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욕망이 와르르
‘도넛 작가’ 김재용. 그의 도넛은 주방이 아닌 공방에서 탄생한다. 똥글똥글 모양에 알록달록 스프링클, 시선을 사로잡는 반짝이 크리스털…. 작가에게 도넛은 감정을 투영한 자화상이자 색채를 실험하는 캔버스이다. 누구나 쉽게 즐기고 공감할 수 있는 조형 언어로 관객의 시각을 ‘맛있게’ 홀린다. 지금 김재용의 개인전 <런 도넛 런>(2. 26~4. 5 학고재)이 열리고 있다. 신작 회화와 조각 시리즈 12점을 선보인다.

김재용 / 1973년 서울 출생. 코네티컷 하트포드아트스쿨 조각과 학사, 미시간 크랜브룩아카데미오브아트 도자과 석사 졸업. 학고재(2024, 2020), 아트스페이스호화(2023), 상하이 파워롱뮤지엄(2019), 보이시아트뮤지엄(2019) 등에서 개인전 개최. 서울과 뉴욕에서 거주 및 활동 중.
김재용에게 도넛은 섣불리 낙담하지 말라는 긍정의 아이콘이다. 2020년 학고재에서 연 개인전의 제목 ‘도넛 피어(Donut Fear)’에서 작가는 두려워 마라는 ‘Do not fear’의 발음을 유쾌하게 가져왔다.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온 세상이 움츠러들었을 때에도 웃음의 에너지를 공유하려던 그의 의도였다. 동명의 출품작을 제목으로 삼은 올해 전시도 활기찬 내일을 꿈꾼다. “전시 준비에 박차를 가하던 지난해 12월, 계엄령과 무안공항 여객기 추락 사고로 힘이 빠져있었다. 그때 영화 <포레스트 검프>의 대사 ‘런! 포레스트 런!!’이 생각났다. 응원에 힘입어 삶을 쟁취하는 주인공처럼, 나도 포기하고 싶을 때일수록 핑계 대지 말고 달리겠다고 마음먹었다. 혼란스러운 세상, 무기력에 빠진 젊은이들에게도 내달릴 수 있는 용기를 주고 싶다.”

<도넛 페인팅 시리즈> 도자, 섬유강화플라스틱, 레진, 크리스털 외 혼합재료 190×232×13cm 2022~25
김재용은 ‘챌린저’의 운명을 타고났다. 강한 행동력으로 거침없이 살아왔다. 작가는 유년 시절 사우디아라비아와 쿠웨이트에서 4년을 지내다 10살 때 한국에 돌아왔다. 어린 나이에 경험한 중동의 치밀한 아라베스크 문양은 작가의 미감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고등학교 조소부 활동으로 아티스트의 꿈을 펼치기 시작한 그는 더 넓은 세상을 경험하려 1994년 미국으로 훌쩍 떠났다. 그의 첫 번째 모험이었다. 코네티컷 하트포드아트스쿨에 진학해 다양한 국가 출신의 친구들과 교류하며 조각을 공부했다. 수행하듯 물레질하며 페인팅 이전엔 드로잉이, 조각의 기저에는 흙이 있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후 흙의 물성과 정면 대결하려 미시간 크랜브룩아카데미오브아트에서 도자를 전공했다. 2015년에서야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 본국을 새로운 무대로 누볐다. 미국과 한국의 ‘하이브리드’로 활동했다.

<달콤한 지식> 캔버스에 아크릴릭 가변크기 2025
도넛 트로피, 오늘의 주인공은 나야 나!
김재용의 두 번째 모험은 색채 실험이다. 그가 도넛 조각을 만들기 시작한 건 2010년 무렵.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로 생활고에 시달리던 작가는 평소 즐겨 먹던 도넛을 도자기로 빚었다. 그리고 이를 색깔 테스트용 타일로 이용했다. 색약을 지니고 있어 남들이 쉬이 선택하지 않을 만한 색을 조합했는데, 통통한 도넛에 얹은 쨍한 컬러감이 의외의 호평을 샀다. 도넛 작업은 말 그대로 어려운 상황의 명랑한 돌파구가 되었다. “나는 극단적으로 대비되는 색, 네온사인처럼 자극적인 색에서 편안함을 느낀다.” 그렇게 대표작 <도넛 페인팅 시리즈>(2022~25)가 탄생했다. 김재용은 작업 과정을 섬세하게 통제해 도넛의 인공적인 화려함을 극대화한다. 작가는 손으로 조형한 도넛을 가마에 여러 번 굽고, 사포질로 표면을 매끄럽게 다듬은 다음에 페인팅에 돌입한다. 점토에 유약을 먼저 칠한 후 가마에 구워 발색의 우연한 효과를 기대하는 일반적인 도자 제작 방식과는 전혀 다르다. 색칠이 끝나면 섬유 강화 플라스틱으로 도장하고 크리스털을 붙인다. 김재용은 미시간에서 도자를 전공하던 시절, 가까운 도시 디트로이트에서 열린 모터쇼를 보며 자동차의 반질반질한 미감에 홀렸다. 찰스 임스 같은 세계적 산업디자이너를 배출한 학풍도 한몫했다. 그 결과 김재용의 도넛은 새 차처럼 선명하고 황홀한 색감을 가지게 됐다.

<수고했어!> 스테인리스 스틸 197×600×130cm 2021~23
한편, 김재용의 작품은 자화상이기도 하다. 곰 모양 도넛은 ‘테디 베어’를 좋아했던 시절을, 별 도넛은 스타를 꿈꾸는 마음을 투영했다. <달콤한 지식>(2025)은 전시장의 벽을 바닥부터 천장까지 채운 신작이다. 마치 서재의 책처럼 분홍 주황 노랑 파랑 스프링클을 꽉 채워 그린 초대형 회화작품이다. 스프링클의 컬러는 작가가 그날의 ‘무드’를 결정하는 옵션이다. 분홍색은 끝내주는 하루를, 파란색은 센티한 하루를 상징한다. 단순한 시각 언어로 치환된 감정의 스펙트럼은 타인의 내면에 스며드는 통로를 낸다. <수고했어!>(2021~23)는 은빛 ‘도넛 트로피’ 조각 여러 점을 한자리에 모은 작품이다. 조각의 표면을 거울로 마감해, 고단한 하루를 살아가는 이들을 영광의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현실이 씁쓸할수록, 우리에겐 달콤한 위로가 절실한 법. 개인과 사회를 향한 김재용의 응원은 계속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