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의 경고장
환경 재난이 피부로 느껴지는 지금, 미술계는 기후 위기를 긴급 의제로 다루고 있다. 한국 국공립 미술관도 인간과 자연의 위계를 고찰하는 전시를 잇따라 열었다. 그 가운데 베스트 전시 4개를 선별했다.
먼저 국립현대미술관은 다원예술 프로그램 <숲>(5. 23~2026. 1. 25)을 개최했다. 2026년 1월까지 매달 8팀의 작가가 영상, 설치, 연극, 무용, 퍼포먼스 등을 차례로 선보인다. 첫 타자 임고은은 솔방울, 조개 등 채집한 자연물을 프로젝션해 나만의 숲을 만들어보는 퍼포먼스로 화제를 불러일으켰다. 가장 기대를 모으는 이벤트는 10월 11~26일에 진행되는 홍이현숙의 퍼포먼스 <오소리 A씨의 초대 2>다. 전시장에 구성한 오소리 굴에서 작가가 산양의 배설물 냄새, 흙내를 맡으며 인간에 잠재된 짐승적 면모를 끄집어낸다. 곽소진, 이정은, 임고은, 최상민, 홍이현숙, 토시키 오카다&텃페이 카네우지, 카티아 엥겔&아리 에르산디, 하이너 괴벨스 참여.
<드리프팅 스테이션>(6. 27~8. 3 아르코미술관)전은 조주현 큐레이터가 대만의 홍 페이 우 큐레이터, 리서치 플랫폼 ‘사이팅 바’와 협업 기획했다. 전시는 미술관을 다양한 존재와 일시적으로 교감하는 ‘간이역’으로 상정했다. 이번 전시에서는 특히 ‘새’를 주제로 한 작품이 눈에 띄었다. 김정모는 바닥에 센서를 달아 관객의 발자국을 멸종 위기종 형상으로 시각화했고, 천경우는 소리만 듣고 새의 생김새를 그려보는 참여형 작품을 선보였다. 관객의 오감을 자극하는 작업으로 인간 중심적 감각 체계를 뒤흔들었다. 김정모 안가영 안데스 안정주 장은만 전소정 천경우 하이로조익/디자이어즈 참여.
<테라폴리스를 찾아서>(7. 11~2026. 2. 22 경남도립미술관)전은 과학철학자 도나 해러웨이가 제안한 개념 ‘테라폴리스’를 모티프 삼았다. 전시는 ‘지구 공동체’라는 단어에서 출발해 온갖 존재가 얽혀 살아가는 잡종적인 커뮤니티를 탐구한다. 다이애나밴드 박형렬 배윤환 이끼바위쿠르르 위켄드랩 플라스틱노리터 황선정 등
한국 작가 7인(팀)이 참여했다. 이들은 SF적 상상력을 발휘해 테크놀로지와 에코, 과학과 신화를 넘나든다. 한편, 참여 작가가 직접 진행하는 연계 프로그램도 활발히 이루어지고 있다. 8월부터는 다이애나밴드와 위켄드랩의 워크숍부터 박형렬과 배윤환의 아티스트 토크, 기후 전문가의 강연이 준비되어 있다.
앞선 전시가 역지사지의 태도로 타자화된 생명에 주목했다면, <기다림이 끝나는 날에도>(7. 24~10. 26 경기도미술관)전은 토양, 바다, 태양 등 자연물 자체를 재료나 배경으로 삼은 작품으로 인간과 자연의 공존을 모색한다. 박예림, 임희재, 장진승 등 1990년대생 젊은 작가부터 더그 에이트킨, 올라퍼 엘리아슨 같은 미술사 거장까지 총 22명(팀)이 참여했다. 이번 전시의 별미는 한국 생태미술 아카이브를 함께 공개했다는 점이다. 야투의 임동식과 김해심, 바깥미술의 최운영 등 1980~90년대 자연미술가의 퍼포먼스 기록에 공을 들여 한국 생태미술의 뿌리와 계보를 입체적으로 조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