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우’야 뭐하니?
제13회 베를린비엔날레 <덧없음을 전하다>(6. 14~9. 14)가 개막했다. 베를린 KW현대미술관과 함부르거반호프현대미술관, 소피엔젤레, 모아빗의 옛 법원 건물에서 작가 60여 명이 작품 170여 점을 선보였다. 총괄큐레이터 자샤 콜라는 정치적 억압에도 예술이 발휘하는 전복적인 힘에 주목했다. 필자는 비엔날레가 내세운 표면적 주제와 베를린 문화예술계가 직면한 현실의 간극을 되짚으며 제도적 책임을 촉구한다.
제13회 베를린비엔날레의 큐레이터 자샤 콜라는 인도 뭄바이 출신이자 이탈리아 토리노를 기반으로 활동해 왔다. 그는 이번 비엔날레에서 베를린 도심에서 자주 목격되는 여우를 모티프 삼아 ‘도주성’을 강조했다. 도시 여우와의 조우를 묘사했던 시인들의 표현을 인용해 ‘그 존재 안에 머무르며 시간을 늦추는 행위’로 설명하고, 이를 예술에 비유했다. 이러한 개념적 접근은 전시 운영에도 반영됐다. 조직위원회는 개막 직전까지 공식 웹 사이트에 참여 작가 명단을 공개하지 않고 여우 그림을 뒀다. 이는 ‘교활한 회피(foxing)’ 개념을 구현한 것으로, 스타 작가의 파워보다는 주제 자체에 집중하려는 의도이다.
비엔날레에서 가장 강렬한 정치적 메시지를 전달한 작품은 미얀마 출신 작가 테인 린의 <The Fly>(2022)다. 그는 1988년 미얀마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가 정부 전복을 음모했다는 혐의로 거짓 기소되어 6년 넘게 수감 생활을 했다. 현재는 영국에 거주하며 본국의 정치 상황을 고발하는 작업을 이어오고 있다. 작품은 그의 수감 경험에서 비롯됐다. 영상에서 작가는 의자에 속박된 채 눈에 보이지 않는 파리 한 마리를 쫓아내려 고군분투한다. 결국 그는 파리를 삼키고, 잠시 곤충이 되어 해방감을 맛보지만 이내 경련을 일으키며 의자로 돌아간다. 영상 말미에 작가는 “당신은 왜 침묵하는가?”라고 물으며, 억압당하는 자에 대한 외부 세계의 무관심을 꾸짖는 동시에 관객 스스로 성찰하게 한다.
독일 작가 시몬 바흐스무트의 영상작품 <From Heaven High>(2025) 역시 법정을 배경으로 한다. 1920년 베를린에서 열린 제1회 국제다다박람회에서 존 하트필드와 루돌프 슐리히터가 선보인 <Prussian Archangel>(1920)을 차용했다. 원작은 제1차 세계대전 독일 장교 제복을 입고, 돼지머리를 한 인형을 천장에 매단 설치작품이다. 바흐스무트의 작품에서도 판사복을 입은 인물이 돼지 가면을 쓴 피고인을 심문한다. 돼지(피고인)는 다다이즘의 언어 파괴적 특성을 이용해 무의미한 말장난으로 판사를 당황하게 한다. 특히 자신의 출신을 기계 변조 음성으로 “강에서, 산 너머로, 바다까지”라고 답하는 장면은 팔레스타인 해방 구호 “강에서 바다까지”와 언어적으로 조응하며, 현 국제 정치의 민감한 쟁점을 우회적으로 드러낸다.
사르나트 바네르지의 <Critical Imagination Deficit>(2025)은 가장 규모가 큰 설치작품 중 하나다. 콜카타에서 태어나 베를린에서 활동하는 작가는 인도의 공공장소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신문 가판대 구조를 KW현대미술관 내부에 재현했다. 인도에서 신문 가판대는 단순히 정보가 유통되는 거점이 아니라 정치 담론이 형성되고 사회 의견이 교환되는 플랫폼이다. 작가는 이 공간을 베를린 화이트 큐브에 옮겨 유럽과 미국 중심의 헤게모니를 비판했다.
제13회 베를린비엔날레는 스펙터클한 오브제 중심의 전시 대신 스탠드업 코미디와 인형극, 시 낭송, 퍼포먼스 등 일시적이고 체현적 작품을 대거 소개해 유머와 부조리가 어떻게 권력에 저항하는 도구가 될 수 있는지 보여줬다. 그러나 이 ‘우회 전략’은 비엔날레 개막과 동시에 현재 베를린 문화예술계가 직면한 현실에 충분히 대응하지 못했다는 혹평을 받았다.
‘베를린’ 없는 베를린비엔날레
작년부터 베를린 문화예술계는 1억 3천만 유로라는 전례 없는 예산 삭감과 국제홀로코스트추모연합의 반유대주의 정의 강요 논란, 팔레스타인 연대 활동 검열 등이 잇따라 발생해 직격탄을 맞았다. 이에 예술인은 가자 전쟁을 둘러싼 독일 정부의 강경 정책에 반발하며 ‘독일 파업(Strike Germany)’을 외쳤고, 문화부 예산 삭감에 맞서 ‘베를린이 곧 문화다(#BerlinistKultur)’를 슬로건으로 보이콧에 나섰다. 이런 긴장감을 반영하듯 비엔날레 개막식에선 자샤 콜라에게 독일 내 문화적 억압과 검열에 대한 질문이 쏟아졌다. 2022년 5월부터 비엔날레 큐레이터로 선임된 그는 이 모든 상황을 지켜봐 왔을 터. 콜라는 “예술인의 보이콧을 지지하지만, 내 포지션은 다른 데 있다. 미얀마 쿠데타, 수단 봉쇄 등 전 세계적인 억압에서 오는 ‘깊은 불안감’으로 전시를 구상했다”라고 일축했다. 눈앞의 화급한 현실 대신 국제적 이슈로 시선을 돌린 선택은 전략적 거리 두기일까, 혹은 회피일까.
모호함은 기획에서도 여실히 드러났다. 베를린비엔날레 협력 기관 시네마트랜스토피아는 지난해 말부터 자금 지원이 완전히 중단되어 크라우드 펀딩으로 겨우 운영을 이어가고 있는 ‘실제 도망자’ 상태다. 이들은 <Deep Cuts>라는 프로그램을 기획해 예산 삭감을 재치 있게 비판하며 ‘foxing’ 전략을 진작에 실천해 왔다. 그러나 비엔날레 측은 로컬 기관이 겪는 현실적인 문제에 주목하거나 연대를 표하는 대신, 통상적인 파트너십 차원의 부대 행사를 개최하는 것에 그쳤다. 도망자, 저항 같은 정치적 키워드가 전시를 감싸고 있지만, 막상 가장 가까운 곳의 절실한 목소리는 외면한 셈이다. 베를린이 문화적 표현의 자유를 두고 어느 때보다 치열한 투쟁을 벌이는 지금, 베를린의 이름을 건 이 거대한 국제 미술행사는 왜 추상적인 은유 뒤에 숨어있는가. “당신은 왜 침묵하는가?”라는 질문을 비엔날레 스스로 던져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