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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남신展

습관처럼 쌓아 온 ‘덫’
곽남신展 8. 27~9. 25 아트파크(http://www.iartpark.com/)
/ 곽남신(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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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남신개인전〈덫〉전시전경2015아트파크

살찐 배가 거북하다 싶어 볼록한 배를 내려다보니 쏙 들어간 배꼽이 마치 불어난 물주머니 매듭 같습니다. 이거 언제 이렇게 불어났지? 걱정이 앞서면서도 피식 웃음이 앞섭니다. 내 몸통이 마치 오래 써먹은 내장들을 한꺼번에 싸서 묶어 놓은 부대자루 같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지요. 이 자루 속에는 비겁한 마음도 있고 정의로운 마음도 있을 것입니다. 국적불명의 주택 양식과 르코르뷔지에와 프랑크 게리도 있지요. 뽕짝과 팝송, 재즈도 있습니다. 대학에 들어오니 아방가르드와 모더니즘의 가치가 중요하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아카데미 미술을 해 본 적도 없이 아카데미즘을 전복시켜야 했습니다. 프랑스에 갔더니 모더니즘의 비좁은 시각을 해체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모더니즘의 실체에 접근도 해 보기 전에 해체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또 한국에 돌아왔더니 이번엔 글로벌 가치가 중요하다고 합니다. 내가 하는 일이 무엇인지도 아리송한 채 말입니다. 나의 몸을 싸매고 있는 부대자루의 내부는 이렇게 온갖 것이 뒤얽힌 카오스 같은 모습입니다. 따라서 내 몸의 관성은 일관되면서도 국제적 경쟁력을 갖춘 멋진 브랜드 이미지를 창출할 만한 조건을 갖추지 못했습니다. 전시장에 널어 놓은 이 장난감 같은 오브제들도 그동안 나의 작업을 지켜봐 온 사람들에게는 생소한 모습으로 비쳐지겠지요. 그러나 실상 그것들은 동근이상(同根異相), 즉 모두가 한 뿌리에서 나온 다른 모습입니다.

이 엉뚱한 오브제들은 먼지와 푸른 동록을 뒤집어 쓴 채 언제나 나의 컴컴한 작업실 귀퉁이를 지켜 오던 것들입니다. 오랫동안 나와 함께했기에 작품이라기보다 나의 신체 어느 곳에서 떨어져 나온 파편처럼 느껴집니다. 하지만 이 조그만 세상의 식구들도 어느 순간 새로운 모습으로 거듭나거나 부서져 폐기되기도 하며 새로운 오브제가 첨가되기도 하지요. 너무 많아져서 작업공간이 좁아지면 포장돼 책상 밑으로 또는 다른 방으로 옮겨 가기도 합니다. 느리지만 끝없이 증식되는 세포들… 아니 죽은 세포의 파편, 튕겨져 나온 각질, 피어나는 곰팡이들의 숙주… 자세히 보면 그것들은 꽤나 우스꽝스러운 모습들입니다. 그것들은 영겁의 시간을 견뎌 온 죽은 자의 부장품처럼 우리가 살아온 세상을 박제된 모습으로 보여 줍니다. 하지만 나는 이것들을 본격적인 작품으로 여기고 발표한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 큰 전시의 사족(蛇足)처럼 소극적으로 보여 줬을 뿐입니다. 전시의 일관성을 해치는 혹이었지요. 그러나 이 오브제들은 뚜렷한 목적 없이 작업 틈틈이 꾸준히 만들어져 왔습니다. 게으른 취미 생활처럼 말입니다. 이것들이 나의 작업과 다른 것이라면 그것은 무엇일까요? 본격적인 작업과 취미 생산은 구별될 수 있는 것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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