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Look] 백정기
자연과 인간, 과학적 실험하기
백정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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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제>(부분) 점토, 바셀린 350×1200cm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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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기 개인전 <Mind Walk> 전시 전경 2015 갤러리두산
극심한 가뭄이 기승을 부리고 있는 요즘, 백정기의 개인전(두산갤러리, 6. 3~7. 4) 출품작 〈기우제〉(2015)가 더욱 간절해 보인다. 전시장의 한 벽면 전체를 뒤덮은 점토는 메말라 터진 피부처럼 쩍쩍 갈라져 있고, 그 틈새에는 바셀린이 촘촘히 채워져 있다. 촉촉한 바셀린 표면이 반사하는 영롱한 황금빛을 보면서, 마치 제의를 올리듯 땅의 상처를 어루만졌을 작가의 몸짓을 떠올리면 사뭇 경건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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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Untitled(Vaseline Armor)> C-프린트 101×68cm 2007
백정기의 작업에는 상처 난 피부의 재생을 돕는 바셀린과 생명력을 가진 물 등이 주요 소재로 등장한다. 그는 2007년 건물의 외벽에 갈라진 틈을 바셀린으로 채운 〈Treatment: SW1P 4JU〉, 바셀린으로 만든 투구, 갑옷, 장갑 등을 사람에게 입혀 촬영한 사진작품 〈Untitled(Vaseline Armor)〉 등을 선보였고, 2008년에는 이집트, 모로코 등지에서 바셀린으로 주술용 도구를 만들어 기우제를 올리는 퍼포먼스를 진행했다. 작가는 어렸을 적 자주 사용했던 바셀린의 치유 기능에 초점을 두고 작업을 시작했지만, 더 나아가 이 치료제가 만병통치약으로 인식되는 것에 주목하며 인간이 어떤 대상에 부여하는 ‘의미’와 ‘관념’을 감각화, 물질화하는 데로 관심사를 확장시켜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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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제: 부화기와 촛불>(부분) 유정란, 부화기, 촛불, 열전소자 가변크기 2015
연못 형태의 설치 작품 〈Untitled(Blue pond)〉(2009, 2010)에는 초록 풀, 빨간 열매, 파란 물처럼 통념적으로 특정한 색깔이 함께 연상되는 대상들을 실제로 구현했다. 2010년에는 인사미술공간의 전시장 천장에서 사카린을 섞은 물이 비처럼 떨어지는 장치를 제작해 ‘꼭 필요한 때 알맞게 내리는 비’라는 뜻의 단비를 그와 함께 연상되는 ‘달다’라는 미각과 연결시켰다. 근래 작가는 과학 기술이 두드러지는 작업들을 선보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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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우제:마미드 사하라 사막> 비디오 4분 39초 2008
설악산이나 내장산에서 모은 단풍잎에서 색소를 추출해 두 산의 가을 풍경 사진을 인쇄함으로써 실제 피사체와 사진의 재료를 일치시키거나, 산도에 따라 색깔이 달라지는 리트머스 종이에 금강, 낙동강, 한강 등의 강물을 잉크 삼아 해당 강의 풍경을 인쇄함으로써 인간이 자연에 끼친 영향을 색다른 방식으로 시각화해 보였다. 이러한 방법론은 샤머니즘적이기도, 과학적이기도, 때로는 혼용적이기도 하다. 그 방식이 무엇이든 그는 인간의 믿음, 사고, 언어와 같이 보다 근본적인 주제에 대한 실험을 이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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