와 협력하길 선호하는가?
EP 사실 나는 순수 화가보다 공간을 정확하게 다루는 조각가와 설치작가를 더 보여주고 싶었다. 카렌 킬림닉, 더글라스 고든, 칸디다 회퍼 등이 그렇다. 판매가 어렵다고 여겨지던 퍼포먼스, 비디오, 공간설치도 이젠 트렌디한 매체로 자리 잡지 않았나? 2000년 갤러리에 합류한 더그 에이트킨은 실험적으로 공간을 점유하는 비디오작품으로 새 장르를 개척했다. 실험 정신이 중요하다.
— GEP의 서울 상륙 비하인드 스토리가 궁금하다. 취리히, 비엔나와 서울이라니! 독특한 행보다. 서울에 언제 처음 방문했는가? 흥미롭게 지켜보는 한국 작가는?
EP 2007년 3월 우고의 아라리오갤러리 전시로 처음 서울을 방문했다. 그해 아뜰리에에르메스의 마틴 보이스 개인전 오프닝을 위해 다시 서울을 찾았다. 이후 2022년 프리즈 서울이 우리를 다시 한국과 만나게 해주었다. 한국의 예술과 대중문화는 매우 역동적이다. 나는 2020년 뉴욕에서 구정아 작가의 전시를 진행하기도 했다. 올 9월 취리히 미그로스현대미술관에서 열릴 양혜규 개인전도 고대하고 있다.
— GEP는 2022년 프리즈 서울 참여를 계기로 서울 아트씬과 탄탄한 관계를 구축해 왔다. 2022~23년 토르비욘 로드란드와 루이사 갈리아르디의 개인전과 한 차례의 그룹전을 개최했다. 2024년 서울아트위크 기간에는 P21과 첫 협업 전시를 열었다. 기존 P21 전시장에 GEP의 쇼룸을 론칭했다. P21과는 어떻게 컬래버레이션하게 되었나?
EP 세 차례의 서울 팝업 전시가 성공적으로 열린 다음, P21의 최수연 대표가 쇼룸을 제안했다. 직접 가서 P21 공간을 보니, 부티크 같은 분위기가 매력적이었다. 게다가 한남동의 주요 미술관, 갤러리와 가까워 입지 조건이 좋았다. 이 쇼룸에서는 세계적 아티스트이지만 아시아에선 비교적 덜 유명한 작가를 소개할 예정이다. 정갈하게 큐레이팅된 캐비닛 스타일 전시를 열게 되리라. 소규모 전시는 작가에 대한 관점을 전환하는 데 도움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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존 딜그 <Wild Life> 캔버스에 유채 35.5×46.5×4cm 2024
— 한편, 당신은 스위스 아트바젤의 위성 페어인 ‘리스테’ 창립자이다. 1996년 아트바젤의 ‘대기자 명단’이라는 발칙한 뜻으로 신생 페어를 열었다. 리스테는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도전적인 페어로 꼽힌다. 이제 더 이상 운영에 관여하진 않지만, 창립 스토리가 궁금하다.
EP 1996년 발케투름갤러리가 아트바젤에 입성하지 못했을 때 ‘우리가 아트페어를 만들어버리자’라는 아이디어를 냈다. 당시 쾰른의 ‘언페어’와 비슷한 걸 해보자고. 솔직히 아트바젤이 우리를 막아설까 걱정했다. 다행히 긍정적인 반응이었다. 1990년대 후반~2000년대 초반엔 아티스트와 갤러리의 세대교체가 있었다. 아트바젤도 이를 인식하고 리스테를 수용했다. 많은 컬렉터와 큐레이터가 한자리에 모이는데, 다양한 작가와 갤러리가 주목받으면 그게 차차 시너지를 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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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보이스 개인전 <Celestial Snowdrops> 전경 2024 P21
— 올해는 전 세계적인 정치, 경제적 불안이 아트씬에 먹구름을 드리우고 있다. 당신은 35년 차 베테랑 갤러리스트. 미술시장을 어떻게 전망하는가?
EP 내 경험상 시장의 수축기는 항상 번영기로 이어졌다. 어려운 시기일수록 민첩하고 유연한 대응이 중요하다. 미래를 낙관하는 여유도 부려보고···. 침체기일수록 신념을 잃지 않고, 지속 가능한 방식으로 투자하기를 추천한다.
— GEP의 올해 계획을 살짝 귀띔해 달라. 당신의 궁극적인 목표는?
EP 취리히 공간에서는 2월 새 소속 작가인 리슬 라프, 4월 스티븐 시어러, 6월 작고 작가 프란츠 웨스트의 대형 개인전이 예정돼 있다. 비엔나점에서는 5월 젊은 화가 체이스 홀의 신작 회화 전시가 하이라이트다. 서울 쇼룸에서는 4월 샤라 휴즈와 오스틴 에디 아티스트 커플의 신작, 프리즈 서울 기간에는 토비아스 필스의 회화가 공개된다. 목표는, 우리 아티스트들과 함께 미술사 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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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프레젠후버. 현재 취리히에 2개, 빈에 1개 지점을 운영 중이다. 서울 쇼룸에서 3월 30일까지 아이오와 작가 존 딜그 개인전 진행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