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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ewLook]정덕현

2015/10/14

현실을 반영하는 ‘노동자’
정덕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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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들리에〉종이에먹,주묵,호분,아크릴릭168×96.5cm2013

단숨에 일필휘지하는 작가가 있는가 하면, 종이를 전장 삼아 물감과 긴 싸움을 벌이는 작가도 있다. 전자의 그림에서는 춤추듯 미끄러져 나간 붓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는 반면, 후자의 그림에서는 작품을 완성하기까지 거듭 좌절해 왔을 작가의 고된 노동을 짐작할 수 있다. 작가 정덕현은 말하자면 후자에 가까운 ‘노동자’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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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김〉종이에먹,주묵,호분,아크릴릭130.3×193.9cm2012

줄줄 흐르는 먹물, 끊임없는 덧칠에 때가 밀려 나온 종이, 곳곳에 일어난 수많은 종이 때로 균열이 발생해 일견 프레스코화처럼 보이는 그림. 이러한 효과는 그림을 낡고 오래된 것처럼 만들면서 그림에 내재된 어둡고 탁한 분위기를 한층 강화시킨다. 작가는 붓에서 물감이 뚝뚝 떨어지건 말건 종이 위에서 벌어지는 일에 무심하다. 특히 공장 외관을 그린 〈분열〉(2011)을 자세히 보면 먹 묻은 현무암으로 찍은 듯한 효과를 발견할 수 있는데, 먹물에 빨대를 꽂고 공기를 불어넣어 거품을 생성한 뒤 종이에 얹은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거품은 저들끼리 옮겨 다니고 서로를 터트리면서 자연스럽게 공장의 ‘입김’을 형상화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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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아오르다〉종이에먹,주묵,호분,아크릴릭227.3×181.8cm2012

과거 공장에서 단기간 일한 바 있는 작가는 그곳에서 보고 느낀 바를 바탕으로 기계 부품을 그리기 시작한 것. 너트를 그린 〈풀림〉(2012), 압력기를 그린 〈유출〉(2012) 등은 소음과 기름 냄새로 가득한 그곳에서 하나의 ‘소모품’으로 전락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를 연상하며 그린 그림이다. 작가가 종이 안에 불러낸 사물은 초상화 혹은 영정처럼 보이기도 한다. “온갖 기술을 손톱만한 크기의 반도체 속에 집적할 수 있는 세상에, 용산 참사나 쌍용자동차 사태가 일어난다는 걸 이해할 수가 없다”는 작가는 공장이라는 한정된 장소를 벗어나 변주를 시도한다. 불이 막 꺼진 초를 그린 〈묵음〉(2014)이나 신문고를 그린 〈백색소음〉(2014)은 좁게는 불안한 존재로서의 노동자, 넓게는 한국 사회의 우울한 단면을 은유하지만, 전달하는 메시지는 도리어 직설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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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덕현개인전〈시대착오-적〉전시전경2014팔레드서울

평론가 김학량은 작가가 그린 사물을 그것이 속했던 시공간과 상황을 둘러싸고 있는 일종의 ‘퇴물(退物)’로 지칭하면서 관객뿐 아니라 작가 또한 그림 안으로 빨려 들어간다고 말한다. “정덕현의 그림 속 이념은 그림 바깥에서 서럽도록 고독하다. 퇴물이 세계를 이념으로부터 분리시킨 것이다.” 정덕현은 지난하게 덧칠하고 흘리고 터트리는 과정을 통해 그림과의 ‘싸움’을 지속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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