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베르타 스미스 강연회
2014. 4. 2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 루블로프대강당(Art Institute of Chicago Rubloff Auditorium)(http://www.saic.edu/index.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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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베르타 스미스(Roberta Smith) Photo: Tony Cenicola/The New York Times
《뉴욕타임스(New York Times)》의 미술평론가 로베르타 스미스(Roberta Smith)가 시카고예술학교의 초대를 받아 시카고아트인스티튜트미술관의 루블로프대강당에서 강연했다. 그는 편안한 카디건 차림으로 무대에 올라 ‘강연(lecture)’보다는 ‘수다(chat)’의 자리가 됐으면 한다는 말로 강연을 시작했다. 약 30분 동안 평론가로서의 경험과 ‘평론’에 대한 견해를 제시한 후 나머지 45분은 질의응답에 할애했다. 그가 쓰는 글처럼 말 또한 간결하고 직설적이었으며, 질문을 받을 때도 불분명하거나 어폐가 있는 표현은 바로바로 지적하면서도 명료한 대답을 내놓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스미스는 대학 졸업 후 뉴욕현대미술관에서 큐레이터의 비서로 근무하다가 상사의 권유로 1970년대 초반에 미술평론을 시작했다. “미술계 내 누구나 미술평론을 할 수 있던 시절이었다.”며 겸손을 부렸지만, 어머니를 닮아 자기주장이 강했다는 20대 초반의 스미스는 글 솜씨와 포부도 남달랐나 보다. 대학시절 개인적으로 알게 된 평론가 겸 작가 도널드 저드(Donald Judd)에게 팬으로서 좀 더 어필하기 위한 목적으로, 저드가 쓴 비평 글을 모두 찾아 모아 직접 타자기로 베껴 써 하나의 서류로 ‘편찬’했다니 말이다. 이 경험이 후에 평론가가 되는 데 큰 학습 효과가 있었던 것으로 스미스는 자체 평가한다.
스미스는 자신을 이론적/철학적 평론가가 아닌 “행동하는 평론가(working critic)”라고 정의하며,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것으로 독자(readership), 마감 시간, 자신이 보고 느낀 것을 솔직하고 분명하게 설명하는 것(articulating) 등을 꼽았다. 읽는 이에게 사용가치가 있는 글을 쓰는 데 주력지만, 리뷰에 다루어지는 작가가 어떻게 생각할 지는 전혀 신경 쓰지 않는다고 못을 박았다. 평소에 어떤 글을 읽느냐는 질문에 자신은 시간적 여유도 없고 독서가는 못된다면서, 혹 시간이 허락하더라도 주간지를 주로 읽는다고 답했다.
관객의 집중도가 가장 높았던 순간은 이번 2014휘트니비엔날레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이 나왔을 때다. 시카고와 연계가 있는, 특히 시카고예술학교 출신 작가와 큐레이터가 대거 참여한 전시인데, 스미스의 남편이자 《뉴욕매거진(New York Magazine》의 미술평론가인 제리 살츠(Jerry Saltz)는 이번 행사에 대해 혹평했기 때문이다. 스미스는 “좋게 전시”였지만 “죽은 공간”이 많이 보인 게 흠이었다고 말했다.
요즘은 ‘모두가 평론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블로그나 SNS를 통해서 누구나 자기주장을 펼치고 비평 활동에 참여할 수 있는 시대다. 스미스 또한 강연 중에 이런 현상을 언급했는데, 질의응답 시간에 이에 대한 확실한 의견을 묻는 질문을 받자 “글쓰기는 에디터와의 협력 작업”일 때 최선인 것 같다며, 전문성과 객관성 있는 수정의 과정을 강조했다. 전문 에디터의 부족과 더불어, 자신과 같은 풀타임 평론가의 수요가 줄어든 것도 지적했다.
로베르타 스미스(Roberta Smith) 1947년 뉴욕 시에서 태어나 캔사스 주 로렌스에서 성장. 1969년 그린넬대학(Grinnell College) 졸업 후 《아트포럼(Artforum)》, 《아트인아메리카(Art in America)》, 《아트매거진(Arts Magazine)》 등 미국의 여러 미술 잡지에 글을 기고하며 평론가의 길로 들어섰다. 1981년부터 1985년까지 《빌리지보이스(Village Voice)》, 1986년부터는 《뉴욕타임스》의 평론가로 활동 중. 1975년과 1980년 미국 국립예술기금(National Endowment for the Arts) 수상. 2003년 미국 예술협회(College Art Assoviation)의 프랭크 주이트 마더상(Frank Jewett Mather Award) 미술비평부문 수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