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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창展

동양화 거장의 환생, 천변만화의 화폭
김기창展 3. 7~4. 19 대전시립미술관(http://dmma.daejeon.go.kr/)

/ 변상섭(충남문화재단 문화사업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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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경〉비단에수묵채색115×155cm1984

〈작고 작가전: 김기창-혁신의 거장 운보〉는 지역에서 시사하는 바가 매우 크다. 운보의 고향에서 처음으로 운보 예술의 진수를 보여 줬다는 점, 이를 계기로 대전, 충청 미술사를 재정립함은 물론 지역 미술사의 맥을 새롭게 짚는 전기를 제공했다는 점, 충청권 시민들에게는 대가의 아우라에 가려져 있던 운보 예술의 이면을 보여 줬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청전 이상범, 심향 박승무, 서양화가 이동훈 등 한국 근현대 화단의 중추적 역할을 했던 지역의 대표적 화가를 대상으로 연구가 더 확산돼 나간다면 대전과 충청의 미술사가 한층 넉넉해지는 것은 불문가지(不問可知)다. 더불어 대전, 충청 미술사가 한국 근현대 화단사의 주변부가 아니었음을 새롭게 각인시켜 나가야 하는 연구 작업은 후학들의 몫이라는 숙제를 제공한 점 또한 큰 수확일 것이다.
의미 있는 전시가 미술사나 이론적 연구의 기폭제가 되는 사례는 화단의 불문율이지만 그것은 중앙 화단에서나 가능했던 일이다. 지역에서는 매우 드문 일이다. 박승우, 이동훈 화백에 대한 선행 연구 사례가 있던 터에, 1930년대부터 1990년대까지 운보의 다양한 예술 세계와 삶까지 조명한 이번 전시는 특별한 가치가 있다. 전시 작품 하나하나를 발표 시기나 운보의 삶과 연결 지어 꼼꼼히 살펴보는 것은 연구자는 물론 일반인에게도 필수 덕목이다. 이번 전시는 더욱 그렇다. 이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킨 전시이기 때문이다. 
운보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가을〉과 〈동자〉는 스승 이당의 화풍과 일본의 화풍이 엿보이는 초기 작품이다. 가혹한 청각 장애를 안고 이당 문하에 입문한 후 1931년 〈판상도무(널뛰기)〉로 조선미술전람회에서 첫 입선을 하고 자기 정체성을 찾아 가던 중요한 시기의 작품이다. 1950년대 작품에서는 운보의 아이덴티티가 보다 확연히 나타난다. 해방과 함께 운보 예술은 전환기를 맞는다. 일본색 추방의 당위성을 역설하면서 한편으로는 스승의 굴레마저도 거부한다. 예술가로서 홀로서기를 선언했다고 볼 수 있다. 어머니가 지어준 호(號) ‘운포(雲圃)’를 ‘운보(雲甫)’로 바꾼다. 일본 색과 스승의 굴레에서 벗어나겠다는 의미에서 ‘포’자의 울타리를 걷어내고 시작된 도전과 혁신의 여정은 타개할 때까지 계속되며 2만여 점에 이르는 작품으로 결실을 맺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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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비단에먹,채색,진채170.5×110cm1934

1960년대에는 이전의 작품과 달리 활달한 필치와 먹의 운용, 추상과 입체주의적인 경향 등 실험적 요소가 강하게 나타난다. 농촌과 시장 풍경, 그리고 꽃, 색, 동물 등 생활 주변을 모티프로 한 작품이 많은 게 특징이다. 해방 후 우리 것에 대한 가치와 새로운 인식에서 비롯됐을 것이다. 면 분할을 통한 입체주의 작품과 함께 완전 추상까지 경계와 형식을 파괴하는 등 진취적 변모도 거듭된다. 1970년대에는 〈바보 산수〉 시리즈 시기다. 전통 민화를 통한 현대적 의미의 전통의 재발견에 열정을 쏟았다. 전통의 창조적 계승과 더불어 창의성 발현이 충만했던 시기다. 1980년대와 1990년대는 문자 추상과 봉 걸레 추상 시기다. 결국 운보는 해방 이후 표현 양식은 달리했어도 늘 전통의 범주에서 새로운 것을 추구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비백과 번짐, 운필과 구성이 돋보이는 봉 걸레 추상 역시 그 뿌리는 전통이다. 
다양한 소재와 재료 선택, 그리고 경계를 허문 표현 양식, 주제 의식의 심화 및 확장 등 운보 작품의 스펙트럼은 한 마디로 천변만화(千變萬化)다. 천재 화가 운보의 이름 앞에 어김없이 붙는 ‘한국 화단의 거장’. 청각 장애를 극복한 인간 승리의 표본 등 이미 각인된 환영을 걷어 내야 운보 예술의 진면목을 바로 볼 수 있다. 연구자들 역시 대전과 충청권 등 지역과는 먼 대가 중 하나라는 굴레에서 벗어나지 않고는 지역 미술사를 제대로 정립할 수 없다. 바로 이 점이 이번 전시가 갖는 존재의 이유이자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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