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호열展
2015 / 02 / 08
디지털 세계에 자라나는 ‘하얀 상상력’
류호열展 2014. 11. 27~12. 16 쥴리아나갤러리
/ 김성호(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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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um〉 디지털 C-프린트 100×150cm 2014
류호열의 이번 개인전은 〈나무(Baum)〉라는 제목의 시리즈 영상 및 사진 작품으로 꾸려졌다. 그것은 우리가 자연에서 일상적으로 보는 이미지이지만, 한편으로는 생경한 이미지다. 나무가 온통 하얀색 껍질을 가진 것도 그렇고, 나뭇잎들도 모두 사각형이기 때문이다. 그의 나무는 익숙한 현실의 이미지이지만, 실제로는 텅 빈 가상의 공간 속에 거주하는 까닭에 ‘현실 같지만 비현실인 세계’, 즉 하나의 ‘가능성의 세계’를 그려 낸다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 아래에서 바람에 흩날리는 나뭇잎은 자신의 반짝이는 사각형 몸을 뒤척이며 비현실성을 증폭한다. 바람과 한데 섞여 바스락거리며 임장감을 더하는 나뭇잎의 신비로운 대화는 또 어떠한가? 이처럼 그의 가상의 영상 나무는 작가로부터 수혈을 받아 꿈틀대는 생명체로 탈바꿈하면서, 일종의 ‘물활론(物活論)’을 우리의 눈앞에 현현시킨다. 물활론이란 무엇인가? 그리스어 어원인 ‘힐로조이즘(hylozoism)’이 ‘질료’와 ‘생명’이라는 의미가 합쳐져 만들어진 것이고, 그것의 라틴어인 ‘애니미즘(animism)’이 ‘영혼’이란 뜻의 ‘아니마(anima)’로부터 유래했다는 것을 상기해 두자. 물활론이란 물질과 생명, 사물과 영혼이 불가분의 관계로 작동하는 개념이다. 가상으로 빚어 낸 나무에 생명과 영혼을 부여한 류호열의 영상 작품은 애니미즘이 미술의 영역에서 실현된 것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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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aum〉 비디오, LCD, 플렉시글라스 30×30×7cm 2014
그의 영상 작품은 짧은 분량임에도 강력한 내러티브와 메시지를 던진다. 사물과 대상에 대한 시각적 ‘재현’이기보다 ‘표현’이라 할 만한 작업 태도를 분명히 하고 있기 때문이다. 달리 말해, 실재를 모방하려는 태도를 드러내기보다 자신만의 ‘해석’을 통해 실재의 이면을 들춰 내는 ‘가능성의 세계’를 탐구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그의 작업은 사진과 영상이라는 매체 본유의 특성인 증거의 포착, 즉 재현에 대한 관심으로부터 탈주하면서 이미지의 이면에 내포된 사물의 본질에 대한 탐구를 끊임없이 시도한다. 그는 이러한 시도를 통해서 현실은 ‘보이는 그대로’가 아닌 ‘다른 실재일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화두를 끊임없이 상기시킨다.
류호열은 그런 면에서 실재로부터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를 탐구하는 시각철학자라 할 만하다. 실재하지만 현실에 드러나지 않은 잠재태의 가능성을 탐구하는 그의 작업은 초현실주의의 전망마저 지닌다. 지금으로선 현실계의 지평과 다른 곳으로부터 발원한 순전한 공상이자 몽상일 수 있지만, 그것이 종국에 현실이 됨으로써 상상의 지위를 회복할 날 또한 멀지 않아 보인다. 우주선을 만들어 화성을 탐사하는 일이 현실이 됨으로써 그 가능성의 세계가 ‘공상’으로부터 ‘상상’으로 자리매김했듯 말이다.
보라! 그의 스크린 안쪽의 세계에는 우리가 막연하게 그려 봤던 상상계가 그에 의해서 ‘또 다른 가능성의 세계’라는 이름으로 구체화되고 있다. 파란 가상의 하늘 아래서, 흰색의 나무 껍질로, 사각형의 나뭇잎으로, ‘비현실의 모습이되 마치 현실인 것처럼’ 말이다. 우리는 그것을 ‘하얀 상상력’으로 부르고자 한다.
모든 가시광선을 지속적으로 반사하는 흰색에는 빛이 머무를 틈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백색은 모든 색이 반사하고 남는 텅 빈 결여의 공간이다. 그것은 색이 빠지고, 현실이 결여된 무엇이지만, 그림자가 살아 움직이고, 투명한 가능성의 세계와 그 효과가 상상력으로 빛을 발하는 공간이다. 이번 전시에서, 디지털 나무 영상 위에 ‘하얀 상상력’을 불어넣은 류호열의 ‘가능성의 세계’는, 관객의 상상 작용을 통해 ‘생명력의 그 무엇’으로 꿈틀거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