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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보현展

재미 1세대 화가의 삶과 예술
김보현展 2014. 12. 3~2015. 1. 20 신세계갤러리(http://www.shinsegae.com/culture/gallery/displayinfo/displayinfo_view.jsp?store_cd=D01&seq=3962)

/ 김윤정(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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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망〉종이에색연필75×85cm1975

김보현 혹은 ‘포 킴(Po Kim)’으로 불리는 작가를 처음 만난 것은 2009년이었다. 감사하게도 그는 젊은 한국 작가를 위한 전시 장소로 자신이 소유한 건물 한 층의 갤러리를 흔쾌히 빌려 주었다. 영어는 입도 벙끗 못하는 중국인 목수들과 한자로 소통하고, 무려 60살 연하의 초보 큐레이터에게 매번 존대를 해 주던 영혼이 맑은 노화가. 새벽 4시면 일어나 매일 붓을 잡는다던 그는 영원히 죽지 않을 것 같았다. 그런 그가 지난 2014년 1월 지병으로 세상을 떠났을 때 그 사실이 믿기지 않았다. 그러나 그의 죽음이 처음은 아니다. 그는 좌우 이데올로기 대립의 과정에서 고초를 겪은 후 1955년 도미해 한국 미술계에서 사라진 화가였다. 그런 그가 한국으로 돌아온 것은 그로부터 40년이 흐른 후였다. 그리고 이번이 ‘두 번째 죽음’이다. 인간은 신체적으로 두 번 죽을 수 없기에 그의 부고는 새로운 삶을 알리는 소식이 됐다.

이 전시는 재미화가 김보현/포 킴의 작고 1주기를 맞아 그를 추모하고 애도하고자 기획됐다. 작가가 조선대 미술관에 기증했던 300여 점의 작품들 중 말년의 성취를 보여 주는 작품들로 구성됐다. 일본에서 아카데믹한 사실주의 미술 교육의 영향이 엿보이는 1970년대 극사실주의 정물 드로잉부터 낙원 혹은 아르카디아를 연상시키는 1990년대 이후 구상회화까지 작가 말년의 양식을 두루 살펴 볼 수 있다. 1978년 작 〈풍경〉은 배경을 제거해 사물이 무중력 공간 속에 떠 있는 것처럼 보이던 이전 작품들에서 1980년대 이후 서사적이고 구상적인 작품들로의 이행을 암시한다. 1990년대 중반 작품들에서는 직관적이고 표현적인 형상과 색채가 마치 기억처럼 거대한 캔버스 위에 그려지고 지워지기를 반복하며, 소품 연작들에는 이 대작들에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모티프가 잘 드러난다. 강렬한 색채와 다양한 형상들이 겹쳐지며 발산하는 빛과 에너지는 〈자연의 속삭임〉(1993)에서 절정에 달하고, 전시 제목이기도 한 2012년 작 〈새로운 생〉에서는 색 테이프와 아크릴 물감이 경쟁하듯 4m가 넘는 화면을 가득 채우고 있어 노화가의 지치지 않는 열정을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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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운생〉캔버스에아크릴릭,테이프183×450cm2012

한편 디아스포라 작가로서 한 개인의 굴곡진 삶과 작품 세계에 초점을 맞춘 회고전 형식의 전시 이면에는 다양한 질문들이 숨어 있다. 그의 이름을 김보현이라 해야 할까, 포 킴이라 해야 할까? 그를 한국 미술사의 큰 흐름과 연계해 살펴볼 수 있지는 않을까? 그러나 도미 후 그는 한국 미술과 한 땀도 엮이지 않는 인물이 된다. 김보현/포 킴은 좌우 선택을 강요하는 고문과 죽음의 공포에 쫓겨 미국으로 건너간 수십 년 동안 한국, 한국인, 한국 미술과 의도적으로 거리를 두었고, 그의 화업 또한 그러했기 때문이다. 그는 자기 세대의 가장 중요한 아시아계 미국 미술가들 중 한 명으로 평가되지만, 미국에서도 한국에서도 온전히 그 일부가 된 적 없는 예외적 존재다. 따라서 작가 사후에 개인의 역사를 동시대 미술사 속에 쓰려는 기획은 만만치 않다.

2007년 국립현대미술관 덕수궁미술관에서의 개인전 후 서울에서 열린 그의 전시는 참 오랜만이다. 작고 직후 조선대 미술관과 미국 뉴욕에서 추모전이 열렸지만 물리적 혹은 심리적 거리가 멀었다. 김보현/포 킴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낯선 작가다. 이제 서울을 떠나 광주, 부산, 인천으로 이어질 전시에서 보다 많은 이들이 그의 작품과 만나기를 바란다. 지금 우리 눈앞에 마주한 작품들이 그를 진정 새로이 ‘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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