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권展
2015 / 04 / 06
‘선으로부터’ 무한으로
김일권展 1. 8~2. 4 뉴욕 실비아올드&포킴아트갤러리(http://waldandkimgallery.org/)
/ 라울 자무디오(Raul Zamudi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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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06〉 캔버스에 혼합재료 72×144cm 2015
마크 로스코의 전의식적 색면회화부터 로버트 라이먼의 모노크롬으로 이어지는 예술적 궤적을 수용한 김일권의 초기 회화는 2개의 지배적인 색채로 가득 찬 직사각형의 캔버스로 이루어졌다. 그 두 색은 캔버스를 수평으로 양분하는 구획선에서 만나거나 그 언저리에서 뒤섞였다. 보다 확장된 방식을 도입한 그의 근작에서는 순수한 색면이 오프셋 컬러의 간섭을 받아 흐릿한 화면에 촉각적인 색채를 통한 깊이감이 더해졌다. 이 회화들이 순수한 추상을 구현하고 있는 것만큼이나, 캔버스의 넓은 색면을 가로지르는 구획선은 하나의 수평선으로 지각된다. 그렇다면 김일권의 작업은 형식적, 개념적 차원에서 추상과 재현, 형상과 배경, 현존과 부재, 존재와 무의 대립항들을 계속 오가는 일종의 변증법적 회화라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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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01.26〉 캔버스에 아크릴릭 56×76cm 2014
이번 전시에서 김일권은 그의 이전 회화들을 전혀 다른 개념적 방향에서 취합한 여러 작품을 선보였다. 양분하는 선을 지닌 형식적 기법을 유지하고 있지만, 신비롭고 관능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는 불투명한 막으로 그 표면을 덮었다. 이 신작들이 추상화된 풍경으로 여겨진다면, 이 표면 효과는 캔버스에 깊이를 부여할 뿐만 아니라 재현과 추상 사이의 긴장을 고양시키는 어떤 안개를 창조해 낸다. 물론 그 안개는 형식적 기법이지만 여기엔 이 모노크롬의 분위기에 스며든 어떤 의미도 있다고 여겨진다. 또 다른 작품들은 덜 추상적으로 보인다. 그것들은 각각 다른 색채의 배경 위에 검은 나무의 이미지가 그려진 2점의 작품이다.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를 연상시키는 이 두 회화가 환기시키는 것은 불길한 정조가 아니라 잘려나간 나무의 멜랑콜리와 파토스다. 작가는 침착하고 능숙하게 자연은 전혀 자연적이지 않다고 말하는 듯하다. 왜냐하면 자연이란 문화가 붙여 준 이름일 뿐이고 그런 의미에서 사회적으로 구성된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작가가 사회적 함의를 들먹이며 예술적 상대주의를 내세우는 것은 아니다. 그의 회화 속 나무에는 감성적이고 시적인 정취가 가득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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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12.27〉 하드보드지에 유채 72×54cm 2014
이번 전시에서 형식과 개념 면에서 가장 야심 찬 작품들은 혼합매체 작품들이다. 숲 속의 나무라는 모티프를 지속하고 있지만 배경은 회색이며 두꺼운 백색 선이 중첩돼 있다. 인쇄된 캔버스에 그려진 나뭇가지 이미지로 이뤄진 이 작품들에 끼어든 백색 선은 다소 환각적이며 또한 그만큼 개념적이며, 나뭇가지와 흰 선은 서로를 상쇄하지만 하나의 구성을 이루며 무리 없이 어울린다. 기이한 방식으로 김일권은 이전의 회화적 전략을 역전시켜 다시 취하는 일종의 뫼비우스의 띠와도 같은 궤적을 그려 낸다. 즉 이전의 작품들이 먼저 순수 추상의 영역으로 나타난 후 수평선을 지닌 풍경으로 번져 간다면, 위에 언급된 이후의 작품들은 단호하게 재현적인 것에서 출발해 무정형적인 것으로 변한다.
요컨대 전시에 선보인 작품들은 ‘선에서부터’라는 수수께끼 같고 열린 결말을 지닌 전시의 부제를 잘 구현하고 있다. 김일권은 그리는 행위의 역사적 양식들을 재구성해 나감으로써 회화에 활기를 불어넣는 새롭고 신선한 방식을 끊임없이 추구한다. 이런 시도는 분명 라스코 동굴에 그려진 선에서부터 시작됐던 것이다. 선에서부터 출발한 김일권의 시도가 이제 가닿는 곳, 그곳은 바로 무한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