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데르 아티아展
2015 / 09 / 06
상처에 대한 기록, 또 다른 회복의 방식
카데르 아티아展 5. 22~8. 30 스위스 로잔주립미술관(http://www.musees.vd.ch/musee-des-beaux-arts/page-daccuei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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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esinos! Asesinos!〉 134개의 문과 47개의 메가폰 2014
베를린과 알제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작가 카데르 아티아(Kader Attia)의 첫 스위스 개인전 〈상처는 있다(Les blessures sont la)〉가 열렸다. 작가는 자연과 문명 또는 문화와 문화 사이의 충돌에서 빚어지는 갈등으로 인한 ‘상처는 있다’고 말한다. 전시장에 나란히 존재하는 ‘상처’와 ‘회복’이라는 두 요소는 물리적 아픔과 정신적 피해를 상기시킨다. 그 아픔과 피해를 일으킨 물리적 혹은 추상적 도구나 계기가 있고, 그에 따른 정치적 결과가 있다. 작가는 아카이빙한 자료들을 이용한 콜라주 형태의 설치, 비디오 작품 등을 통해 이 모두를 ‘조용히’ 폭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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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Couscous)〉 쿠스쿠스 가루 2009
그 조용함이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작품은 〈Asesinos! Asesinos!〉(2014)이다. 세로로 반 잘려진 100여 개의 문들이 A자 형태로 서로 기대어 있고 그 위에는 메가폰들이 달려 있다. 항의하는 시위대를 연상시키지만 메가폰에서는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다. 상처의 회복은커녕 아직 피가 철철 흐르는 듯하다. 회복 또는 재건의 흔적은 제1, 2차 세계대전 중 생산된 의족을 바닥에 늘어놓은 〈Artificial Nature〉(2014)에서 볼 수 있다. 이 작품 앞에서 우리는 전쟁과 권력이 야기한 갈등을 기억한다. 일레인 스캐리(Elaine Scarry)는 저서 《고통 속의 육체(The Body in Pain)》에서 이와 같이 말한다. “우리는 전쟁을 허구적으로 기술한 역사 때문에 자주 중요한 사실을 잊는다. 전쟁을 통한 부상은 그 어떤 것?전쟁의 최종 결과물?의 대가 또는 중간 생산물이라고 쉽게 여기지만, 사실 부상을 입히는 것이야말로 전쟁의 주목적이자 결과이다.” 신체를 본뜬 모조품 앞에서 다시 한 번 여지없이 상처를 마주한다. 이렇게 직설적인 오브제가 보여 주는 물리적 상처의 가시성과 그로 인한 추상적 정치성을 더욱 대조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은 듀얼 슬라이드 쇼 〈The Repair〉(2012)다. 흉터 진 얼굴을 묘사한 아프리카 조각품들과 제1차 세계대전에서 부상당해 치료를 받았지만 아직도 흉측한 군인들의 얼굴 사진을 병치한 작업이다. 작가는 세상을 관찰하고 해석, 기록하는 방법인 수집과 콜라주라는 행위 자체가 회복을 위한 실천이라고 말한다. 과거 서구의 식민지에서 바티칸으로 옮겨진 오브제를 장기간에 걸쳐 직접 찍은 사진들과 이를 설명하는 인류학자, 미학자, 성직자, 변호사의 인터뷰 내용을 담은 비디오 설치 작품 〈박탈(Dispossession)〉(2013), 서구 제국주의를 표방하는 2점의 역사적 회화를 세네갈의 대장장이가 만든 못으로 박아 걸은 〈식민의 근대성(Colonial Modernity)〉(2014) 등은 수집, 기억, 문화적 정체성, 식민주의에 대항한 투쟁의 유물 등을 통해 상처 있는 역사를 재해석하고, 탈식민주의적 회복의 화두를 던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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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ulture, Another Nature Repaired〉 나무 2014
아티아의 오브제들은 추상적으로 암시하기보다 그대로 설명하고 명시한다. 이번 전시는 오브제를 통해 드러나는 상처의 폭력성과 상상력으로 경험하는 갈등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통과 상상력을 연결시킴으로써 물리적 아픔과 정신적 피해의 고통을 폭로한다. 일레인 스캐리는 “고립된 고통 그 자체는 아무것도 의도하지 않는다. 고통은 지극히 수동적이며 겪는 것이지, 스스로 의도하거나 결정하는 것이 아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고통이 객관화된 상상력과 연결되었을 때 비로소 의도적 상태로 변화한다. 이 관계를 통해 고통은 수동적이고 어쩔 수 없이 일어난 상태에서, 자기 변화 나아가 자기 제거의 상태로 만들어지는 것이다.” 이 전시는 역설적으로 고통과 상상력의 관계 속에서 상처 있는 역사를 회복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듯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