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ew Look] 노상호
현실과 몽상 사이
노상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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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lly Molly〉 종이에 먹지 드로잉, 수채 29.7×21cm 2015
노상호는 수채화와 손수 창작한 이야기를 병치해 ‘데일리 픽션’을 만든다. 인터넷에서 수집한 이미지를 먹지에 대고 그리면서 글을 짓고 필요에 따라 이미지를 추가한다. “특정한 사연을 지닌 그러한 인물이 살았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소설이 그림을 부연하고, 그림 역시 글에서 벌어진 사건을 목격하도록 돕는다. “옛날 옛날에”로 시작하는 할머니의 전래동화가 연상될 법도 하지만, 그의 이야기와 더 가까운 건 차라리 ‘잔혹동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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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uadruplets〉 종이에 먹지 드로잉, 수채 29.7×21cm 2015
100번째 암살을 기다리던 〈Shadow〉의 암살자가 자신을 마지막 표적으로 삼게 되고, 얼굴 없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배경으로 삼은 〈Grand Guignol’s Mask〉에서는 표정이 있는 가면을 둘러싼 비극이 연쇄적으로 발생한다. 반면 안료가 물에 번지게 해 알록달록 ‘오로라’ 효과를 낸 〈Marbling〉과 〈Cable Car〉는 ‘너’를 향해 쓴 연애시다. 여기서 ‘너’가 작가의 애인인지 가상의 인물인지는 알 수 없지만, 대개 문학이 그렇듯 그곳에 누군가를 대입하는 것은 전적으로 독자의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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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 Invisible Net〉 종이에 먹지 드로잉, 수채 29.7×21cm 2015
소설마다 엿보이는 참혹함, 설렘 등 극과 극의 감정은 우리 삶의 총체를 떠올리게 한다. 그는 “삶 속에서 느낀 인간의 기본적 진리를 직접적으로 풀어 내지 않고,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이야기를 통해 표현한다.” 만일 고통만 가득하거나 마냥 사랑스러운 이야기였다면 이것은 소비적인 감정을 느끼기 위한 하나의 장치에 불과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작가는 다양한 서사에 복합적인 감정을 버무리면서 그에 걸맞은 이미지를 가지고 현실과 밀접한 이야기를 생생하게 표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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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오밴드의 두 번째 EP 앨범 〈22〉 표지 그림
글이라는 것이 작가가 체화한 세계와 요원하지 않다면, 노상호의 작업은 곧 그가 어딘가에 안주하지 않고 바지런히 움직이며 목격한다는 것을 증거한다. 그는 리어카를 개조한 ‘메르헨 마차’를 끌고 다니는 ‘이야기꾼’이자 ‘이미지 넝마주이’다. 현실에서 채집한 삶의 파편들을 새롭게 ‘조리’해 더욱 보편적인 공감대를 형성한다. 한편, 그는 최근 새 앨범 〈22〉를 발매한 ‘혁오밴드’의 앨범 표지 제작에도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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