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들 인간’의 우주 대탐험
그리스 출신의 젊은 화가 소피아 미촐라(Sofia Mitsola). 그는 관능적 여성 인물화로 ‘유사 신화’를 창조해 왔다. 고대 이집트와 그리스 조각, 일본 애니메이션, 포르노그래피, 영화와 소설 등의 모티프를 뒤섞어 여성 캐릭터를 제작하고, 이들이 활약하는 ‘가짜 대서사시’를 그렸다. 남성 중심의 신화 체계를 여성 서사로 전복해 성별 위계를 비틀었다. 당당하고 에너제틱한 히로인이 항상 그 중심에 있다. 한국 첫 개인전 <Astropoodles>(5. 31~7. 12 P21)의 주인공도 역시 여성이다. 더 정확하게는, 여성과 푸들이 한 몸이 된 하이브리드 괴수 ‘아스트로푸들’이 주연이다. 온순한 듯 보이나, 일순간 날카로운 이빨을 드러내고 뼈와 살점을 물어뜯는 괴생명체. 이 ‘반인반푸’가 사회의 공고한 정상 체계를 뛰어넘는 장쾌한 스페이스 오디세이를 따라가 보자.
그간 미촐라는 스핑크스부터 인어, 비너스 등을 캐릭터로 취해 뜨거운 사막과 시원한 바다를 누비는 인물의 모험담을 그려왔다. 현재 거주하고 있는 런던의 다양한 박물관과 미술관에서 포착한 여성 이미지 기호였다. 이번에는 처음으로 어둠 속에서 살아가는 은하계의 종족을 상상했다. 고전의 형식과 구조, 도상의 함의를 빌려 여성 정체성을 강조해 온 작업 세계의 골자는 공유하되, 배경과 정조를 음의 기운으로 확 바꾼 것이다. 그 계기는 한국의 달빛이었다. 미촐라는 지난가을 서울을 방문했을 때 교교한 달빛에 매료됐다고 한다. 이후 그는 서양의 늑대인간과 한국의 구미호 등 달에 관한 신화를 조사하다 ‘변신’의 키워드를 추출했다. 여기에 착안해 ‘아스트로푸들’을 탄생시켰다. 흥미로운 점은 그가 푸들을 택했다는 사실이다. 서양 사회에서 푸들은 폭넓은 문화적 코드를 함의한 동물이다. 17~18세기 유럽 궁정에서 유행한 견종인 푸들은 귀족 계급의 상징이었으며, 완벽하게 미용된 이미지는 그들이 인간의 심미를 위해 철저히 통제된 대상이었음을 암시한다.
“예술은 속임수의 여왕이다”
그런데 미촐라의 아스트로푸들은 자유롭게 우주 공간을 유영하고, 때로는 사나운 공격성을 내비친다. 훈육과 조련에 실패한 존재이다. 게다가 그들은 과한 장신구로 치장하고 있다. “내 캐릭터들은 주로 누드라서 소품 하나하나가 중요하다. 때로는 주얼리 한 점이 매력을 결정하니, 패션은 곧 인물의 성격이다. 나는 다양한 시대에서 영감을 얻는다. 가발은 로코코 스타일, 리본과 초커는 19세기 프랑스 회화를 참고했다. 푸들의 의상은 영화 <101마리 달마시안>의 크루엘라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모든 시대를 잡식해 과도하게 꾸민 여성과 비인간, 두 위험한 타자가 교배된 아스트로푸들은 ‘정상 사회’가 터부시하는 모든 잡종의 표상이 된다. 이제 미촐라는 여성성 탐구에서 한발 더 나아가 혼성성의 미학에 다다른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왜 아스트로푸들의 주거지로 우주를 택했을까? 우주는 지구의 법칙이 통용되지 않는 질서 바깥의 공간이다. 역사, 계급, 문명이 선재하지 않는 곳으로, 애초에 발붙일 땅이 없기에 상상과 욕망이 제한받지 않는 무한한 가능성의 지대이다. “신작은 도피, 변신, 초월을 다룬다. 내 캐릭터들이 비로소 지구를 떠나 천상의 세계로 들어갔다. 몸이 길쭉하게 늘어나고, 허벅지가 단단해진 것도 우주엔 중력이 없기 때문이다. 아름답고, 기이하지 않은가?”
무중력의 다른 말은 곧 무법이다. 미촐라가 만들어낸 하이브리드 괴수의 사회적, 신체적 자율성은 우주와 같은 무규범 지대에서 극적으로 드러날 터. 아스트로푸들에게는 현실의 질서를 떠나 자기 욕망을 실현할 최적의 놀이터가 바로 우주인 것이다. 미촐라는 우주를 새로운 터전으로 선사해, 스스로 규칙을 세우고 욕망을 마음껏 분출하는 창세 신화를 쓰도록 길을 열어줬다. 비록 그것이 회화라는 사각의 장에서만 벌어지는 속임수일지라도 말이다. “내가 그림의 인물이 된 듯 상상할 때가 좋다. 불가능한 몸을 잠시나마 살아보는 거다. 그 여정을 따라가면 현실에서 도피하는 기분이 든다. 예술은 속임수의 여왕이다. 그리고 나는 속는 걸 아주 좋아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