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덴세이션展
2014 / 10 / 07
장인 vs. 작가, ‘교감과 소통’
아뜰리에에르메스 재개관, <컨덴세이션(Condensation)>전 개최
2014. 10. 2~11. 30 아뜰리에에르메스(http://en.fondationdentreprisehermes.org/Know-how-and-creativity/Exhibitions-by-the-Foundation/Condensation-at-the-Atelier-Her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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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리버 비어 <Silence is Golden>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2 Photo by Tadzio ⓒ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신선한 가을바람과 함께 반가운 소식이 실려 왔다. 강남의 대표적 전시 공간 아뜰리에에르메스가 1년여 간의 재단장을 마치고 문을 연 것. 메종에르메스도산파크 건물 옥상에서는 지난 9월 30일 재개관을 축하하는 디제잉파티가 열려 분위기를 띄웠다. 멀리 프랑스에서 에르메스재단 총괄 디렉터 카트린느 츠키니스, 전시 큐레이터 가일 샤르보, 전시 참여 작가 등이 방한해 자리를 빛냈다. 건물 1층 쇼윈도 위에도 작가 잭슨홍이 디자인한 알록달록한 오브제가 마치 단풍처럼 자태를 뽐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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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츠노부 코히라 <Instrument Pour Saint-Louis> 혼합재료 가변크기 2011 Photo by Tadzio ⓒ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재개관의 포문을 여는 <컨덴세이션>전은 2010년부터 에르메스 장인 공방에서 진행된 레시던시에서 젊은 작가 총 16인이 작업한 결과 보고전의 성격을 띠고 있다. 2013년 여름 팔레드도쿄(Palais de Tokyo), 2014년 봄 도쿄의 르포럼(le Forum)을 순회하고 서울에 도착했다. 전시를 기획한 큐레이터 가일-샤르보는 “서울의 거리에서 흔히 보이는 스테인레스 스틸 소재가 인상적이었다”며 이번 서울 전시에서는 이 소재를 공간에 적용해 “인물이 반사되어 흐릿하게 보이는 풍경과 조명에 비친 관객의 그림자가 작품들 위에 마치 유령처럼 어른거리도록 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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엘리자베스 S. 클라크 <…너머로> 혼합재료 지름4.7m 2010_사야가죽공방 설치 전경 Photo by Tadzio ⓒ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전시장에 들어서면 중앙의 엘리자베스 S. 클라크의 거대한 회색 원령 링 <…너머로>(2010)가 관객을 압도한다. 총 둘레가 12.8m에 달하는 이 링은 지하 1층에 위치한 공간의 중정에 매달려 있는데, 부티크로 사용하는 건물 1~3층에서도 내려다보이는 크기다. 마치 서커스에 나오는 큰 짐승이 통과하는 쇠로 된 링처럼 보이지만, 실은 수송아지 가죽으로 만들어져 의외로 가볍고 부드럽다. 작품 곁에 수줍게 서 있던 작가는 작품 제작 동기에 대해 “지극히 물질적인 재료로 비물질적인 장면을 연출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가죽 공방에 입주해서 장인들에게 직접 정교한 손바느질 기법을 배운 후, 총 50여 명의 장인과 협업해 만들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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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트완 가죽공방에서 장인들과 작업 중인 세바스티앙 그슈윈드 Photo by Tadzio ⓒ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올리버 비어의 설치 작업 <침묵은 금이다>(2012)는 유리로 된 나팔 모양의 조각과 구 형태의 크리스털 문진으로 이루어져 있다. 유리 나팔은 창문에 연결된 형태로, 귀를 가까이 대면 외부의 소리를 들을 수 있는 구조. 4개의 크리스털 문진 속에는 인간의 귀를 구성하는 뼈 조각들을 금으로 주조해 각각 넣었다. 소리를 듣는 신체 기관을 밀봉시켜 버려, 바깥 소리를 적극적으로 듣게 하는 유리 나팔 작업과 대조를 이룬다. 그는 크리스탈 공방 장인의 도움을 받았다. 유리를 녹인 상태에서 입으로 불어 형태를 만드는 등, 특수한 유리 조형 및 세공 기법을 배웠다. 오유경의 은빛 조각 <달의 탑>(2012)은 육각형, 사다리꼴 모양의 육면체와 원통을 쌓아 만든 탑이다. 모든 오브제를 100% 작가가 만들었는데, 은세공 공방 장인이 옆에서 상주하며 도왔다고 한다. 이러한 과정에는 장인과 작가의 호흡이 중요할 수밖에 없다. 전시는 제작 과정을 담은 영상과 작가별 출판물을 한켠에 두어, 공방에서 작가과 장인의 협업 과정을 짐작할 수 있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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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린느 클라스 <테이블 부조> 2011 Photo by Tadzio ⓒ Fondation d’entreprise Hermès
에르메스의 아티스트 레지던시 프로그램은 수잔나 프릿셔, 리차드 디콘, 주세페 페노네, 엠마뉴엘 소니에가 각각 추천한 1~3명씩의 후보를 인터뷰해 총 4명의 작가를 선발한다. 선정 작가들은 3~6개월의 프로그램 기간 동안 장인들과의 작업 및 재료비 지원은 물론, 체류비와 아티스트피(fee)까지 받는다. 젊은 작가들에게는 파격적이고 ‘통큰’ 지원이다. 현장에서 만난 에르메스재단 디렉터 카트린느 츠키니스는 “미술계를 돕는 것은 기업의 의무고 책임이다”고 말했다. 예술 후원의 오랜 전통을 가진 에르메스의 ‘조용한’ 지원 정책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