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콜라스 펠처展
2015 / 10 / 07
“나는 현실과 가상의 경계에 서 있다”
니콜라스 펠처展 9. 11~10. 3 스페이스오뉴월(http://www.onewwall.com/)
스페이스오뉴월에서 니콜라스 펠처(Nicolas Pelzer)의 개인전 <진화의 마스터들(Evolving Masters)>가 열리고 있다. 작가는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 <아트선재센터 라운지 프로젝트> 등의 전시를 통해 한국 관객에게도 친숙하다. 작가가 3D 애니메이션, 디지털 프린팅 등 다양한 미디어를 넘나들며 선보이는 현실과 가상이 혼재된 ‘혼합 현실’은 바로 ‘지금 여기’의 모습이기도 하다. 작가를 만나 그간 한국에서 개최한 전시의 특성, 그만의 작업 수법, 매체의 방법론에 대해 물었다. / 문혜진(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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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콜라스 펠처 개인전 〈진화의 마스터들〉 전경 2015 스페이스오뉴월
문 공간과 이에 개입하는 관객의 몸을 중시해 왔다. 모두 신작으로 구성된 이번 전시에서도 이러한 관점을 유지했는가?
―그렇다. 전시장 1층에 설치한 <Evolving Masters>는 전면 파사드에 반투명한 디지털 프린트를 붙이고, 전시장 중앙의 조명 장치에 부착된 손 모양의 조형물 외에는 공간이 텅 비도록 했다. 관객은 공간이 시간과 빛에 따라 다르게 물드는 것을 직접적으로 경험하게 된다. 2층의 3D 애니메이션과 디지털 프린트된 천을 설치한 <Laughing Intelligence>는 멀찍이 서서 감상할 수도 있지만, 거울처럼 서로를 반영하는 두 개의 스크린 사이에 서서 실제 작품을 몸으로 체험할 수 있다.
문 <Evolving Masters>에 설치한 프린트는 창문을 일부분만 가리기 때문에 외부 풍경과 내부 공간이 합쳐진 레이어를 만들어 낸다. 한국의 전시공간에 장소 특정적으로 작업해 이곳의 ‘혼합 현실’을 보여 주는 접근이 흥미롭다.
―사실 내 작업에서 장소특정성은 사회문화적 맥락보다 해당 공간의 물리적 구조에 관련된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의 첫 전시였던 <Temporary Re-Visionists>(스페이스오뉴월, 2011)에서는 전면 유리인 공간의 특성을 반영해 유리 구조물을 설치했었다. 유리의 투명한 물성 때문에 바깥 풍경이 그대로 보이지만, 구조물의 경계선을 보며 자신이 장벽을 앞에 두고 있음을 인지하게 된다. 강원도 철원 DMZ 접경 지역 내 철원안보관광 코스에서 열렸던 <리얼 디엠지 프로젝트>전에 출품한 <Dislocated Cinema>는 예외적으로 역사적 문화적 측면이 개입됐다. 전시 장소였던 통일전망대에서 갈 수 없는 장소를 손에 잡히듯 보여 주면서 그 실체를 숨기는 모습이 흥미로웠기 때문이다. 가시성을 비가시성을 오가는 그 재현의 구조를 드러내기 위해 불투명한 간유리 스크린을 만들었다.
문 <Laughing Intelligence>에서 천 위에 디지털 프린트한 작업은 반복적 수법이 눈에 띈다. 디지털 문화에 대해 언급하기 위해서 수작업이 아닌 기계적 전사를 강조한 것인가?
―엄밀히 말하자면 내가 표현하려고 하는 바는 반복(repetition)이라기보다는 복제(duplication)에 가깝다. 나는 디지털 문화의 중요한 특징 중 하나가 무한한 복제 능력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인간의 유한성과 대조된다. 그렇다고 해서 기술진보주의를 지지하는 입장은 아니다. 나는 복제의 가치에 매혹되는 동시에 그 속에 감춰진 의미에 대해 우려하기도 한다.
문 작품이 가상현실과 뉴미디어 환경을 다루면서도 미니멀한 미감을 보여 준다. 자칫 화이트큐브를 위한 모더니즘 조형물로 오해받을 수도 있을 것 같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바를 직접적으로 설명하는 것을 피한다. 그 까닭에 작업이 생략적이고 함축적으로 보이는 것 같다. 깔끔한 마감을 선호하는 것은 완성도에 대한 일종의 강박이라고도 볼 수 있는데, 개인적 성향이지만 최근에는 오히려 여기서 많이 자유로워진 편이다.
문 당신은 조각 등 전통적 매체로도 가상현실을 다룬다. 가상현실을 실감나게 묘사하는 ‘3D’, 심지어 ‘4D’ 영화가 등장하면서 순수미술은 다소 구시대적인 매체라는 지적도 있는데.
―나는 (영상의) 비물질성을 믿지 않는다. 가상현실이라 하더라도 물리적 실체와 완벽히 무관한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가상현실만큼이나 물성 자체에 관심이 많다. 완벽히 차단된 스펙터클한 공간은 몰입을 불러일으키지만 관객 스스로 공간의 가치를 성찰할 여유는 주지 않는다. 그렇기에 나는 가상과 실제의 경계에 서 있는 것을 즐긴다. 완벽히 동화되지도, 완벽히 함몰되지도 않는 상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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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 앞에 선 작가 니콜라스 펠처
니콜라스 펠처 / 1982년 독일 딘스라켄 출생. 베를린예술대학, 쾰른미디어예술대학 학사, 벨기에 겐트대학 석사 졸업. 쾰른 글라스무그(2009), 독일 말 글라스카스턴조각박물관 (2013), 아트선재센터(2013) 등에서 다수의 개인전 개최. <SECHS MINUS>(본 분데스 쿤스트할레, 2012), <플레이 타임>(문화역서울284, 2012), <ROCK STEADY>(베를린 퓨처갤러리, 2015) 등 참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