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계의 눈, 스크린 정치학

송은, 미디어아티스트 권아람 개인전
2025 / 08 / 01

‘본다’는 것은 무엇인가. 기계의 눈으로 세계를 감각하는 오늘, 인식의 주체는 여전히 인간일까. 권아람의 개인전 <피버 아이>(6. 24~8. 9 송은)는 센서와 카메라, 스크린, 알고리즘, 인공 지능 등 디지털로 과잉된 시각 환경에서 경험이 어떻게 재편되는지를 추적한다. 영상, 사운드, LED를 활용한 미디어설치로 ‘기계적 시지각’의 구조를 구현했다.

<Nowhere Happiness> 슬라이드 프로젝터 가변크기 2012/2025_이번 전시는 제21회 송은미술대상 수상 기념전이다.

작가의 작품 세계는 언어에서 스크린으로 이동해 왔다. 형식은 다르지만, 핵심에는 줄곧 같은 질문이 놓였다. 세계는 어떻게 감각되고, 그 감각은 무엇으로 조직되는가. 출품작 <Nowhere Happiness>(2012/2025)는 이러한 문제의식의 출발점을 보여준다. 작품은 환등기에서 무작위로 투사되는 단어를 조합해 문장을 형성한다. 세상은 인간의 언어(인식)와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존재한다. 언어는 사태를 기술하고 반영할 뿐이다. 이는 모더니즘 이후 인간 사유에 뿌리가 된 인식론적 전제다. 그러나 작품에서 임의로 생성된 문장은 현실과 무관함에도, 구체적인 정서나 장면을 연상시킨다. 존재하지 않는 문장이 현실 감각에 개입하는 것이다.

“언어는 늘 의도를 초과하고 진실에서 미끄러졌다. 완전하게 다룰 수 없었다. 그런데 그것이 어쩌면 언어의 한계가 아니라 ‘힘’이라는 생각이 스쳤다. 언어가 세계를 기술할 때, 거기엔 그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를 조직하는 힘이 있다. 언어가 현실을 비추는 거울이 아니라 감각을 모양 짓는 형틀일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 인식은 언어와 마찬가지로 감각과 경험을 조직하는 도구, 곧 미디어 장치 전반에 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그리고 그 연장선에서 스크린은 작가에게 가장 본질적인 매체로 자리 잡았다.

<납작한 세계> LED, 아크릴 거울, 철, 사운드 가변크기 2018/2025
<백룸스> LED, 스크린, 6채널 비디오, 사운드 가변크기 2025

디지털 디스토피아, 눈먼 자들의 도시

<납작한 세계>(2018/2025)는 복잡한 현실을 평면으로 환원하는 스크린의 메커니즘을 드러낸다. 작품은 컴퓨터 운영 체제의 오류 증상인 ‘블루 스크린’을 모티프로 기능을 상실한 화면과 거울을 병치했다. 멈춘 스크린은 그 너머에 사실 아무것도 없다는 진실을 드러내고, 거울은 실재가 평면으로 환원되는 과정을 은유한다. 이는 자본주의가 정보를 효율적으로 유통하고 빠르게 소비시키려 깊이와 복잡성을 제거하는 방식과 맞닿는다. 서사와 의미의 다층성은 소비를 지연하는 장애물이다. 이때 스크린은 이미지를 매개하기보다, 감각을 단순화하고 표준화하는 구조다.

<백룸스>(2025)는 권아람의 주제를 한층 밀도 높게 확장하는 미디어 설치작품이다. 게임상에 설계된 공간이지만, 시스템에서 삭제되거나 접근이 차단된 사각지대 ‘백룸(backroom)’을 모티프 삼았다. 라이다 센서로 스캐닝한 실제 공간의 데이터를 해체해 실재와 가상 사이의 환각적 공간을 연출했다. 검색 엔진, 소셜 미디어, 온라인 커머스 등의 플랫폼 자본주의에 숨은 감시와 통제를 시각화했다. “플랫폼은 겉으로는 개방과 자율을 표방하지만 실제로 사용자의 경험을 유도, 제한한다. 이들의 행동은 모두 수집돼 아무도 모르게 상품화된다. <백룸스>는 기술과 자본이 구축하는 보이지 않는 시스템에 대한 은유다.”

<피버 아이> LED, 스테인리스 슈퍼 거울, 철, 스크린 가변크기 2025
<Hacks> 싱글채널 비디오 1분 2022

전시의 주제작 <피버 아이>(2025)는 전시장 사면을 LED 패널과 거울로 감싼 대형 설치작이다. 강렬한 붉은 화면은 몰입을 유도하지만, 곧 점멸을 시작하고 이와 함께 관객을 되비추는 거울이 그 집중을 반복적으로 차단한다. 몰입과 이탈이 교차하는 리듬에서 관객은 이미지를 보는 데 그치지 않고 그것을 ‘보고 있는 자신’을 자각한다. “정보, 상품, 기술, 자본이 뒤엉켜 흐르는 미디어 세계를 무대로 삼아, 이를 마주한 관객이 자기 인식을 통해 시스템 최하단에 놓인 개인의 무력감을 체감하도록 만들고 싶었다.” 넋을 잃은 채 스크린을 바라보는 자신을 인식한 순간, 또 하나의 시선이 겹친다. 바로 개인을 관통하는 기계의 눈, 나아가 자본의 눈이다. 우리가 느끼는 무력감은 바로 이 이중의 시선에서 비롯된다.

권아람의 말처럼 스크린 앞에 선 인간은 무력하다. 그리고 그는 이 무력에서 벗어나는 해답을 어디에도 제시하지 않는다. 그저 감각이 어떻게 형성되고 어떤 구조에 놓여있는지를 조망한다는 점에서 관조적이다. 그러나 속박에서 벗어나는 출발점은 언제나 ‘자각’이다. 감각을 상실했는지도 몰랐던 우리에게, 되찾아야 할 무언가가 있다는 사실을 상기한다. 권아람은 이 지점에서 급진적이다.

권아람 / 1987년 부천 출생. 건국대 광고영상디자인과 학사, 런던 슬레이드미술대학 파인아트-미디어 석사, 서울대 디자인과 박사 졸업. 남양주 갤러리퍼플(2025), 더그레잇컬렉션(2021) 등에서 개인전. 서울에서 거주 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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