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막을 ‘캐리’하다
역대 최대 규모를 자랑한 제16회 샤르자비엔날레 <To Carry>(2. 6~6. 15)가 네 달간의 대장정 끝에 막을 내렸다. 샤르자 시내를 비롯해 알 함이야, 알 다이드 등 도시 전역 17곳에서 전 세계 작가 200명이 작품 650점을 선보였다. 필자는 전쟁과 이주의 시대에 예술이 나아갈 방향을 모색한 이번 비엔날레의 의의를 분석한다.
숨 막히는 한낮의 열기와 시야를 흐리는 모래 먼지 따위야 상관없다는 듯 아이들 여럿이 모여 공을 찬다. 샤르자예술재단의 나지막한 건물로 둘러싸인 황토 빛깔 알 무레이자 광장은 유난히 낮게 뜬 태양이 비추는 오후의 빛으로 가득하다. 샤르자미술관 전면에 설치된 비엔날레의 표지들이 무채색 광장에서 색색의 존재감을 드러냈다. 1993년 중동 최초로 현대미술 비엔날레를 시작한 샤르자는 두바이, 아부다비를 포함한 7개 아랍 에미리트 연방 토후국 중 ‘아랍의 문화 수도’로 불려왔다. 뚝심 있게 지켜온 30년이라는 시간은 샤르자비엔날레를 중동 현대미술의 중심지이자 글로벌 아트씬의 한 축으로 자리매김하게 했다. 비엔날레를 출범시킨 샤르자 국왕 술탄 빈 무함마드 알 카시미는 역사학자이자 철학가로서 예술의 가치와 문화의 중요성을 설파해 왔다. 특히 동시대미술의 진흥으로 세계와의 연결을, 그리고 샤르자 내부에서의 새로운 변혁을 끌어내고자 했다.
이러한 그의 기조는 딸 후르 알 카시미에게로 이어졌다. 알 카시미는 2003년 20대 초반의 어린 나이에 샤르자비엔날레의 공동 예술감독을 맡으며 본격적으로 아트씬에 진입했다. 주변의 우려도 있었지만, 20년간 비엔날레를 성공적으로 이끌어 왔다. 2009년에는 샤르자아트파운데이션을 창설해 장기적인 관점에서 문화예술 정책을 수립하고, 미약한 제도적 기반을 공고히 다졌다. 재단은 비엔날레의 안정적 운영과 더불어 문화예술 교육과 강연, 다학제 연구 등 다양한 리서치 활동을 폭넓게 지원하고 있다. 올 초 영국의 미술전문지 『아트리뷰』는 2024년 미술계를 이끌었던 핵심 인물 리스트인 ‘파워 100’의 1위에 후르 알 카시미를 선정하기도 했다. 광폭의 행보로 글로벌 아트씬의 주목을 한 몸에 받아, 이번 샤르자비엔날레의 메시지에 전 세계의 이목이 더욱 집중됐다.
전 지구적 문제를 함께 짊어지기
알 카시미는 이번 비엔날레의 제목을 <To Carry>로 정하고, 다양한 문화적 배경을 지닌 여성 큐레이터 5명을 공동 예술감독으로 선정했다. 무언가를 짊어지거나 전하는 등 중의적으로 해석할 수 있는 이번 전시의 큐레이토리얼 스테이트먼트는 한 편의 시로 공표됐다. 여기에 모인 여러 지역의 목소리는 ‘지금, 우리’에게 자신을 돌아보라고 말한다. 어제에서 오늘로 넘어온 것과 내일로 전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어떤 것을 내일의 역사로 선택할 것인지 묻는다. 이야기는 여기에서 저 먼 곳으로 쉬지 않고 흐르고, 나에게서 당신으로, 사람에서 사람으로 전해진다.
5명의 큐레이터는 서구 중심적 시각에서 소위 기타, 변방으로 칭해지던 지역의 이야기를 전한다. 현재 스리랑카의 현대미술 페스티벌 콜롬보스코프 디렉터로 활동 중인 나타샤 진발라, 런던 큐빗갤러리 디렉터이자 서펜타인갤러리 큐레이터인 아말 칼라프, 제58회 베니스비엔날레 터키관을 기획한 제이넵 외즈, 욕야카르타비엔날레재단 디렉터이자 탈식민주의와 페미니즘을 연구해 온 알리아 스와스티카, 마지막으로 근현대 마오리족과 원주민 미술연구자 겸 웰링턴 테파파국립박물관 큐레이터인 메건 타마티-퀘넬이 그 화자이다. 이 다섯 큐레이터는 저마다의 접근 방식으로 해석한 주제를 다채로운 스펙트럼의 작품으로 표명했다. 지역과 문화를 넘어서는 지구 공동체적 접근은 이질적인 작품을 아우르는 동시에, 연결성을 지닌 공동의 목소리로 재탄생했다.
알 마담 사막 한가운데 놓인 수십 개의 나무 의자에서 팔다리가 자라난 듯 나뭇가지가 사방으로 뻗쳐있다. 사막의 ‘유령 마을’에 설치된 미국 작가 휴 헤이든의 설치 <Brier Patch>는 제도적 지원의 부재를 공론의 장으로 끌어올렸다. 가자 지구 학살과 역사에 관한 작품도 다수 출품되어 멀지 않은 곳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건에 경각심을 불러일으켰다. 점을 찍어 작업하는 호주의 원주민 아티스트 다니엘 보이드는 ‘렌즈’라고 불리는 작은 원들을 그려 서구의 문화적 지배, 우위에 의문을 제기했다. 한국 작가 김상돈은 커미션 작업을 선보였다. 멸종된 꽃을 모티프로 한 나무 토템 조각을 제작해 한국의 전통과 신화적 아이콘을 재해석했다.
후르 알 카시미는 비엔날레 오픈을 앞두고 모인 전 세계의 기자들에게 “팔레스타인, 레바논, 수단, 콩고, 아르메니아, 그리고 지금 이 순간에도 어려움을 겪고 있을 사람들을 기억해 달라”라고 말했다. 우리는 문화를 매개로 발 딛고 있는 세상의 불안정성을 이해하는 동시에, 이에 대응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모두를 위한 비엔날레’라는 최종 도착지에는 과거를 돌아보며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이 더 나은 세상을 만들고자 한 노력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