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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영展

국극, 젠더의 ‘전환 극장’
정은영展 8. 20~9. 20 아트스페이스풀(http://altpool.org/)
/ 남웅(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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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영〈개인적이며공적인아카이브〉디지털프린트59.4×59.4cm2015

〈전환 극장〉은 작가 정은영이 2008년부터 천착한 국극 작업들을 정리한 아카이브 전시다. 선적인 서사보다 비위계적인 자료 배치를 지향하는 전시는 젠더 수행성의 관점으로 국극에 접근, 배우들의 반복적인 젠더 전환을 통한 여성의 남성?되기에 집중한다.

전시 공간은 세 파트로 구획돼 있다. 첫 번째 방은 퍼포먼스 영상 또는 작가가 직접 연출한 작품 등으로 구성된다. 다각적 연출은 관점과 언어를 교차시키며 상호 비교하고 보충할 수 있는 감상과 해석의 결을 넓힌다. 작가가 수집한 자료들이 정리돼 있는 방으로 건너가면 두 편의 텍스트가 비평의 참조점을 제공한다. 미학자 양효실의 <여성 문화에 대한 여성 예술가의 개입과 수정 방법>은 젠더 수행성의 비판적 관점을 견지한다. 작가가 여성 국극 배우의 남성?되기에 천착함으로써 하위문화의 정체성 정치에 빠져들 수 있음을 우려한다. 반면 기획자 안소현의 <아카이브와 죽음: ‘전환극장’의 수행성에 대해>는 앞선 우려에 응답하는 양상을 보이며 아카이브에 대한 자크 데리다의 언급을 경유한다. 비어 있는 자리를 끝없이 메워야 하는 아카이브는 자료들이 본래의 위치와 방향을 상실해 재구성될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죽음충동적이다. 중심 없는 아카이브 속에서 여성 배우의 젠더 전환이 수행된다는 문장은 여성 배우가 수행하는 남성성의 중심 또는 실재가 비어 있다고 바꿔 읽을 수 있다. 두 분석을 참조하면서 우리는 작가에게 국극의 젠더 전환이 어떻게 번역되고 있는지, 포착된 전환의 장면이 어떤 해석 가능성을 갖는지 묻게 된다. 작가는 행위를 영상으로 전환하는 과정에 분장한 배우와 배경 사이의 갭을 두거나 연속적인 동작의 장면들을 절합함으로써 남성?되기의 기술과 기예를 벼려 낸다. 애초 구전과 몸짓으로 전승됐던 국극의 ‘흠결’이 분열된 남성성을 예고하지만 작가는 ‘니마이’ ‘삼마이’ ‘가다끼’ 등 국극의 배역을 비교적 섬세하게 분리하거나 배우들의 남성성 수행을 망라함으로써 젠더 전환의 세대적·문화적 변주를 펼쳐 놓는다. 영상마다 고립된 배우들이 이질적으로 부딪히는 전시장은 용호상박으로 실천되는 남성성‘들’의 공동(空洞)이자 집단적 전환이 공명하는 정동의 장소다. 작가는 국극에 매혹을 느끼되 함몰되지 않는 관점을 견지한다. 다만 의식적 거리두기는 유혹과 대결하는 오디세우스적 분리보다 세이렌의 음성을 옮겨 내는 번역에 가까울 것이다. 거리두기 연출은 남성 본위의 예술 사회에서 여성 국악인이 결집해 온 역사와 남성들에 의해 착취되고 생사를 저당 잡힌 취약한 국극 공동체에서 향유되던 남성?되기의 주름을 읽어 내도록 한다. 작가의 번역은 국극의 하위문화 안에서 향유됐던 젠더 전환의 정동을 오늘의 공동체에 어떻게 연결시키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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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은영개인전〈전환극장〉전시전경2015아트스페이스풀

전시는 다음 방으로 관객의 동선을 유도한다. 켜켜이 정리한 자료는 배우의 극적인 동세로부터 공동체의 표정들로, 교환되던 시선과 주고받은 이야기의 아스라한 기록으로 자리를 옮긴다. 오랜 배우를 무대에 올리고 국극의 쇠락 속에서 젊은 배우와 함께 작업하는 프로젝트는 오욕으로 물든 과거 하위문화에 대한 존경과 매혹에서 비롯된 현재적 응답이었을 터. 여성주의적 시선으로 국극을 다시 읽어 낸 작가에게는 어떤 또 다른 여성주의적 관점들이 도래 중일까. 오래도록 미끄러진 의미들을 꿰어 낸 작업에는 어떤 응답이 접목될까. 응답은 다르지만 멀지 않은 장소에서 이질적인 언어를 구사하며 귀를 간지럽혀 오지 않았을까. 새삼 작가가 듣는 응답은 어떤 것인지, 오늘의 응답에 어떤 매혹과 거리두기의 긴장을 유지하며 대답을 만들어 낼 것인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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