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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은展

‘공간’이라는 악기
김영은展 9. 18~25 솔로몬빌딩+케이크갤러리

/ 함영준(커먼센터 멤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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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감상중인관객들

김영은은 주로 소리를 재료로 삼아 작업하는 미술가다. ‘음악가’가 아니라 ‘소리를 재료로 삼아 작업하는 미술가’라고 부르는 이유는 그가 일반적인 음악가에게 소외되는 음악의 구성 요건에 천착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정시킬 수 없는 소리의 특성으로 인해 원본이 무의미해졌다는 점. 공연의 형태로 작품을 감상하는 것을 원본이라 치더라도 매 공연마다 다른 형태를 띨 수밖에 없다는 점. 그리고 공연 하나하나를 원본으로 인식할 수 있게 하는 음악 이외의 조건, 즉 공간을 염두에 둘 수밖에 없다는 점. 여기에 음악의 관습을 따르지 않는 소리의 집합을 구조화해 감상의 기제로 활용한다는 점. 덕분에 김영은이 소리에 관심을 두는 것만큼이나 공간에 관심을 두는 것은 매우 자연스러운 흐름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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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전시장1전시실벽면에설치된악보

아마도 일상의 경험에서 착안했을 김영은의 〈층간소음〉 시리즈는 간단한 구조로 되어 있다. 실제 소리를 내는 공연자 혹은 기계를 일상의 공간 어딘가에 숨겨 두고 그 소리를 잘 들을 수 있는 곳으로 청중을 인도하는 것이다. 그 결과로 공연은 소리를 내는 존재를 상상하게끔 유도하는데, 그 상상을 위해서는 굉장히 예민한 감상이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보통 소리를 내는 존재가 실제로 청중의 눈앞에 등장하기 마련인 일반적인 음악 공연과는 다른 의미를 획득하게 되는 것. 공연이 진행되는 동안 청중은 공간 전체의 구성을 눈으로 관람하지만, 그 시각적인 경험은 눈에 보이는 것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어떤 것을 위해 세밀하게 계산된 결과이기도 하다. 객석의 시각적 특성이 전달하는 불안하고 기울어진 감정의 빈틈이 소리로 메워짐과 동시에, 청각이라는 예민하고 연약한 감각은 다시 시각적 경험을 불러일으키는 공간을 통해 보완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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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감상중인관객들

이번에 케이크갤러리에서 열린 김영은의 〈맞춤 벽지 음악〉을 간단히 설명해 보자. 1층에서 공연의 맥락을 친절히 설명하는 간단한 액자를 감상하며 기다리다 보면, 옆방에서 첫 번째 공연인 〈콘크리트 돌림노래〉가 시작된다. 이 공연은 방의 외부에서 벽을 다양한 재질의 스틱으로 두들겨 내는 소리로 구성돼 있다. 이어지는 공연은 〈수직 캐논〉인데, 성악 전공자들을 태운 엘리베이터가 1층부터 6층까지 오르내리기를 반복하며 내는 소리를 3층 승강기 앞 계단에 앉아서 감상하게 된다. 그리고 마지막 공연이 벌어지는 갤러리 공간에 당도하면 청중은 마치 작품처럼 놓인 길종상가의 묘한 의자 위에 작품처럼 앉아서 공간의 외부를 배회하는 목소리의 덩어리를 듣는 〈주물 5중창〉이라는 공연을 감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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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전시장1전시실벽면에설치된악보

이번 공연은 문래예술공장에서 열렸던 전작 〈Room 402〉와 자칫 흡사해 보이지만 사실 상당히 다른 구석을 가지고 있다. 전작은 실제로 일상을 영위하는 개인적이고 투명한 ‘공간’에서 들리는 ‘소음’을 통해 외부의 환경을 환기하게끔 구조화돼 있었다면, 이번 공연은 오히려 낯설고 강한 공간적 특징을 공연의 내부로 끌어들이려는 의지와 그로 인한 피로감이 강하게 느껴지는 편이다. 6층짜리 상가 건물 꼭대기층에 있는 갤러리 공간에 진입하기 위해 청중은 자못 부자연스러운 동선을 거쳐야 하고, 공간의 평면도와 악보 등의 자료를 전면에 제시한 1층의 첫 번째 방은 공간의 형태 자체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라는 숙제를 풀기 위해 내놓은 답안에 가까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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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을감상중인관객들

때문에 이번 공연은 의도치 않은 묘한 상황을 연출했다. 마치 아직 조율되지 않은 악기를 발명해서 시험 삼아 소리를 내 보는 상황처럼 보였다. 청중은 새로 개발된 커다란 악기의 내부를 견학하는 학생에 가까웠고, ‘어떤’ 소리를 내는지 감상하며 공간을 둘러볼 새도 없이 다만 ‘어떻게’ 소리를 내고 있는지 감상할 뿐이었다. 이는 전작보다 훨씬 풍성한 음악적 ‘관습’이 포함된 소리 때문이기도 하다. 타악기 연주자와 성악 전공자를 고용해서 라이브로 들려 주는 ‘소리’의 집합은 일반적인 음악가 특유의 질감을 그대로 담고 있었으므로 마치 불협화음을 내며 튜닝을 하거나 목을 푸는 리허설 과정으로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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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전시장1전시실벽면에설치된악보

그렇다면 조금 다르게 생각해 보자. 공간 자체에 대한 생각을 거두고 김영은의 〈맞춤 벽지 음악〉이 새로 만든 악기를 굴리는 주법이라면 어떨까? 그렇다면 가능성이 조금 더 열리게 된다. 계단과 엘리베이터를 갖춘 서울 시내의 모든 빌딩은 김영은에게 새로운 악기가 될 수 있으며, 더욱 중요한 것은 연주자에게 최상의 연주를 위한 집중의 여지를 주는 것은 악기의 울림통으로 계산된 공간이라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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